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보고 싶었다. 너의 세상이 궁금했다. 책을 골라주는 일은 사상을 공유하는 일이기에 연애라고 했던가. 책과 영화를 가까이하는 너의 세상을 엿보기 위해 네가 읽는 책을 읽고, 네가 보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너의 세상을 궁금해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세상이 넓어졌다. 아니, 확장되었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한평생 음악을 하며 살겠다 다짐한 내가 어느덧 넓은 예술을 사랑하게 되었고, 너의 눈길을 끄는, 나와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현대미술마저 알고 싶었다. 우리가 헤어진 후에도 나는 배수아의 책을, 너의 책장에 있을 법한 책을 읽었다. 그렇게 너라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너의 세상을 이해해 보려는 일. 그게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리 많은 것 같지도 않은 우리의 추억을 매일같이 곱씹는다. 혹여나 내가 생각해내지 못한 것들이 있을까 두렵다. 그 당시 썼던 일기들을 수도 없이 다시 읽고, 네가 했던 말들을 다시 너의 목소리로 떠올리곤 한다. 그때는 네가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지 혼란스러웠지만 지금 보니 너는 나를 사랑했구나 깨닫는다. 조금 더 빨리 깨달았다면 참 좋았을 것을. 더 잘해줄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더 잘했어야 할까. 너는 어떨 때 사랑을 느낄까. 너는 어떤 사람을 사랑할까.
너는 처음으로 나의 세상을 궁금해한 사람이었다. 나를 이루는 것들도, 내가 이룬 것들도 아닌, 나라는 사람을 궁금해한 사람. 그 덕에 나는 다른 사람들을 그런 방식으로 대하게 되었다. 이미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더 친해지게 되었고,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너만큼 나를 바라봐 준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아니, 앞으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의문만 든다.
나의 첫사랑은 열일곱 살에 지나간 줄 알고 살았다. 나의 첫사랑은 너다.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첫 번째 사람은 단연코 너다. 너를 조금도 바꾸고 싶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고 싶었다. 나는 어쩌다 너에게 사랑을 구걸하게 되었을까. 나만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 좀 사랑해 달라고 말할 때 나의 심정을 너는 알까. 나는 이제야 너의 세상을 조금은 알 것 같은데, 너는 너의 세상을 모르는 나를 사랑했던 걸까.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사람은 독립적일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너의 말, 얼마 전 밀란 쿤데라의 책에서도 읽었다. 한 사람을 이루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고 말이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사람들을 각각의 영향력에 따라 나눌 수 있다면, 너는 마치 물 분자가 내 몸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 헤어지고 난 후 통화를 할 때, 네가 나보고 너의 주인 같다고 한 말을 기억한다. 짐작만 할 뿐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는 믿는 신이 없으니 네가 내 주인(主人) 같다. 나를 소유한 사람으로서의 주인이 아닌, 인간의 형태를 한 주 말이다. 네가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하면 나는 최선을 다해 그 하루를 좋게 만들고 싶고, 네가 잘 살라고 하면 최선을 다해 잘 살고 싶다. 너의 한 마디면 나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도 이런 감정으로 그 말을 한 걸까. 그 말을 할 때의 너는 어떤 상태였을까. 나의 한마디면 너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을까.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소유할 수 없다는 너의 말을 믿지만, 그럼에도 나는 온전히 너의 것이다.
있잖아, 너의 구겨진 분들을 구석구석 펴주겠다고 했던 말, 혹시 기억나? 내가 평생 먹여 살려주겠다며 한 말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 누구보다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라 그걸 거부하는 너와 평생을 함께한다는 약속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어. 그래, 결혼 말야. 근데 있지, 네가 날 계속 바라봐준다면 결혼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너랑 대화할 때 비로소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기분이었거든. 그래서 네가 원하는 대로, 사회가 규정해 둔 대로 살지 않으며 너의 모습을 네가 원하는 대로 유지하도록 해주고 싶었어. 내 욕심이었을까. 우린 왜 헤어져야 했어? 너는 나의 어떤 부분을 사랑했어? 왜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네가 다시 나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나 좀 사랑해 줄래. 부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