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지만,
엄마라는 말만으로는
아이의 모든 계절을 감당하기엔 모자랐다.
그래서 나는 자연에게 의지했고,
자연은 조용히 나와 아이를 함께 품어주었다.
나는 엄마지만,
엄마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아이를 내 품에 안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이를 온전히 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늘 죄책감을 품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덮을 만큼의 사랑과 노력을
과연 내가 다 해냈는지, 지금도 자주 묻곤 한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다.
내가 감당하지 못한 그 틈을,
자연이 조용히 메워주고 있었음을.
아이를 데리고 밭으로 나가 작물을 심을 때,
나는 동시에 아이를 자연에게 맡기고 있었던 것 같다.
햇살과 바람, 땅과 뿌리,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자연의 방식이
아무것도 몰랐던 나의 어설픔을
조용히 감싸주고 있었던 것이다.
계절이 흐르는 동안,
나는 작물을 키운 줄로만 알았고,
아이를 보살핀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 곁에서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배워갔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나를 키운 계절들이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내가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 길이었다.
계절로 말하는 나의 내면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다.
새순처럼 여렸던 아이의 숨결,
그 손을 잡는 나의 손도 서툴기만 했다.
매일이 처음 같았고, 그 처음은 조심스러웠다.
그 떨림 속에서 아이가 향하는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알수 없는 길, 답을 알지 못하고 내딪는 아이의 그 길에 함께 걸었다.
꼭 정답을 알아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란 걸 알아갔다.
하루는 너무 길고, 밤은 너무 짧았다.
한여름의 그늘 한점 없는 땡볕처럼 숨이 막혔고,
작물처럼 아이도, 나도, 땀 속에 묻혀 살아냈다.
때로는 지쳤고, 때로는 원망도 했다.
하지만 그 뜨거움 속에서
아이의 웃음이, 작물의 줄기가
조금씩 나를 바꿨다.
사랑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자라는 것이라는 걸
나는 조금씩 배워갔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보다,
그저 지나왔다는 사실이 고마운 계절.
내가 무엇을 심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시간들이
어느 날 아이의 말 한마디,
작물에 남은 결실 하나로 되돌아왔다.
아이의 눈빛, 작은 손짓 하나에도
‘그래도 잘 견뎌왔구나’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작은 수확을 안겼다.
멈춘다는 건 끝이 아니었다.
하얗게 얼어붙은 땅 속에도
무언가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고,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겨울은 나에게
아이를 향한 사랑이 늘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기다림'이란걸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계절을 지나, 나는 아이를 키웠고
자연은 나를 지켜줬다. 우리를 다듬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자라나 있었다.
나는 키웠지만, 더 많이 길러졌다.
나는 엄마였지만, 자연이 더 큰 품이었다.
행복하다고 느낄 여유는 없었지만,
지금 이 마음 안에는
조용히 싹튼 만족과
깊은 고마움이 있다.
계절은 지나갔지만,
그때의 시간은 내 안에 자라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자연이 키운 아이,
그리고 그 곁에서 다시 자란 나.
이제야, 그 모든 시간이
충분했음을
조용히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