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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Sep 16. 2021

우리집 두 남자

어제 잔여백신을 신청해서 맞았다. 남편에게는 그제 연락해서, 내가 잔여백신을 맞을 수 있으니 집에 와서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 혹은 아이 유치원 보내는 일을 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주말부부) 


오전 10시 회의가 끝난 후 휴가를 냈다. 그리고 잔여백신을 맞고 도서관에가서 추석동안 읽을 책을 4권 빌리고, 3시간 동안 깊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백신 때문인지 지난 주부터 이어진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 누적인지 몰라도 곤하고 기분좋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남편은 어젯밤 늦게 집에 왔고, 근육통으로 밤새 잠을 잔건지 안잔건지 모르겠는 나는 오전에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어 계속 거실에 누워있었다. 잠에서 깬 아이가 내가 누워있는 거실에 나와서 체온계를 귀에다 꼽고 체온을 재주고 (어떻게 재는지 모른다. 넣자마자 뺌), 물을 떠서 내 옆에 놓아주고, 냉동실에서 드라이아이스를 꺼내 내 이마에 얹어준다. 비몽사몽간이라 꿈인지 생시인지.. 그냥 지나간 장면이었는데 이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났다. 몽롱하지만 너무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눈을 감고 역시나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안방에서는 아이와 남편이 체스돌로 알까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의 우리집 아침 풍경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시간이 다가오자 남편은 설거지를 꼼꼼히 하고, 또 꼼꼼히 했다. 아이 유치원 물통을 칫솔로, 치실로, 10분간 꼼꼼히 씻어준다. 그냥 고맙다. 


아이는 아침으로 고구마와 산딸기를 먹었는데 이 또한 한참이다. 유치원 셔틀 타러 가야할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두 남자는 느긋하다. 나혼자 안달이 나서 10분남았어, 5분남았어. 지금이야! 를 외치고 있다. 

"아, 정말! 이 두 남자!" 내가 그러면서 깔깔 거리고 웃었더니, 아이와 남편이 따라 웃는다.


쫓아내듯이 두 남자를 내보내고나니 이제야 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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