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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07. 2021

넌 결혼을 도박처럼 한거야

108배 수행 셋째날 (21년 8월 7일)

오늘은 완벽하게 108배를 채웠다.

108배를 하면서 엎드릴때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세요'라고 중얼거렸다.

생각은 하루 종일 하는 것이니, 108배를 하는 순간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나의 마음에 계속 물어보는 수 밖에 없다.


남편과 나는 소개팅에서 만났다.

 강남 한복판 편의점앞에서 처음 만났을때는 촌스러운 갈색 줄무늬 코트를 입고,

 푸우의 미소를 한 그의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 간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시켜놓고, 빨리 먹지 않으려고 잠시 쉬었다가 먹다가 하는 걸 보고,

먹는 것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집근처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것저것 고민을 이야기하는 내게

그는 좋은 복학생오빠의 미소를 띄우며 '하고 싶은것은 하고 살아야한다'고 속삭이듯 조언해주었다.


연락이 왔다. 그 다음에는 율동공원에서 데이트를 했고,

그 다음에는 헤이리에 가서 나는 로모사진을, 남편은 DSLR 사진을 찍었다.

그 다음에는 남해로 여행을 갔다.


만나게 된지 한달만에 여행을 갔는데, 남편은 내가 와 달라고 하는 시간에 충실히 왔다.

그것에 새벽 5시든 6시든,


같이 간 남해 여행은 봄이 좋았다. 넓게 펼쳐져있는 유채꽃밭도 좋았고,

제주 올레길만큼은 아니지만 바닷가 해변가를 따라 걷는 남해길도 좋았다.

날씨도 같이 한 날들도 좋았다.


나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한 적도, 남편의 어린시절 이야기도 들은적도 없지만,

그냥 그 잔잔함이 나쁘지 않았다.


결혼 날짜를 잡고 남편의 친구들을 남편의 고향 대구에서 만났다.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는데, 친구중 하나가 나에게 물었다

"XX이 삼수한거 알아요?"

"네??" 하며 나는 남편을 쳐다보았고, 남편은 그냥 멋쩍은 웃음


나는 지난 주 내 글에서 그렇게 표현했다.

"삼수에 꽂힌 것이 아니라, 그걸 모르고 결혼해도 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그녀는 나에게 '넌 결혼을 도박처럼 했어'라고 이야기했다.


난 정말 도박을 한 것일까?


갑자기 올해 초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조리원동기와 내가 동갑이고 남편끼리 동갑이라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자주 어울렸다.


올해 초 그녀의 집에서 가족끼리 만나서 술을 마시다가 무슨 이야기 끝에

"내 남편은 삼수한 것을 숨기고, 친구 소개하는 자리에서 친구가 이야기해줬어"라고

말했다.

조리원동기가 토끼눈이 되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라고 말했고,

갑자기 끼어든 그녀의 남편은 "나도 삼수했는데?"라며 대응했다.

조리원 동기는 결혼하고 8년후 그 날 남편의 삼수커밍아웃을 들었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다그치는 그녀의 말에

그녀의 남편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라고 9년전 남편과 똑같이 이야기했다.


웃었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 따지려는 그녀의 공격태세에 그녀의 남편은 버럭 화를 냈다.

쏴해지는 분위기

나는 알았다. 그녀의 남편은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내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조리원동기 남편은 그 이야기를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꼈고,

그 상황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드러나지 않았을 비밀을

내 남편을 친구로서 옹호해준답시고 갑자기 뱉어내어버렸으니

본인도 당황했고, 화가 났겠지.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조리원동기 남편의 수치심을 건드린것이 되어버려

우리는 잠시후 얼른 짐을 싸가지고 그집에서 나왔다.


조리원동기도 결혼을 도박으로 한 것일까?


이건 그냥 퉁 치기로 한다.

결혼 전에 알았던, 결혼 후에 알았던 그 사실은 결혼이냐 이혼이냐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 요소는 아닌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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