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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Sep 23. 2021

내 남편은 아스퍼거가 아니다

긴 명절, 5일을 함께 있던 날들을 뒤로하고 남편은 회사 근처 오피스텔로 어젯밤 떠났다. 명절내내 신나게 놀았던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함께 잠들었다 시린눈을 비비고 짐을 챙겨서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이 돌아서서 나를 꼬옥 안아준다. 


"너 사랑받고 싶은거 아니야?"라고 물어봤던 소희언니의 외침에, '난 사랑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냥 살아지고 싶어요, 그리고 그건 불가능한일이에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해주다니요...'라고 속으로 되뇌였었다. 


그치..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지...


그런데 나의 기운이 바뀌고, 그의 기운이 바뀌면서 나는 보호받고, 사랑받는다는 따뜻한 느낌을 경험했다. 


어제 만났던 고등학교때 친한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 친구에게 그간의 일을 한참 이야기했다. (상담선생님을 소개해준 친구이다)


"참!은지야! 내가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남편에 대한 욕을 A4용지 한장 반에 다 채웠거든? 그걸 듣던 작가님이 그러셨어. '미안한말이지만, 전형적인 아스퍼 유형의 남자야' 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모든것이 이해가 되었어. 이 사람이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것이 아니었구나.. 그냥 공감능력이 없었던 사람일 뿐이었구나..이렇게 말이야!"


평소에는 잘 들어주던 친구의 표정이 갑자기 굳더니, 단호하게 말한다.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 정도는 공감해줘야하는게 정상아니야? 정말 이상하네, 왜 그럴까.. 라고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그 사람을 정의 내리는 한 단어로 표현되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긴해. 하지만 아스퍼거라는 말은 병리를 뜻하는 것이고, 그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절대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


"아.. 나는.. 그게 아니라..."


친구가 계속 말을 끊는다. 


"어쨌든,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은 없어졌고, 자폐스펙트럼안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그렇게 정의내리면 안돼"


"아.. 은지야?? 내 말좀 들어줄래?"


친구가 이제서야 말을 듣는다. 


"아니~ 아스퍼거라는게 아니라, 그런 유형의,,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걸 내가 깨달은 거라고~"


어쨌든, 날를 띵 때리게 만들었던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단어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깨달음의 단어였을 뿐이다. 


결국엔 내 안의 문제였음을 깨닫는데까지 결혼 후 10년이나 걸렸다. 물론 남편과 화해를 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앞으로도 남편을 미워하게 될 날도, 화가 나게 될 날도 있을테지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나를 들여다봐야하는지 알게 된 건 정말 큰 수확이다. 


결론은, 내 남편은 아스퍼거가 아닙니다 ^^

(그래도 주말부부는 좋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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