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by 지선


균형이란 고정된 멈춤이 아니라 리듬이며, 조율이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하나의 훈련이다(주1).

무언가를 내려놓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즉각적인 욕구를 미루는 일도,

익숙한 방식에서 한 발 물러서는 일도
몸과 마음은 본능적으로 버틴다.


그런데 이상하다.

눈앞의 욕구는 좀처럼 포기하지 못하면서도

정작 내 인생을 포기하는 일은 잘도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고통보다,
균형을 잃은 채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고통스럽다(주1)는 사실을.


이 지점에서 나는
몸의 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몸은 언제나 먼저 반응한다.
불편함, 긴장, 꺼림칙함,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

몸의 감각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신호에 가깝다.
그 자체로는 방향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인가가 어긋나거나, 낯설거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줄 뿐이다.

직관은 그보다 한 박자 늦게 온다.
감각 위에,
시간 속에서 축적된 경험과
반복된 판단이 겹쳐질 때
비로소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몸의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즉시 따르기보다 잠시 멈춰보려 한다.

이 불편함은
새로운 균형을 요구하는 신호인가,
아니면
익숙한 나를 지키려는 관성인가.


이 구분을 연습하는 일이

스캇 펙이 말한 쾌락의 연기와 책임, 진리와 현실에 대한 충실함이

하나의 균형으로 작동하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포기 역시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을 늦추는 태도처럼 보인다.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도
자아가 즉시 중심에 서서 모든 의미를 독점하지 않도록
한 발 물러서는 일.


그래서 포기는 무언가를 잃는 행위라기보다

다른 가능성이 들어올 자리를 조심스럽게 비워두는 '틈'에 가깝다.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그래서 이 생각들 역시 결론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나를 붙잡고 있는 질문들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말은
어쩌면

더 멀리 가라는 명령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몸이 먼저 보내온 감각 중

직감이 말하는 방향과

해석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구분할 수 있는지를

묻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책의 다음 페이지로
조금 늦게 넘어간다.


필사1.jpg 아이가 만들어준 책갈피와 필사 문장


주1. 스캇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할 길.M.스캇펙.열음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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