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나오는 문장이다.
1980년대 아일랜드. 미혼모와 고아 소녀들이 강제 노동을 하던 ‘막델레나 세탁소’.
석탄을 배달하던 평범한 가장 빌 펄롱은, 어느 날 맨발로 경당을 닦는 소녀를 본다.
아내는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러나 펄롱은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외면하지 않기로, 작은 정의의 불씨를 품기로 결심한다. 말미에 그는 소녀 세라를 구해 수녀원을 떠나는데, 그 장면에 깔린 문장은 다음과 같다.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이 문장은 인간이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때 느끼는 내면의 환희와, 스스로를 구원하는 빛의 순간을 상징한다. 작은 선의의 선택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임을, 이 작품은 조용히 말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공정무역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사소한 실천,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2016년, 나는 공정여행으로 필리핀 파나이섬 안티케 지역의 마을을 찾았다.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사탕수수를 베고, 그걸로 만든 마스코바도(원당)로 달디단 음식을 함께 나눴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면 해 질 녘 마을은 설탕 냄새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서로의 노래를 알려주고 몸짓으로 흥을 더하고 스스럼없이 집에 초대도 해 주었다.
마스코바도 농장 수익으로 지어진 학교도 가보았는데,
교실 안은 오래된 나무 책상과 아이들의 꿈으로 반짝였다. 한 소녀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한국의 겨울, 눈을 꼭 보고 싶어요.”
그 말이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정전이 잦아 불빛 하나 없는 밤이었지만,
그녀의 말은 별빛처럼 내 마음을 밝혀주었다.
얼마 전 SNS에서 그녀를 다시 보았다.
한국을 방문해 패딩을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Tajan Gillian
언제나 미소가 그득하던 그 얼굴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녀의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의 꿈과 웃음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공정무역이라는 긴 다리의 존재 이유를 다시 일깨워 주었다.
공정무역은 경제의 언어를 빌려 쓰지만,
그 본질은 ‘관계의 회복’에 있다.
그들의 노동이 존중받을 때, 우리의 소비도 존엄해진다.
공정무역은 가난한 나라를 돕는 ‘착한 소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약속’이다.
경기도 부천시청 일원에서 '2025 경기 공정무역 포트나잇(Fortnight)'이 막을 올린다.
공정무역 포트나잇은 1997년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시민 참여 캠페인으로,
2주간 지역사회가 함께 공정 무역의 가치를 공유하고 실천하는 축제다.
올해 경기도에서는 부천을 시작으로 용인, 광명,시흥, 화성, 고양 등
18개 도시가 참여해 '공정한 세상을 위한 2주간의 마을 축제'를 이어간다.
용인에서도 시민과 함께하는 포트나잇이 펼쳐진다.
공정무역 카페에서는 드립백 만들기 체험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캠페인을 준비하고,
생협과 가게에서는 공정무역 간식과 이야기가 오간다.
나는 그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난다.
“공정무역이 생산자에겐 좋지만, 소비자에게는 뭐가 좋을까요?”
그 질문에 나는 웃으며 답한다.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기쁨이,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는 일.
그 마음이 모여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펄롱이 그랬듯,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단지 눈을 돌리지 않고, 누군가의 삶을 외면하지 않는 일.
그 마음이 모이면, 한 도시의 축제가 되고,
그 축제가 모여 세상을 비추는 별자리가 된다.
공정무역 포트나잇의 현장에 서 있을 때,
나는 다시 그 첫 장면을 떠올린다.
차가운 경당의 바닥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닦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들 곁에서,
작지만 단단한 믿음 하나를 건넨다.
“사소한 실천이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