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론 Sep 17. 2024

무시당하지 않는 방법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선배가 있다. 사교적인 성격에, 배우 마동석 같은 덩치를 가졌지만 웃음 주기 좋아하고 회식 자리에서도 분위기 메이커를 도맡았다.




친한 듯 엄청 가깝지는 않은 사이로 지내다, 부서 이동으로 서서히 잊혀가게 되었다. 이후, 같은 부서로 발령이 나 종종 안부를 묻곤 했다.


이후, 야근을 당연시 여기는 부서 문화를 바꿔야 하는 업무로 옮겨간 선배는 갑자기 말과 행동이 날카로워졌다. 게다가 욕설과 강압적인 태도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해지기 시작했다.


복사기 앞에서 서너 시간의 야근을 마치고 서 있던 나에게 어느 날 선배가 말했다. "너 왜 안 가, 빨리 가라" 울적한 마음에 여러 의미가 담긴 말로 답했다. "저도 가고 싶어요."




그러자 내 말을 끊고 중지를 보인 뒤 내 상사에게 안 가는 것에 대해 고하겠다고 하고 회의실을 향해 떠났다. 어안이 벙벙해 잠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원해서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야 업무가 끝나 정리하려던 때였다. 나의 잘못은 없었다. 온전히 그 선배의 잘못이기에, 분노했고 손을 떨며 메모장에 생각을 정리했다.


선후배를 떠나, 잘못에 대해서 사과를 받아야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잠시 시간을 내달라 했고 짐작하는 게 있는 듯 꾸물거리던 선배는 커피 두 잔을 들고 찾아왔다.




야근을 하는 문화에 대해 주제를 돌리던 선배의 말을 끊고, 어제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당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내가 상처받았음을, 무척 서운했고 차라리 나에게 앞으로 말도 걸지 말아 달라고.


다양한 답을 기대했지만, 선배도 사회생활을 많이 했던 것일까. 먼저 사과하지 못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과,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대답으로 마음을 전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거나, 부서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었다. 다만, 그 사과를 받음으로 열에 아홉 정도는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이후 업무에 얼마나 치이면 그랬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과 함께.




이후, 선배의 태도는 바뀌었고 욕설과 강압적인 태도도 온순하게 변했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었음을 느꼈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던 변화는 찾아왔고 부서 분위기도 조금은 온화해질 수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해 더 좋은 방법도 있었겠지. 내 상사와 대화하라고, 공문으로 내려주어야 정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아니면 법의 힘을 빌리는 방법도 있었겠지.


그래도, 예전의 나였다면 아무 말 못 하고 속으로만 앓았을 것을 알기에. '조금은 성장했나' 싶었다. 또 하나의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웠음을 기쁘게 생각하기로.

이전 22화 지켜야 하는, 그리고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