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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Sep 03. 2021

남편의 거짓말

108배 수행 28일째 (21년 9월 3일)

거짓말 #1 신혼무렵 영화 엑스맨 2가 나왔다. 엑스맨 1을 재미있게 봤기에 꼭 보고 싶은 영화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어느날 남편이 회사에서 일이 많아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평소에는 연락없이 늦었는데 왠일이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날 저녁 계속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참 후에 걸려온 전화속의 남편은 한없이 순순했고, 주변은 울렸다.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주말에 남편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남편이 안보는 사이에 남편의 카톡을 봤다. 나와 이름이 같은 직장 동료와 나눈 카톡대화에는 '차장님, CGV VIP 석 한자리 표가 있어요. 엑스맨 2에요'였다. 남편은 혼자 엑스맨2를 그날 보고 온 것이다. 모르는 척, 엑스맨2가 나왔으니 보러가자고 했다.남편은 그 영화 재미없다던데. 이랬지만 난 꼭 보고싶다고 해서 함께 봤다. 끝까지 남편은 두번 본 것을 시치미 뗐다. 아마 지금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를 것이다.


거짓말 #2 결혼한 후 그 다음해에 헝가리 프로젝트로 4월부터 10월까지 헝가리에 있었다. 8월 내 생일에 남편이 10만원을 보내며, 맛있는걸 사먹으라고 했다. 나는 감동했다. 출장 다녀와서 1년이 지났다. 휴대폰이 고장나서 남편의 옛날 휴대폰을 쓰려고 꺼냈다. 네이버 앱을 작동하니 남편이 로그아웃을 해 놓지 않아서 남편의 메일이 다 보인다. 나 만나기 전에 어떤 여자와 나누었던 연애편지 같지 않은 연애편지가 있다. 머.. 이쯤이야.. 지우지 못한.. 옛 연인들의 편지가 좀 있지.. 넘어갔다. 그런데 내 눈길을 끄는 것은 '마카오행 비행기표'였다. 내가 헝가리 출장에 가 있는 동안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 물어봤다. 


"마카오 언제 다녀왔어?"

"무슨소리야?"

"마카오 누구랑 다녀왔어?"

"내가 무슨 마카오를 가"

"다 알아. 말 해봐"

그제서야, 직장동료와 여름휴가때 마카오에 다녀왔다고 한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부부사이는 신뢰가 가아장 중요한 것이라고 한차례 잔소리같은 이야기를 하고나서 찜찜하지만 덮기로 한다. 


나는 그 이후부터 남편의 휴대폰이 절대 궁금하지 않고, 우리는 비번을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조리원동기가 남편의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고, 아무렇지도 않고 사용하는 게 신기하기만하다.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거짓말 #3 올해초의 일이다. 남편이 2년전에 부동산 경매를 1년간 배우고, 실습 삼아 산 송도 아파트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살고 있었던 아파트 집 주인이 본인들이 들어오겠다고 했고, 광교의 전세값은 이제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송도 아파트 세입자에게 우리가 송도 아파트로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 시기가 4월이라 애매했다. 아이가 유치원을 들어가야하는 시기이고, 3월이 입학이라 최소 2월에는 이사를 가야했다. 남편에게 세입자에게 연락해서 2월에 나갈 수 있느냐고 물어봐달라고 했다. 남편이 알았다고 했고, 문자를 보냈냐고 했는데 그렇다고 했지만 왠지 기분이 쏴했다. 보여달라고 했더니 자신있게 휴대폰을 꺼낸다. 내가 끝까지 보여달라고 할지 몰랐나보다. 나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남편은 세입자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아이 유치원을 송도에도 지원하고 판교에도 지원해서, 여기저기 대기 걸어놨고 이제는 결정해야할 시기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남편은 무슨 생각인지, 아니면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 혼자만 안달하는 사실에 분노했다. 나는 남편이 송도 아파트에 들어가기 싫은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송도로 이사가게 되면 남편직장이 가깝고, 내 직장이 왕복 3-4시간이 되기 때문에, 지금의 생활과 반대가 되어야한다고 내가 계속 강조했기 때문이다. 


"내가 새벽 6시에 나가고 밤 11시쯤 집에 올 수 있을꺼야. 지금 오빠처럼, 태윤이 밥은 오빠가 챙겨줘야하고, 유치원 등하원도 오빠가, 선생님과 상담도 오빠가 해야하고, 집안 살림도 오빠가, 식료품도 오빠가, 요리도 오빠가 다 해야해"


남편은 황당해 했다. 


남편의 거짓말로, 나는 그냥 내가 직장이 가까운 곳으로 집을 구하겠다고 남편에게 통보했고, 남편은 처음에는 자기 혼자 송도 아파트로 들어간다고 우겼지만, 결국에는 내가 하자는대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 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거짓말을 많이 한다. 가끔 티가 많이 날때도 있지만 나는 그냥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모르는 척한다.


결혼하고 얼마 안되서인가..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영국 신사는 한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손에는 거짓말을 들고 다닌다"고.

어느 나라나 '남자의 거짓말'은 유명한듯했다. 


그러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인가? 그렇지도 않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인것같은 그런 상황인가... 싶다. 


이로써 남편의 거짓말 바라보기를 마무리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남편을 거짓말을 못하게 하는것이아니라, 남편의 거짓말을 어떻게 슬기롭게 싸우지 않고 인정하게 하느냐이다. 하지만 거짓말도 레벨이 있겠지? ^^


*어제는 108배 수행 후 아이를 바로 재웠다. 아이를 재우면서 함께 잠들었다가 깨어나서 나왔는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날은 그냥 나의 마음을 다그치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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