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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27. 2021

누구를 위한 난임시술인가

108배 수행 22일째 (21년 8월 27일)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인 남편은 자동차 실험주행을 여러번 나가는데, 평상시도 실험주행처럼 운전을 한다. 그건 결혼 후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습관이다. 


"오빠는 너무 운전을 난폭하게 하는 것 같아. 좀 조심해"

"내가 그래도 언제 사고 내는 거 봤어?"

"퍽!"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진 하지 말아야할 곳에서 후진하더니 뒤에 있는 차를 보기 좋게 박아버렸다.

"어휴~" 

아무말 하지 않고 남편이 사고 수습을 하는 동안 나는 병원에 올라가서 순서를 기다렸다. 


오늘은 시험관 시술 첫 시도 후 12주차가 된 아이 심장뛰는 소리를 들으러 온 날이다. 


질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이 한숨을 쉬신다..

"혹시나 했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네요.. 태아의 심장이 멎었습니다. 원인은 알지 못하지만 두번째 피검사 수치 때 이상하게 나와서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잘 버틴다고 생각했는데..."


황망함..


"수술은 1주후에 잡을게요.." 


1주일 후, 시술을 하던 수술대에 누웠는데, 눈물이 주르륵 흐르며 흐느낌이 된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아주신다.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위로해주시는 듯 하다. 수술 후 왠지 경건해진 표정을 한 남편이 있다. 어떤 위로를 해야할지 모르나보다. 난 위로 받고 싶었다. 조용한 집에 돌아와서 남편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그의 팔베개를 하려고 하자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순간 나는 분노했다. 


니가 낸 사고 때문이라고, 그래서 부정이 타서 뱃속의 아이가 죽은거라고 우겨대고 싶었다. 위로를 해야할 상황에 위로조차 할 줄 모르는 너. 차라리 둘째가 우리 사이에 없는게 다행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그냥 엉엉 울어버린다. 남편은 사과를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뱃속의 아이와 헤어지고 몸을 추스린 후 회사에 난임휴직계을 냈다. 첫번째 시험관 시술 후 임신한 걸 알렸는데도 회사 감사로 야근을 했고, 더 오랜시간 있지 못하겠다고 동료들에게 일임하고 퇴근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계속 몰아치는 업무로 인해 그 해를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퍽!"

남편이 현관앞에서 와인병을 깨뜨렸다. 피색깔처럼 진한 와인이 현관앞 하아얀 벽지에 날카롭게 퍼졌다. 

속으로 생각한다.

'이번에도 실패' 


6개월동안 3번이 시험관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첫 아이를 낳고도 회사에 온 몸 바쳐 일하던 나였는데, 그 6개월이 나에게 라이프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네 살 아이를 가까이서 보면서, 눈을 맞추며 아이를 알아나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와의 관계에는 6개월이 성공의 기간이었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더 얼어붙었다. 왜 임신이든 육아든, 시험관 시술이든, 모두 다 내가 짊어져야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난임시술을 하면서 미움만 더 쌓이고, 우리는 계속 나이 들어가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누구를 위한 시험관시술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남편과 나는 왜 둘째를 가지려고 했을까? 가족의 완성은 4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첫 아이에게 형제나 남매를 안겨주고 싶어서 일까. 우리 부부는 자신 스스로의 마음조차도 알지 못하면서 그 큰일을 그냥 흐름에 따라 결정해버렸다. 절실함도 없었으면서...


오늘 108배는 그날을 떠올려본다. 뱃속의 햇님이를 떠나보내던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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