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용서를 잘 하지 못하는 이유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중에서

by 오후의 책방

https://youtu.be/dOuefP5HY88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

오늘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장에 있는 용서에 대한 글을 나눠볼께요.


“용서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용서는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부당한 짓을 한 사람, 고통을 주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건 누구의 허락도 필요치 않은 오로지 우리만의 결정이다.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 우리에겐 분노하고 화를 낼 권리가 있다. 그리고 거꾸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나쁜 짓을 했다면 자책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런 상처와 고통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줄어들다가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 씻은 듯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 마음에 둥지를 틀고 앉아 어디를 가나 우리의 생각과 행동 나아가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만날 때마다 자신의 상처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우리도 신경 써서 들어주고 공감을 표하고 위로를 해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겐 그 사람의 생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썩은 널판지처럼 제자리에 매달려 일그러진 표정과 쇠된 목소리로 자신의 수난사만 되풀이하고 결국 지친 우리도 더 이상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다들 이런 경험들 있지 않으세요? 또는 내가 그 당사자기 되기도 하고요. 상처 받고, 너무 힘든 상황일 때 누군가에게 자꾸 이야기하게 되는 경험이요. 이 사람한테 얘기하고 저 사람한테 얘기하고 또는 만날 때마다 자꾸 반복해서 그 얘기를 또 하고 또 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다들 겪어봤을 것 같아요.


“막상 우리 자신의 그런 상처를 입게 될 경우, 우리는 그 끝없는 한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우리가 겪은 부당한 일에 대한 기억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감정을 지배한다.”


상처가 심한 사람들은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 인정하기 싫을 거예요. ‘내가 어떻게 용서를 하겠어, 그 사람을... 나한테 어떤 짓을 했는데’라고 말이죠. 분노와 상실의 슬픔, 다시는 누군가를 신뢰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한데 뒤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란 가해자가 설사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일시적인 만족을 줄 뿐 우리의 정서적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다. 용서라는 것은 무조건 화해를 목적으로 타인을 덮어주는 의미가 아니라고 합니다. 용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깨달음의 부족이나 나약한 인간성이 아니라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용서란 무엇일까? 용서란 상대가 아니라 내가 더 나아진다는 의미이다.”


즉 나를 위한 것이지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용서는 나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이지 가해자의 상처를 낫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용서는 배울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용서를 배울 수 있다고? '그 사람이 나한테 한 짓은' '죽을 때까지 용서할 수 없어요.' '그 인간처럼 나를 그렇게 속이고 기만하고' '뒤통수를 친 사람이 없었어요'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용서를 배워서 용서를 할 수 있다고? 또 용서는 당신이 내리는 결정이다. '누구나 용서를 배울 수 있다'라고 합니다. 중요한 점은 용서가 두 가지의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대요.


“첫 번째는 우리를 속이고 기만하고 나쁜 짓을 한 사람과 다시 얼굴을 보면서 인간관계를 맺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와 잘해보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으세요? 만약에 용서를 하지 않으면 되게 껄끄러워요. 어쩌면 정말 원수처럼 지내자, 그 사람과는 다시 얼굴을 맞대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하신다면 용서를 안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우리 삶의 또 그렇진 않잖아요. 늘 마주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요. 매번 만날 때마다 불편하고 이럴 순 없으니까. 그러면 나 자신도 안 좋고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더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일이고.

어떤 경우에도 고통스러운 과거와 화해하고 설사 지금까지 고통이 계속된다 해도 가해자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의 용서도 있다. 하지만 가해자와 두 번 다시 접촉하지 않아도 용서는 가능하다. 다시 안 만나더라도 용서는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건 또 다른 차원의 용서겠죠.

스탠퍼드 대학에서 <용서 프로젝트>를 한번 실험한 적이 있데요. 이 이야기 참 재밌습니다. 특히 남자 분들 한번 잘 들어보세요. 프레드 러스킨이라는 분이 스탠퍼드 대학의 <용서 프로젝트>에 참가할 자원자를 모집을 했습니다. 용서를 배우는 프로젝트를 진행 할 테니 한번 참여해보세요, 라고 했는데 관심을 보인 사람들의 80%가 여성이었다고 해요.

이 현상의 원인을 가지고 두 가지 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용서가 감성적 주제이므로 주로 여성들이 호응을 보인다.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더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라는 가설이 하나, 두 번째 가설은 남녀관계에 있어서 주로 남성이 가해자기 때문에 '용서를 해야 할 주체가 여성이라서 그런 것이다' 라는 가설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성분들? 여성분들도 다 동의하시나요?


자! 그러면 바로 결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연구결과는 두 가지 가설 모두 틀렸대요. ‘용서’란 주제가 여성적인 것이 아니라, 용서라는 단어가 남성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대요. 그래서 이번엔 모집할 때 공고를 다르게 했대요. '깊은 원한이 있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답니다. 그러자 당장 남자들이 우르르 달려왔대요.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능력은 사실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고 또 행복한 삶에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질문을 달리 하니까 남자들이 더 많이 왔다는 거예요. 사실은 남자나 여자나 다 용서와 화해 행복한 삶이 아주 중요한 주제였다고 합니다.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비행장에 가면 관제탑이 있죠? 관제탑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우리의 머리가 상공이라고 상상하고 그 상공에 비행기 몇 대가 떠있다고 가정을 하는 거예요. 우리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는 극복하지 못한 과거의 부정적 감정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다른 비행기들은 벌써 착륙을 했거나 착륙준비 중인데 유독 우리의 분노 고통 슬픔을 태운 비행기 몇 대만은 착륙을 하지 않고 계속 하늘에 떠 있는 거예요. 그 공간을 점령한 채 다른 비행기에게 방해가 되고 더 중요한 일에 쏟아야 할 우리의 관심을 자꾸 앗아갑니다. 비행기에 숫자가 많을수록 당연히 스트레스도 많겠죠. 착륙하지 못하는 이 비행기들이 바로 스트레스와 심적 부담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가족에게 구박받는 노인들, 어린 시절 폭행을 경험한 남녀, 파트너에게 폭행을 당한 남녀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분들도 <용서 훈련프로그램>을 통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고 해요. 오히려 반대로 분노나 적대감을 몇 년에 걸쳐서 계속 떨쳐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을 경우에는 분노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건강이 너무 너무 안 좋아졌다고 합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용서는 단순히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거죠. 용서는 우리가 그동안에 겪었던 수난사를 이제는 다른 것과 바꾸겠다고 하는 결심이라고 해요.


“우리에게 과거를 바꿀 힘은 없어도 현재를 변화시킬 힘은 있다는 깨달음이다. 상처가 얼마나 깊든 간에 얼마나 많던 간에 우리는 무력한 피해자의 역할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감정을 책임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은 황당한 꿈이 아니라 오래된 인류의 지혜, 종교의 가르침, 과학의 인식이다.”


제가 자주 가는 채널 중에 김홍희 작가님의 채널이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사진작가인데요. 김홍희 작가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사진가들 중에서도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 피해자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대요. 그분들은 사진을 찍어도 그런 사진만 찍게 된다고 해요. 그래서 사진사들도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건강한 생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상처를 받은 것을 분노로 표현하는 사진가가 있는가 하면, 건강한 생각으로 똑같은 상황을 닥치더라도 그것을 건강하게 생각하고 승화시켜서 사진을 찍는 분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분들의 사진은 정말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구독자 한 분께서 제게 소개해주신 책 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나를 치유해준 말 한마디』 라는 책이 있었어요. 여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버텨나가면 버틴다면 마치 모래폭풍이 불어오고 추운 겨울이 오더라도 웅크리고 버티고 버텨나갈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언젠가는 봄이 온다'.

마음의 상처가 있고 힘든 일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서로서로 우리가 버텨나갈 수 있는 용기와 격려해줄 수 있는 <오후의 책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봄이 올 때까지’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이야기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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