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을 기다리며

굴러온 돌 버텨내기


인터넷으로 주문한 감자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다.


작고 개수가 많은 감자 중에 가장 작은 감자 하나를 깜박하고 지내다, 어느 날 발견했을 때는 이미 싹이 꽤 자라 있었다. 상추 키우기 세트를 샀다가 웃자라 수풀이 된 상추를 추수하고, 얼마 전까지 파를 심고 키워 두어 번 잘라먹은 후 그마저도 시들해져 한켠에 두었던 기다랗고 낮은 연두색 화분이 생각났다. 그 화분에 별 생각 않고 감자를 묻었다. 심은 것이 아니라 정말 감자를 묻은 것이었다. 그것도 흙 아래 단단히 묻은 것이 아니라 흙 위로 싹 난 부분이 다 보이게 감자를 묻었다.


감자는 무심히도 자라 나중에는 다른 싹도 땅을 뚫고 올라와 한 무리가 되었다. 생각보다 무성하고 아기자기 단단하게 올라오는 감자 싹이 신기해 인터넷을 찾아보니 본래 싹 난 감자는 잘라서 심고 뿌리 식물이니 화분도 깊고 큰 것을 준비해야 하는 거였다. 큰 기대도 없이 노는 빈 화분을 일이나 시켜보자고 한일인데 튼튼하게 커주니 신기했다.




다른 화분에 파뿌리 두 개도 심었다. 그전에 파를 심었을 때 생가보다 잘 커주었기에 기대는 오히려 파쪽이었다. 기억날 때마다 주기도 없이 두 화분에 물을 주었다. 그런데 웬걸 파는 예전에 심었던 것보다 굵기도 얇고 관심에 비해 자라지 않고 감자는 기대보다 아담하고 단단하게 싱싱했다.


그런데, 파 끝이 이상해서 보니 파는 뿌리를 제대로 못 내렸는지 둘 다 쏙 하고 힘없이 빠져버렸다.


그렇지, 노력 없이 거저 되는 게 있나, 영양제라도 주었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감자 싹, 아니 제법 큰 감자 줄기 끝이 이상하여 자세히 보니 꽃이 피려는지 작은 봉오리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다. 기대도 관심도 없이 혼자 싹을 만들고 주검을 묻듯 땅에 묻어버린 감자가 심지어 꽃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근래 십수 년간 다닌 직장에서 나 잘났다는 마음으로 다니다가 몇 년 전부터 내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고뇌에 빠져있었다. 나는 씨앗에서 시작해 이제 겨우 모종이 되어 더 넓은 곳에 심겨 꽃도 피고 열매도 맺어 주인한테 인정받아볼까 하였는데 주인이 새 모종을 가져왔다. 게다가 나는 한편 화려한 꽃이 아니라 뿌리가 튼실한 감자에 가까운데, 화려하고 예쁜 꽃을 데려다 애지중지하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꽃을 예뻐하니 꽃들에게 밀려 뿌리에 열매도 달기 전에 잡초 취급당할까, 내가 감자인 줄은 알까 속상하고 복잡한 심경 때문에, 꽃도 화분도 주인도 다 싫어 못난이가 되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는데 홀로 싹을 피워버린 저 작은 감자는, 무심히 물만 주었는데 꽃을 피워 자기를 내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써도 되지 않는 일이 있고, 애쓰지 앓아도 될 것은 된다. 내가 주인이나, 애지중지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꽃을 피우려는 저 감자가, 뿌리에 감자를 키워내지도 못하게 작은 화분에 가둬버린 저 감자가, 스스로 해낸 일이 내심 대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될 것은 그냥 두어도 되고 되지 않을 것은 마음 졸이고 애써도 안 되는 것인가 하며, 그러저럭 운명으로 살아야 되는 건가 하여 다시 회의론자가 될 뻔하였다.


그러나 곰곰이 다시 저 감자가 내게 준 의미를 생각해본다.


무엇을 기대하고 이루어지기를 애쓰는 마음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자연의 순리 일지 운명일지 내 선택의 결과일지 알 수도 보이지도 않는 어떤 것으로 인해 갖은 노력이 없이도 될 것은 되고 애써도 되지 못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선은, 기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라도, 꽃이든 열매든 피울 것이다. 다른 무엇이 없더라도 내 노력에 내가 대견하여 나를 존중하는 자존감이라도 높일 것이다.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하대하고 애써도 되는 것 하나 없는 형편없는 이로 스스로를 대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나를 꽃도 열매도 보여주기 전에 뽑아내지 않을 것이며 그럴 자격도 없다.


내가 베란다 한켠에서 자라는, 묻었으나 살아나 버린 저 감자를, 제가 스스로 죽어버리기 전까지는 뽑아낼 생각이 없고 한없이 대견한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꽃이든 열매든 혹은 그냥 잡초로 살아내더라도 스스로의 생을 살아낼 자격이 있음을 감자가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존재함을 최선으로 보이는 삶은,


잡초로 오해받더라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며 당당하고 생생하게 살아낼 만하다. 내가 화려한 꽃은 아니나 보이지 않게 실한 열매를 키우고 있는 감자라면 그 가치는 언젠가 알게 될 터이다.


지금은 주인으로 내 감자가 감자꽃을 아름답게 피워내도록 도와주는 것이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나도 보이든 보이지 않든 성실하게 꽃과 열매를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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