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빛
볕이 좋은 날에는 빨래를 해야 할 것 같다.
장마철에 찾아온 맑은 날은 더 그렇다.
가장 수고로운 부분을 세탁기에게 맡기고
깨끗해진 천을 집 안 곳곳에 널고 나면
그다음은 바람과 볕과 시간의 일.
섬유 유연제 향이 공간에 스며 환기되는 순간이 좋다.
바람에 살랑이는 천의 움직임을 보면
어쩐지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바삭해질 일만 남은 가볍고 산뜻한 마음이 그렇다.
그 마음 그대로,
오늘만의 볕과 바람을 간직한 채
언젠가 내 일상에 끼어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