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갑작스레 질문하다.
제목은 마치 자기계발서 같지만, 그런 것을 쓰기에는 성공 같은 것과는 먼 인생.
하지만 그 시절, 인생은 갑자기 제게 질문을 던졌고, 저는 간절하게 답이 필요했습니다.
그 시절이란, 쉽게 말해 젊다 못해 어린 날을 말합니다.
5월의 나뭇잎처럼 싱그럽고 푸름이 떠오르는 젊음이란 그 시절을 지나온 세대의 회상이죠.
자신의 시절을 잊거나 개인화 시키지 못하여 그저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징으로 얼버무리는 인상이요.
하지만 젊은 날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젊음은 한 가지 상징일 수 없지요. 물론 나뭇잎처럼 싱그러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허겁지겁 뭔가를 따라잡느라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마르는 사이 지나갑니다.
또 사랑의 열병에 인간 관계의 거미줄 안에 끈적끈적 벗어날 길 없어 보이기도 하죠.
저는 그 중에서 이제 막 사회인이 되었던 시절로 돌아가, 지금의 초보 사회인에게 말을 걸고 싶습니다.
제가 말하는 사회인이 꼭 젊은 것만은 아닙니다. 10대든, 20대든, 30대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먹여 살려야만 하는 사정인(자의든 타의든)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같은 아르바이트라 하더라도, 부모님 슬하에서 용돈벌이를 하는 아르바이트 말고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된, 독립을 이뤄낸 시기를 말합니다. 흔히 대기업 같은 직장을 다니면 독립했다고 생각하지만, 버젓한 직장인도 독립하지 못한(않은) 경우도 보았습니다. 너무나 부럽게도 원래 부잣집 자식이라 그 많은 월급을 오로지 취미를 누리는 데 사는 사람도 보았거든요. 물론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주 중에서 가장 해결하기 위한 집과 생활비는 들지 않으니 취미를 누리고도 돈이 남아 저축이나 투자를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성실하다는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죠.
그런 인생 말고, 진짜로 독립해야 하는 젊음들. 의식주를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은 돈 버는 일 외에 수없이 많은 것들에 부딪치게 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회는 오천 년전부터 존재해왔고, '나'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신참이니까요. 사회생활의 첫 시작이 '을乙'일 수밖에 없고, 을이 편안할 리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독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지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돈"입니다.
당장 오늘 하루만 살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죠. 돈을 벌기 위해 우리가 가진 유일한 도구는 바로 노동력입니다. 머리에 담은 지식, 근육에 담은 힘... 그 모든 것이 노동력이 되기 위한 준비였죠.
어딘가의 일꾼이 된다거나 보람있는 나날을 보내기 전에 가장 먼저 돈을 벌 수 있는 노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독립의 첫 걸음인 돈을 벌기 위해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는 동안,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보았던 그 수많은 시험들, 그렇게 듣기 싫던 잔소리, 나의 부모님의 엄청난 돈이 오로지 '노동력'이 되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요.
노동력을 알뜰하게 준비했는데도, 사회는 웬만하면 우리를 데뷔시키지 않는 것도 말이죠.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누구나 '을'이 됩니다. 이건 왕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예외가 없습니다.
왕의 자식은 온전한 왕족이 되기 위해 우선은 윗전을 모시고 전례에 익숙해져야 온전한 일원이 되었으니 말이죠.
그렇게 해서 드디어 어딘가의 노동력으로 인정받은 날, 어려운 시험이든 아니든 차가운 면접을 통과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회사에 들어간 그날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합니다. 신참례가 없다 해도 매순간 철저히 '을'의 실제를 경험하죠.
한참 직장에서 MZ의 당황스러운 태도,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 '개념없는' 직장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었죠. 하루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거나, 사표도 쓰지 않고 나가 모든 연락을 끊었다거나, 상사에게 욕을 퍼붓고 나가버렸다는 이야기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독립을 피할 수 없고, 그러기 위해 '돈'을 벌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부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루 만에, 어떤 식으로 '때려 치웠다'한들 끝이 아닐 겁니다. '을'이 겪는 모든 것은 겪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무턱대고 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전혀 통하지 않는 궁합이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어쨌든 시작하는 모두는 을이고, 을로서 겪어야 하는 많은 일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상황들이 앞으로 제가 쓸 주제일 것 같네요.
하지만 지금은 새삼 내 앞에 버티곤 선 벽, '내가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독립 첫 주에서 한 달 정도의 기간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때의 괴로움은 오늘의 일만은 아닙니다.
조선 태종, 무려 1405년에 신참례를 없애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온 것을 보면, 신참례는 그 이전부터 유구한 전통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참례新參禮'란 어떤 무리(여기에서는 관직사회)에 들어온 신입이 치러야 하는 의례인데, 말이 좋아 의례이지 실제로는 온갖 방법으로 새로 온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술 마시고, 짓궂은 장난에 낭패를 당하다 죽는 경우도 있었다니 그 지독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속한 율곡 이이도 그 괴로움을 없애라는 상소를 쓸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고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악습도 아니죠.
"rite of passages", 통과의례라 불리는 것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옮아가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관례였습니다.
지금 번지점프라 하는 것도 본래는 통과의례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성장통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 자라기 위해 통증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두어 살부터 열 살 무렵까지 겪는 자연의 통증과 달리 오래된 사회가 갓 독립한 성인에게 주는 성장통은 때로는 마음까지 아프게 합니다.
너무 괴로워서 그만두고 싶을 때, 주변의 믿을 만한 선배들이 해준 말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한 달만 견뎌 봐. 월급은 받고 그만 둬야지."
이 말을 듣고, 한 번 참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도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신입 한 달의 월급으로 퉁치기에는 나를 괴롭히는 상사나 차가운 동료들이 더 컸으니까요.
"석 달만 더 견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선배마저 섭섭했습니다. 나의 괴로움을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선배가 한 달로 뭔가를 결정하기에는 성급하다고 말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죠. 갓난아이도 태어난 지 백일은 지나야 세상에 존재함을 축하하는 잔치를 여는데,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 석 달을 못견디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죠. 석 달은 괜찮아지기는커녕 괴로운 것들의 속살이 좀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할 뿐이라는 것을요. 이제야말로 그만 둘 테다, 하고 선배에게 말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1년을 더 견뎌 봐. 네 마음대로 나가면 실업급여도 못 받는다고."
너무너무 야속한 말을 하는 선배한테 화를 내지도 못하고....... 하지만 그만 두고 다른 뭔가를 준비하려면 또 그놈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니 선배 말대로 정 못 견디겠으면 상황을 봐서 자의가 아닌 퇴사를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석 달 더하기 아홉 달... 그 동안 갖게 되는 것이란 희망이 아니라 더 다양한 괴로움일 뿐입니다. 겨우겨우 1년을 견디고, 이젠 선배 따위도 무시하고 사표를 던지려는 순간 선배가 내 손을 붙잡습니다.
"3년만 더 견뎌 봐. 지금 그만두면 너무 아까워. 3년이 지난 다음에는 정말로 네 마음껏 해도 돼. 더 있든, 그만 두든 안 말릴게."
"버틸 만큼 버텼잖아요. 도대체 왜 말리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괴로운지 이해는 하신 거예요?"
처음으로 말대꾸를 하는 제게 선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해하지.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지금 괴로움과 처음 한 달의 괴로움이 같은지......."
선배의 말에 순간 깨달았습니다. 처음의 괴로움은 그저 버티는 것이었지만, 1년이 지난 후에는 괴로움도 이골이 나서 몇 가지 요령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죠.
상사가 이유없이 화를 낼 때는 화장실에 간다든가, 얼굴 전체에 짜증이 가득한 월요일 아침에는 웬만하면 보고하러 가지 않는다든가, 휴가나 연차는 당연한 나의 권리지만 쓸 데 없이 불쾌하지 않기 위해 왠지 즐거워보이는 금요일 오전에 말을 꺼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직원들 중에 보기 싫은 인간이 있기만 한 것도 아니고, 친하게 된 동료도(운 좋으면 죽이 잘 맞는) 한둘이 있다는 것도 버틸 힘이 되어 주었죠. 큰 괴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3년까지는 버티는 것이 낫다는 계산을 할 정도도 되었습니다. 이것도 선배가 해준 말이지만, 3년은 견뎌야 다른 곳에 이직할 때 흠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어떤 분야에서 경력을 인정받는 기간도 약 3년 정도였고요.
그때 저는 경력이 생길 때까지 버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런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을이겠지만, 적어도 이 조직에서는 순간이나마 '갑'인 체 할 수 있는 을일 것이라고요. 그리고 괴로워서 사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계획에 따라 사표를 '낼'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는 3년 후에 갖게 될 선택지가 꽤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봐야 돌상 정도였다는 것을 지금은 압니다. 그래도 사회 초년생에게 그만하면 잔치상이라는 것도 알고요.
그리고 그때 선배의 격려는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으로 버티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힘이 남아 있으니 버틸 만하다고 판단했기에 했던 말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어쨌든 울상을 하고서도 꾸역꾸역 회사에 나왔으니까요. 그만두고 싶다고 매일매일 생각하면서도 회사에 나가 또 괴로움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선배는 그 모습을 봤던 겁니다. 그때의 선배처럼 저도 버틸만큼의 괴로움 속에 있다면 같은 말을 해주었을 겁니다. 하지만 조언도 구하지 않고, 말도 없이 며칠 씩이나 결근을 한다면? 자주 멍하니 있다면? 그때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당장 그만 둬!"
손이라도 끌고 데리고 나가 제 자취방으로 데려갔을 겁니다. 재우고, 먹이고, 함께 바람쐬러 나가면서 제손으로 사표를 써서 회사에 던져둘 만큼의 힘은 채워주었을 겁니다. 설사 백수가 된다고 해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거든요.
하지만 근근이 회사에 출몰하는 후배라면, 이 인간도 저 인간도 나를 괴롭힌다고 울먹이고 있다면 예전의 선배처럼 살살 꼬드겨 3년을 채우게 할 생각입니다. 사회에서 내 자리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누군가 대신 해줄 수도 없으니 돌상을 차릴 수 있을 때까지는 옆에서 섭섭한 말을 해서라도 붙어있게 할 생각입니다.
나는 군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 로이 스크랜턴,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 중
독립된 성인이 되기 전, 그리고 독립을 이루고 조직에서 벗어난 인간은 사회에 대하여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란 모순적이고 비인간적이라고 말이죠. 같은 말이지만, 두 부류의 말의 무게가 같지 않다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사회에 발을 딛는 초년생, 겨우겨우 견뎌서 첫 월급을 받은 직장인의 질문은 실존을 좌우할 만큼 무겁습니다. 머리를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워서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나의 인생은 앞으로도 이런 식일까?"
"저 상사를 피해도 언제나 지뢰밭 같은 인간이 숨어 있겠지."
"이게 과연 인간다운 삶일까?"
...수많은 괜찮은 선배들이 한 달을, 석 달을, 1년을, 3년을 버티라고 말했던 것은 로이 스크랜턴의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전쟁에 나설 때 승리만 생각하는 군인은 어리석습니다. 죽을 수 있다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 정도는 당연하게 각오해야 합니다. 적군의 무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섰을 때, 누구도 전투를 대신 해주지 않으니 말이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죽지 않을 만큼의 상처는 '다행'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죽는데 다행할 건 없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생각하는 괴로움이라면 당장 그곳을 박차고 나가야 합니다. 사회에 발을 딛는다면 다시 괴로움을 견뎌야 하겠지만, 괴로움에도 종류와 강도가 있으니 그나마 나은 곳으로 가면 됩니다. 지금은 패배 같겠지만, 사회는 막막할 만큼 오래되었기에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전장이 존재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