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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Aug 26. 2021

어른 아이를 위한 위로

tvN <너는 나의 봄>

이 드라마는 우연히 넷플릭스를 넘기다 서현진 배우를 보고 고민 없이 시작했다. 그녀 없는 <또 오해영>은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서현진의 연기는 무척 자연스럽고 유쾌한데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딕션이 좋은 건지 유난히 대사 전달력이 높고 혼자 튀지 않아 상대 배역과의 케미도 좋은 편이라 로맨틱 코미디에 매우 적합한 여배우가 아닌가 싶다. 전반적으로 착한 드라마였던 만큼 다소 지루하게 늘어졌던 최종회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15회까지는 스릴러와 로맨스의 만남도 신선했고, 무거운 주제를 때론 가벼운 듯 담담하게 그려낸 방식도 주변 인물들까지 고루 비중 있고 따뜻하게 다뤄 준 시선도 모두 좋았던 드라마로 기억할 것 같다.


역시나 이 드라마에서도 너무 전형적이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여주로써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낸 서현진을 비롯 드라마를 부드럽게 받쳐주던 김동욱의 안정된 연기나 띵언 제조기 문미란 여사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최정민과 이안 체이스로 일인이역을 했던 윤박이었다. 윤박이라는 배우는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속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서늘한 눈빛의 입양아 체이스와 불안하지만 따뜻한 최정민이라는 전혀 다른 쌍둥이를 각각 완벽하게 연기해서 스릴러물의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각자의 숨겨진 사연에 귀 기울이게 만들어 전반적으로 드라마를 힘있게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상처는 있다. 특히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깊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또한 그렇다. 다정, 영도, 체이스, 정민이 가진 어린 시절 상처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모두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어른 아이가 되었다. 겉으로는 똑똑하고 씩씩한 어른이 되었으나 번번이 변변찮은 상대들만 골라 실패한 연애를 이어가는 다정(서현진)은 여전히 속으로는 함께 울어 줄 검은 고양이나 어렸을 때 부러웠던 옆 집 아저씨의 귤 한 봉지를 품고 산다. 형에게 내어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주고도 끝내 형을 살리지 못해 미안하고 뇌사자의 심장을 받고 혼자 살아 또 미안한 우리 영도쌤(김동욱)은 다른 사람들을 헤아리고 품어주면서도 정작 본인 감정은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거나 포기하고 살려한다. 출생 신고도 되지 않은 채로 태어나 이름마저 공유하며 살다 끝내 모든 어른들에게 버림받은 쌍둥이 형제의 삶은 더 눈물겹다.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우리 모두는 잘못도 없이 언젠가 상처를 입은 채 살아가는 어른 아이들이란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피투성이가 된 세 명의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들이 서로 다른 어른을 만났다고 치죠. 한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었고, 또 한 아이는 남을 위해 더는 자신에게 상처를 내지 않도록 숨겨졌지만, 다른 아이는 신발이나 위로 대신 비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세상엔 발이 없는 아이도 있어. 그런데 넌 신발이 없다고 징징대면 안 되지."

그날의 일이 세 명의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엄마의 신을 신었던 아이와 형에게 신을 벗어 주지 못했던 아이는 타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힘겨울 수 있겠지만 끝내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죄책감일 뿐 죄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다른 한 아이는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좌절이, 분노가 되는 발화의 순간이 올 수 있을 겁니다.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생겨나는 거고요.

<너는 나의 봄, 15화 중에서>



우연히 요즈음 존 브래드쇼의 <상처 받은 내면 아이 치유>란 책을 읽고 있어 <너는 나의 봄>에 등장하는 어른 아이들을 더 유심히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이미 벌어진 어린 시절 상처로 점철된 과거야 어쩔 수 없다해도 그 상처를 안고 사는 오늘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책장을 넘기고 드라마를 보았다. 존 브래드쇼는 상처를 극복하는 가장 첫 단계는 보고하기(debriefing), 즉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이야기의 대상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당신이 겪은 아픔을 이해해줄 사람이어야 한다고 한다. 이때는 상처를 공유한 가족보다는 믿을 만한 친구 혹은 의문이나 논쟁, 충고가 아니라 그저 들어줄 수 있는 다른 존재가 낫단다. 드라마의 다정과 영도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상처를 가진 어른 아이지만 여전히 (어른 아이를 포함하여) 다른 아이를 구할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기억해야 할 모든 것은 지금 내 안에 묻혀 잊혀진 듯한 상처도 반드시 치유가 필요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의 상처를 가만 들어줄 사람 그리고 약간의 용기라는 사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봄이 되어보자고 드라마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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