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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31. 2021

불치병을 가진 비운의 여주인공

108배 수행 25일째 (21년 8월 31일)

중학교 3학년때였다. 그 해는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에 반 친구 중 한 명은 우리를 종말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체육시간이었고, 운동장으로 나갔을 때 하늘이 안개가 눈을 뿌옇게 했다. 아니다. 실은 내 눈안에 무엇이 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수업 후에 수원 남문에 있는 안과에 혼자 진료를 보러갔다. 예전에 눈다래끼를 터뜨린적이 있는 곳이었다. 


"포도막염이에요. 이 병은 원인 불명에다가 불치병이고, 합병증으로 녹내장, 백내장이 올 수 있으며, 심하면 실명입니다"

"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곧 시험기간인데, 내 라이벌이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하겠지.

대학은 갈 수 있을까.

그나저나 실명이 되면 난 어떻게 살아가지.


나는 불치병에 걸린 비운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다음번에 병원에 갈때는 엄마와 함께 갔다.

엄마가 의사선생님께 묻지 않았던 것을 간호사 언니에게 묻는다

"무엇을 조심해야하죠?"

"네~ 술과 담배를 안하시면 됩니다"

속으로 생각한다. '전 중학교 3학년인데요'


그날 밤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우셨다. 

꼭 엄마가 잘못해서 내가 그 병에 걸린 것처럼...

공부 못해도 되니까 건강하기만 바란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공부가 더 하고 싶어졌다. 


안약을 넣고, 독한 약을 먹으니 괜찮아지는 느낌이었다. 

한쪽 눈에서 시작된 포도막염은 가끔씩 다른쪽 눈으로 옮겨갔다. 

안대를 양쪽으로 번갈아가면서, 

때로는 양쪽눈에 다 번지면 안대를 빼고,

공부해서 무사히 2학기 중간고사를 마쳤다. 


고등학교 학력고사도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평준화 지역이었는데, 수원에서 인기있는 사립 남녀공학을 운좋게 들어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포도막염이 더 심해졌다. 

수원남문의 안과 선생님은 미국으로 이민가셔야 한다고 하셨고,

그리고 이제 나의 병은 본인의 손을 떠난것같다고 말씀하셨다.


안과선생님께 소견서를 받아서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부모님은 일을 하셔야하니, 나의 언니같은 존재인 이모가 병원에 함께 가 주었다. 


검사를 다 받고,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와 동일한 병에 걸린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포도막염에 걸리셨다고 한다. 

그리고 독한약을 먹다가 위가 다 상하셔서 위를 살려야할지 눈을 살려야할지 결정해야할 상황이라고 하셨다.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 당시 밤 10시까지 의무적으로 해야만 했던 자율학습은 피곤하면 포도막염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서로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민간요법에 의지하여 '염증'에 좋다는 영지 버섯을 온갖 약초를 넣고 다려서 아침 공복에 먹어야 한다며 싫다는 나를 붙들고 계속 먹이셨다. 나는 설마 이걸 마시면 괜찮아질까 했지만 엄마가 하도 단호하셔서 1년을 영지 버섯 다린물을 마셨다.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증세가 사라졌다. 혹시 몰라 안압이 올라가서 눈이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눈 윗쪽으로 무엇이 왔다갔다 하면 안과에가서 안압을 재었지만, 괜찮았다.

영지다린물을 1년이나 마셨기에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힘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힘도 쎄지고 건강해졌다. 대학교에 가서 술도 마셨고, 콘텍트렌즈도 5년이상 착용했지만 아무 이상없었다. 라식수술을 하기 위해 눈 건강검사를 했는데 강막이 두꺼워서 수술을 한번 더 해도 될 정도라고 하셨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임신을 하고 자연분만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산달이 가까워 올 수록 계속 중 겨울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만났던 그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아이를 낳다가 포도막염에 걸리신 그 아주머니 (아마도 힘주다가 눈을 포함한 온 몸에 힘이 들어가서일것이다)가 생각났다. 겁이났고, 이번에 그 병에 다시 걸리면 되돌릴 수 없을것만 같았다.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산부인과도 자연분만으로 유명한 병원에 담당 의사선생님을 지정해서 다녔는데, 예정일을 1달 남겨두고 나는 제왕절개를 결심했다. 남편도 선생님도 황당해했지만 나는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다.


제왕절개 전 날 뱃속에서 꿈틀하는 '뿅이'를 만지며 외식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말한다.

"애를 너무 쉽게 낳는거 아니야?"


나는 분노했다. 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꺼낼수가 있는거지? 나의 두려움과 걱정을 조금이라도 같이 고민해줄 수는 있는거야? 분노가 오열이 되어 터져나왔다.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내 안의 두려움을 남편이라고 해서 다 알아야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내린 결정을 하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니고, 다만 공감능력이 없었기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이 뱉어낸 말에 나는 왜 그렇게 미친듯이 반응한거지?


나이가 들면서 좋은 건, 혹은 내가 마음의 수양을 하면서 좋은 건, 이런 것들을 우주위에서 지구 바라보기를 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오늘 108배는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를 새기며 마무리했다.

108배를 하기 전에 아들은 옆에서 계속해서 하트를 주워서 손가락 하트를 나에게 날려준다.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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