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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Sep 05. 2021

집안일의 분배

108배 수행 29일째 (21년 9월 5일)

맞벌이 부부의 집안일 분배는 공평하기가 힘들다. 50대 50으로 공평하게 나눈다라는 의미보다는 서로가 불만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공정하게 분배한다는 것은 힘든일이다. 최소한 아이를 낳기전까지는 공평이든 공정이든 상관이 없었다. 서로가 바쁜 주중에는 그냥 지내다가, 주말에 함께 청소하고 외식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나는 학창시절 공부해야한다는 이유로 가사일은 거의 하지 않았을 뿐더러 말레이시아에 가기 전까지도 방청소도 하지 않았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싱글로 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많이 모자랐다.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나는 가사일을 많이해보지 않았으면서도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잘한다고 착각했다. 라면은 고춧가루를 뿌려서 먹고, 멸치 육수를 내야하는 국물은 그걸 몰라 간장과 다시다로 맛을 냈다. 왠만하면 빨래가 자주 필요없는 옷이나 다림질이 필요없는 옷을 구입했다.  빨래는 그냥 세탁기에 넣고 세제 넣고 돌리면 된다. (당연하지 않은가?) 청소기는 가끔 너무 지저분하다 싶을때 한번 돌려주는 것이고, 먼지는 눈에 거슬릴때만 닦아주면 되었다. 나는 스트레스 받지 않았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스트레스 받았을 뿐...


현모양처랑 결혼하는게 꿈이라고 말하는 남편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10년이 훨씬 넘은 자취생활로 몇가지 가사일을 남들보다 뛰어나게 할 수 있었다. 남편은 세탁기를 돌리기전에 빨래를 물에 불려서 한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청소기는 먼지가 보이면 자주 돌리는 편이고, 음식물 쓰레기는 왠만하면 변기에 버린다. (예를 들면 먹다만 라면같은 것..) 


한가지 지금도 이불킥하는 사건이 있었다. 결혼 초 닭볶음탕을 해 먹고 음식이 남았다. 퇴근을 했는데 전날 먹은 닭볶음탕이 상한것같아서, 남편처럼 변기에 버려야지~~ 하면서 남은 닭볶음탕을 변기에 버렸다. 결과는???? 막혔다.... 너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그런데 나는 그정도로 집안일에 거의 문외한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나 방청소 안하는것만 잔소리 했는데, 남편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그릇은 세제를 깨끗이 지울정도로 여러번 헹궈야 한다..그릇에 밥풀이 남아있다.. 빨래는 그냥 돌리면 안된다..등등.. 나는 솔직히 집안일을 엄마가 아닌 남편에게 배웠다. 아니, 남편의 지적질을 듣기 싫어서 눈칫껏 적당하게 했다. 어쩔때는 니가 하지!!! 화를 내기도 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육아에 관련된건 모두 내가 한다.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은 내가 챙긴다. 이런것에 소질도 없고, 제일 싫은게 집안일이에요.. 라고 외치고 싶은 내가 억지로라도 해야하는 것이다. 아이와 관련된 것은 내가 다 한다는 이야기는 집안일의 80% 이상을 내가 해야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소질없는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같다. 


올해 4월 남편과 크게 다툰 이유는 집안일에 대한 페어플레이를 내가 언급하면서부터였다. 주말부부가 되었고, 80%를 내가 다 했는데 이제 100%를 다 하려니 너무 힘이 들어서 함께 공정하게 하자고 했다. 최소한 주말에 집에 오면 무언가를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남편이 주말에 집에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청소기도 돌리고, 자기 빨래를 하기도 하고, 주말 설거지도 한 번정도는 하고... 그런데 나는 남편이 주말 아침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는데 방에서 누워서 휴대폰을 보면서도 게으름피는것같은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그 무렵 유치원에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너 이거 안하면 100대 맞는다,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면 혼난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선생님이 상담전화를 하셨는데 너무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같이 키우는데 왜 나혼자만 그런 고민들을 해야하는지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시작되었다. 그 싸움은.. 


요즘 남편은 주말에 오면, 할일을 건너뛰지 않는다. 주말에 오면 일단 오전에 청소기를 다 돌리고, 빨래를 불리고, 세탁기를 돌려놓고 아이이 실내화를 꼼꼼하게 씻고, 비에 젖은 운동화를 빡씨게 닦고 제습기로 말린다. 전등이 나가면 전등을 주문해서 환하게 갈고, 쓰레기에 날파리가 알을 깐것을 보고, 쓰레기도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도 일주일에 한번은 버린다. 아이와 씨름도 하고, 알까기도 하고, 오늘은 장수풍뎅기가 낳은 알들을 분리하러 아이와 둘이서 용인 곤충 테마파크에 다녀왔다. 


맞다.. 남편이 이런일들을 예전에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남편이 이렇게 노력하면 나도 함께 노력한다. 그런데 가끔씩 남편이 이상해질때가 있다. 이건 그냥 느낌적인 느낌인데, 동굴에 들어가는 시기같다. 이렇게 하다가도 갑자기 모두 손을 놓고, 중2병에 걸린 아이처럼 우리를 외면해버릴때가 있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시기를 슬기롭게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우리 관계도 크게 개선이 될 것같은 느낌이다..


오늘 108배는 앞으로 난관이 또 생긴다면 어떻게 풀어야하는지 고민해보았다. 

정답은? 아직 없다.. 

그가 동굴에  들어가는 그 시기에 내가 잘 버티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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