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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Aug 20. 2021

생일을 맞는 자세

불혹이 되어 버렸지모야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생일 증후군처럼 생일 즈음만 되면 갑자기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우울한 기분을 느낀 지 몇 해 된 것 같다. 또 한 살을 먹었구나, 이제 몇 살이지, 지난 한 해 무엇을 했지 등등의 생각을 하다 보면 진지하다 못해 이제 누가 봐도 어린 나이가 아닌데 또 시간을 그냥 흘러 보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네 하는 결론으로 귀결되면서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것이 반복적인 패턴이다.


올 해는 특히 만으로도 마흔이 되는 해였다. 생일이면 내 생일뿐 아니라 친구들 생일까지 살뜰히 챙기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12시 땡 하면 시간 맞춰 축하 문자를 보내고 꼭 다 같이 모여 선물 주고받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마흔의 현실은 12시가 되면 어쩐지 아무도 내 생일 따윈 기억 못 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세상에 홀로 버림받은 기분마저 들면서 얼른 잠들어 버리거나 적당히 취해 있고 싶다. 다행히 친절한 카톡이 아침부터 온 세상에 내 생일을 알려주면 하루 종일 많진 않아도 꾸준히 받게 되는 생일 축하 메시지와 기프티콘에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 특별한 날이라는 생각 자체를 지우고 하루를 그럭저럭 잘 보내고 나면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엎드려 절 받기 마냥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내년에는 생일은 카톡에서 아예 지워야겠다 하고는 은근슬쩍 또 한 해를 넘긴다. 그렇다. 카톡이 없다면 내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가족뿐인 걸 잘 알고 있고 마흔이라도 그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쓸쓸함이다.


마흔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더 믿을 수 없는 건 아직까지 이렇게 마음은 전혀 마흔이 아니라는 사실.

세상일에 자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는 그 유명한 불혹인데!

이젠 누가 봐도 으른인데!


나는 여전히 세상 일은커녕 나 자신도 모르겠는 막막한 기분이라 종종 아이처럼 엉엉 울고만 싶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버티는 데 조금 익숙해졌을 뿐, 나는 여전히 자신이 낯설고 사는 일이 어렵다. 어떤 조건이 나아지면(회사를 그만 두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해외에 나가면) 달라질 줄 알았다. 조금 더 확실한 무언가를 손에 쥘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루틴 속에 흡수되도록 잘 훈련된 인간이었고, 조금이라도 막막한 상황과 기분은 참아낼 수 없는 조급한 사람이었다. 늘 핑계를 찾는 지질한 사람이었고, 그 핑계는 주로 육아였다가 최근엔 코로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핑계를 만들기도 어려운 때가 오고야 말았다. 나의 외동딸은 이미 십 대고 이번 내 생일에 혼자 유튜브를 보며 엄마도 만들어보지 않은 레어치즈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해 줄 수 있는 어엿한 존재가 되었다.


핑곗거리가 없어지자 내가 할 수 있을까에서 시작된 자문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하는 채근으로 이어지다 내가 꼭 써야 하는 사람일까 하는 자학으로 결론 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다시 써봐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데는 얼마 전 난생처음으로 들었던 첨삭 수업의 영향이 컸다.(작가님의 과분한 칭찬에 용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주제가 중요하다는 마지막 코멘트에 그만 덜컥 붙잡혀 지난 두 달간 아예 한 자도 쓰지 못한 나의 우유부단함이여!)

 

마흔에도 분명 칭찬 효과는 있었다. 재미있게 읽었다며 앞으로도 공개적으로 꾸준히 글을 써봤으면 좋겠다는 조언에 나는 감동했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가장 듣고 싶었던 분에게 들었을 때 오랜만에 힘이 났다. 설혹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좋아하는 작가님께 이런 피드백을 들어 봤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앞으로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제대로 칭찬을 받지 못했어도 아마(소심한 성격이라 백 프로 장담은 못한다.) 다시 글로 돌아왔을 것 같다. 오랜만에 진지하고 순수하게 글을 쓰면서 행복했으니까. 내 글이 다른 글들과 묶여서긴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나온다는 상상을 하니 정말 설렜다. 잘하고 싶었다.


조금 더 집중해서 쓰고 싶어 브런치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사실 조금 전까지도 (그 넘의 주제가 정리되지 않아) 오늘은 덮을까? 내일부터 제대로 시작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일단 작게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내일도 없을 것을 알기에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키보드를 누르고 있는 중이다. 또 고민만 하다 올 해를 다 보내기 전에, 마흔이 된 오늘 이 순간의 나와 마주하려 애쓰고 있다.


그간 버려진 미니홈피부터 쓰다 폐쇄한 블로그,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그라들고 있는 인스타그램까지 이어지는 나의 전적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과연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다시 한번, 이번만큼은 꾸준히 솔직하게, 나의 부엌을 마감하고 아이가 잠들고 난 저녁 11시면 작은 식탁에 홀로 앉아 적어보리라. 그 과정에서 난 자주 부끄럽고 때론 처절하겠지만 피하지 않고 엉덩이를 단단히 붙이고 앉아보려 한다.


againJ.

불혹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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