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생에도 자동항법장치가 있다면 입력한대로 잘 살아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같다. 정밀하게 설계된 비행기도 이따금 궤도를 이탈하고, 숙련된 조종사의 적절한 대응이 없다면 위험 상황에 종종 빠지는 것을 보면. 게다가 그들조차 대처할 수 없는 위기들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가 세상을 지배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음식점이라는 인생의 좌표를 찍고 나면 삶이 좀 달라진다. 뭐 음식점만이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의 삶은 다소 무겁다. 전생에 많은 업보를 쌓은 사람들이 식당을 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좀 서늘하다.
세상사 중에서 쉽게 결정하여 실행할 수 있는 분야의 일들은 대부분 시행착오가 많다. 특히 음식점이라고 하는 분야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한다. 집집마다 음식을 만들어 먹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자신감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을 잘 만드는 것과 음식점을 경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대체적으로 그런 것을 간과하면서 식당을 하게 된다.
우리도 그랬던 것 같다. 예전에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 화려한 음식들을 곧잘 차려 내곤 했었다. ‘월남쌈, 캘리포니안 롤, 충무김밥, 구절판’ 등을 비롯하여 식당에서조차 하기 어려운 각종 음식들로 많은 모임을 했었다. 즐거운 시절이었다. 민예는 사람을 좋아했고 음식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식당 일이 몹시 힘들지만 음식 만드는 것은 즐겁다고 했다. “음식점을 하면 고생은 제법 하겠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명제 외에 나머지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첫 번째이자 가장 큰 문제이다. 일단 음식점을 시작하고 나서 보면 돈은 생각만큼 잘 벌리지 않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때는 눈물이 난다.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고 돌아가기에는 좀 애매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검프의 어머니는 죽기 직전 아들에게 “인생은 쵸코릿 상자와 같아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모른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파는 쵸코릿 상자 안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양과 맛이 들어 있어서 그런 표현을 하는 것 같다. 상자에 담긴 쵸콜릿 하나도 서로 다른 모양인데, 삶이 얼마나 다양한지 창의력으로 살아보라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부부의 인생에서 음식점이라는 단어는 없었을 것 같은데, 사람의 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 같다.
2013년 5월의 어느날이었다. 가끔씩 들렀던 땅박사 부동산에서 조상민 사장은 “식당 해 볼 생각 없어?”라며 뜬금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저 간만에 커피 마시러 들렀을 뿐인데. 월산리라는 조그마한 시골에서 살아서 그렇지 그는 젊은 시절 부동산 디벨로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의 자세한 삶의 궤적은 잘 모르지만, 시카고에서 10여년 지냈다고 하며 그곳에서 태어난 작은 아이는 명하와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사이였다. 뭐 대수롭지 않게 던지고, 들은 말이 며칠동안 귀에서 맴돌았다. “한 달에 천만원 정도는 벌 수 있는 유명산에 있는 식당이야. 그저 누군가에게 주기에는 아까워서 할만한 사람이 없으면 장모님께 알려 드리려고”. 직업상의 멘트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우리 부부와 친구인 승환, 찬문과 함께 유명산으로 향했다. 날도 더운데 백숙이나 먹으러 한번 가보기나 하자면서, 가벼운 걸음이었다. 유명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식당은 참 좋았다. 식당의 방갈로와 맞닿은 계곡이 있었으며, 통나무로 만든 건물의 외관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백숙의 맛은 그저 그랬던 것 같았지만, 주변 환경은 참 마음에 들었다. 친구들도 그랬던 것 같다. 즉흥적이고 준비없는 과정은 패배로 이어진다. 주변을 살펴보고, 상황을 살펴보고 했어야 하는데 안대로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았던 것이다.
계약 하는 날 처음으로 임대인을 만났는데, 임대차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 생각과 다른 요구 조건에 관한 말들이 오고 가자 버럭 화를 내면서 “계약 하기 싫으면 관두라”는 반응을 보였다. 황당한 상황이었다. 자기 중심적인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임대인에 관해 알았더라면 계약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관둘까 하는 잠깐의 망설임은 있었다. 전 임차인은 당황하고 있었고(그만두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때문에), 부동산 중계를 맡은 조사장의 부인께서도 계약을 꼭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는 약 일주일쯤 후에 가게를 넘겨 받는 것으로 계약을 마무리 하였고 2013년 8월 1일부터 장사를 시작하였다.
누구나 어떤 사람을 제법 알게 되는 것은 시간이 좀 지난 후의 일이 된다. 우리도 그랬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 책임은 자신이 지면 되는 것뿐이다. 그것뿐이다. 웃거나 울거나. 기존 운영하는 가게를 그대로 인수하는 거라 딱히 준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참 어이없는 노릇이다. 식당의 구석구석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았다. 꼭히 필요한 것은 없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잔뜩 쌓여 있었다. 어떤 것들은 사야 했고, 또 다른 것들은 버려야 했다. 식당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초보자들이 겪는 과정이 이렇다. 시작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거라는 들뜬 마음이 마음의 눈을 가린다. 이렇게 시작하고 나면 손과 발은 물론 머리가 제법 바빠진다.
유명산 계곡의 여름은 제법 바쁘다. 그 바쁨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손은 없었고, 아는 지인들이 그때그때 도와주면서 궁여지책으로 지낼 뿐이었다. 음식점은 3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이었으나, 주방은 분식점의 그것보다도 작았다. 라이브 카페로 설계해서 그런 것 같았다. 하수 시설은 막혀서 역류하기가 여러 번이었고 전기 배전판은 자주 다운되었다. 하수구 문제는 몇차례나 전문가를 불러 손을 봤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시간과 돈만 버렸다. 어떤 설비 기사는 얼굴에 온갖 짜증을 달고 장시간 똑같은 작업만 반복하다가, 스프링 장비로 유리문을 깨뜨리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 결국 하수구는 뚫리지 않았고 비용만 요구해서황당했던 일도 있었다.
약 2년 정도가 지난 후 유명산에 놀러 오신 지인의 남편이 마침 설비를 하신다고 하여 고민을 이야기 하였다. 하수구 배관을 전체적으로 꼼꼼히 살피더니 배관의 끝부분에 굴곡진 부분이 문제라고 하면서 근본적으로 해결을 해 주었다. 비용도 이전에 했던 전문가들이라는 분들보다 더 적게 받으면서 말이다. 자신의 일을 프로페셔녈하게 하는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다르다. 신바람나게 이곳 저곳을 살피고 최선을 간구한다. 나도 식당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해내고 싶다. 설거지를 하고 있어도 반짝반짝 빛이 났으면 좋겠다. 묵현리에서 창진설비를 운영하시는 박창진 사장님, 하는 일이 어떤 경우에도 거침이 없는 맥가이버 스타일이다. 지금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가게를 넘겨 받은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옆집과 함께 사용하던 지하수 모터가 고장났다.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문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은 바로 고쳐주지 않았다. 비용 문제 때문에 말이다.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진 그 여름의 며칠이 떠오른다. 악몽이었다. 물이 나오지 않는 식당,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넓은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거의 똑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들에 손님들이 공평하게 가지는 않는다. 산악회원들을 태우고 다니는 관광버스는 뭔가를 주는 식당이 우선이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산악회는 차량에 싣고 다니는 술을 식당에서 마시도록 허락해주는 곳을 선호하였다. 지금도 그렇게 영업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은 없어져야 한다. 우리는 술을 가지고 오되, 식당의 술도 어느 정도는 팔아줘야 한다는 식으로 타협을 했다. 아마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라면 손님으로 받아 주지 않을 것이다. 유명산 주차장에서는 관광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하면 식당의 주인들이 번갈아가면서 주차를 유도해주고 자기 식당으로 손님들을 인도 한다. 주차비를 받고 주차장을 관리하는 임대인이 해야 할 일을 식당의 주인들에게 슬쩍 위임하는 척하는 제법 옳지 못한 행태이다. 우리가 유명산에서 영업할 당시에는 다른 식당에서 번갈아 가며 주차 유도를 하고 호객을 하였다. 이런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제법 지난 후 장사는 신통치 않고 하여 같이 하자고 했더니 기존에 하고 있던 곳에서 싫어하였다. 마치 자기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상의 관계는 이렇게 별 일 아닌 것으로 소원해진다. 그리고 한번 소원해진 관계는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재밌는 일도 많았다. 정월 보름이면 마을 주민들 모두 모여 떠들썩한 척사대회를 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마시면서 정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1년에 한 두번씩은 상인들, 주민들 모두 관광 버스 대절하여 놀러 다니기도 하였다.
친구들, 지인들이 찾아 오면 함께 어울려 노는 것도 참 좋았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술을 마시면 시간이 가는지 멈추는지 모르고, 흥이 나면 노래방 반주기를 틀어 놓고 그 조용한 곳을 노래 소리가 온통 울리도록 했다.
뭐 이런 저런 사정들을 모두 제쳐 두고 2년 6개월만에 유명산에서 나올 수 있었다. 월세는 제법 밀려 보증금을 모두 돌려 받지는 못했지만 후련했다.
삶이란 항상 순간순간을 선택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지면 그뿐이다. 그곳에서 배운 짧지 않은 장사의 경험이 오늘을 운영 할 수 있는 동력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삶에서의 경험이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건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