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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우리 아파트의 그 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K-아줌마, 바쁘지만 느린 수원에서 다정함을 배우다

by 하늘진주

우리 아파트 싸움 개는 여전히 기운이 왕성하다. 2년 전, 그 녀석의 사나움을 아는 모든 사람에게 고자질하듯 글을 썼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달라진 건 없다. 매일 타고 내리는 20년 된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이제는 몸을 바꿔달라 아우성치는데, 그 싸움 개는 나만 보면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싸움을 걸 궁리만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 표정은 더 딱딱해졌고 그 녀석은 더 사나워졌다는 것. 사람 좋아하던 내 얼굴도 이제 그 녀석과 주인을 보면 인상부터 찡그린다. 2년 사이 늘어난 내 주름의 몇 줄쯤은, 그 싸움 개와의 갈등이 원인일 것이다.


처음부터 그 싸움 개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 녀석은 겉보기에 참 사랑스러운 외형을 지녔다. 여성의 품에 폭 안길 만큼 작은 체구, 하얀 눈처럼 보슬보슬한 털, 검정 구슬처럼 맑은 눈. 누구라도 호감을 느낄 만한, 너무 귀여운 강아지였다. 어린 시절 개에게 물려 세상의 모든 개를 무서워하던 나도 그 녀석만큼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절로 눈이 갔다. 그만큼 예뻤다. 그러나 그 녀석은 나의 따뜻한 시선조차 발버둥 치며 거부했다. 그 ‘까탈스러운’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처럼 짖어댔고 온몸으로 날뛰었다. 이런 싸가지!


껄끄러운 첫 만남에도, 나는 한동안 그 녀석과 친해지려 애썼다. 마주칠 때마다 웃었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인 양 따뜻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그 개는 유난히 성질이 사나웠다. 체구가 있는 아저씨든, 상냥한 미소를 보내는 아줌마든,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유치원에 가는 꼬맹이든 — 누구를 만나도 으르렁거렸다. 2년째 변하지 않는 그 개를 보며, 나도 태도를 바꿨다. 어쩌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탈 때면 ‘저놈의 성질머리!’라고 속으로 욕하며 층수 표시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차가운 침묵 속에서 그 개와 주인을 외면했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 강아지의 주인도 문제였다. ‘문제 자식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는 말처럼, 이건 강아지 양육에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주인은 좀처럼 그 녀석을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밖에서 산책을 시킬 때도,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늘 품에 안고 다닌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녀석의 고약한 성격을 알아서인지, 아니면 더러운 땅바닥에 못 내려놓을 만큼 귀한 자식이어서인지. 다만 분명한 건, 주인은 언제나 그 녀석을 따뜻한 품속에 꼭 껴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해가 지났지만, 그 개는 여전히 짖는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사람들의 신발 소리에 맞춰 세상을 향해 짖는다. 나는 여전히 그 소리가 싫다. 문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제발 오늘은 안 마주치게 해 주세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개가 조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공사를 앞두고 모든 사람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였다. 21층 어딘가에 사는 그 개가 문득 걱정됐다. 계속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 텐데, 주인이 그 녀석을 안고 오르내리기도 힘들 텐데…. 미운 정만 쌓였던 마음속에 그 싸움 개를 향한 근심이 살짝 스며들었다. 이게 미운 정일까. 무채색 같던 내 마음을 온갖 색으로 물들이는 그 개는, 오늘도 우리 아파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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