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주)비룡소는 ‘용이 꿈꾸는 연못’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출판사는 어린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상상력이 비상하는 연못이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아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마음 한 귀퉁이에 무한한 상상력을 간직하고 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른이 되면서까지 그 동심 한 자락을 지닌 사람들은 별로 없다. 승천하는 용이 되기 전에 차가운 현실에 부딪혀 상상력의 날개를 잃어버린 잠룡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중에도 부서진 옛 날개를 붙들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 또는 아이들의 꿈을 함께 키우고 싶은 선생님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매년 방학 때면 비룡소와 강원도 홍천의 최고봉 선생님이 협업하여 이야기와 꿈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주제로 워크숍을 연다. 사실 이 모임은 서울에서 이틀에 걸쳐 거의 하루 종일 진행되기에 웬만한 결심 없이는 참여자들이 참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워크숍은 전국 방방곡곡 선생님들이 새벽부터 차를 타고 올 정도로 인기다. 각 지역에서 온 꿈 꾸는 이들은 피곤한 얼굴로 왔다가 모든 일정이 끝날 때면 환한 얼굴로 돌아간다. 역시 이 워크숍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서로에게 얻은 에너지 때문일지, 아니면 강연자들에게 받은 메시지 때문일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워크숍에 참여하고 나면 마음속 한구석에 또다시 도전할 힘이 생긴다는 점이다.
2024년 이번 여름 북수다 X 비룡소 워크숍은 이틀 동안 각각 다른 분야 강연자들의 진솔한 입담이 가득 채워졌다. 첫째 날의 1교시는 김찬용 도슨트가 ‘르네 마그리트’가 부여하는 지적 호기심과 ‘프리다 칼로’의 굴곡진 삶에 대해 해설했고, 2교시는 청강대의 김은권 교수가 나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고전 문화를 연결해 ‘스토리텔링’에 대해 설명했다. 둘째 날의 1교시는 허연 시인이 시가 지닌 특별한 의미와 동시 쓰기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마지막 2교시는 <만복이네 떡집>으로 유명한 김리리 작가가 나와 베스트셀러 ‘떡집 시리즈’를 비롯한 각 시리즈 출판 과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강연 내용은 김찬용 도슨트의 미술 이야기였다.
김찬용 도슨트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특별했던 이유를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배치해서 낯설게 바라보는 화법’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평범한 일상에서 그 너머 존재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 붓을 들었다. 대부분 사람이 담배 파이프 그림을 보고 “담배 파이프”라고 대답할 때, 그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줄 알았고,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화가이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에 가까웠던 르네 마그리트였다.
도슨트가 설명하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 역시 특별했다.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삶은 인생 자체가 고통의 연속으로 보일 만큼 비참했다. 프리다는 18세 때 전차 사고로 척추가 망가지는 상처를 입었고, 이후 자유로운 영혼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사랑을 했지만, 동시에 피눈물을 흘리는 정신적인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의 인생을 미워하지 않았다. 프리다는 말년에 척추 통증이 도져 침대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마지막 그림이 바로 수박 정물화인 ‘VIVA LA VIDA’이다. 해석하면 ‘인생이여 만세’인 셈이다. 단단한 껍질을 지녔지만, 연약한 과육을 지닌 수박, 그리고 스페인어로 쓰인 ‘VIVA LA VIDA’,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유작은 유명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에 큰 영감을 주어 명곡의 이름 속에서 영원히 반짝이고 있다.
사람들은 나이를 한 살씩 먹다 보면, 이런저런 현실의 벽들과 온갖 스트레스를 시달린다. 그런 과정들을 몇 번 겪고나면 어느새 세상의 틀 속에 맞추는 본인의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지금 내 나이로 그걸 계속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이제는 포기할 만도 하지 뭐.’ ‘그냥 편하게 살자.’ 30대는 이렇게, 40대는 이런 일을, 50대는 이런 삶을…. 인생 공식이 있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보는 시선에 굴복하며 지내게 된다.
한동안 마음속을 잠식하던 나이의 불안과 무기력의 압박 속에서 고민하며 참여했던 이번 북수다 X 비룡소 워크숍이었다. 어려운 현실의 벽 앞에서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강연자들의 모습들을 보고 나니 새로운 힘이 솟는다. 그리고 그들이 평생을 걸쳐 고민하고 연구했던 내용들 역시 촉촉하게 마음을 적신다. 어쩌면 이번 워크숍에서 보낸 시간은 앞으로 꾸려갈 삶의 모습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를 외치며 살았던 프리다 칼로처럼, 나 역시도 특별한 인생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싶다는 소회를 슬그머니 밝혀본다. 평범함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았던 르네 마그리트처럼, 매 순간 세상 어린이들과의 관계에서 아름다운 동심을 발견하며 지금의 내 삶 역시 한 편의 푸르른 시로 완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