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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Feb 13. 2022

유연해져 제발

그의 사고는 어디에서...

오늘 집에 얌전히 있으려고 하다가, 지난주에도 이번주에도 계속 집에 있는 아이가 안되보여서 결정했다. 작년 12월에 서울랜드 가족체험단 당첨이 되었는데 오늘이 마지막 사용날이다. 그래, 서울랜드 가자. 이제는 놀이동산 가는일이 노동이 되어버린 나같은 어른은 큰 맘을 먹어야만 한다. 눈썰매도 타고, 키가 120센티가 넘었으니 놀이기구도 좀 타고, 빙어낚시도 해보자했더니 오늘은 자기의 날이라며 급조하고 좋아라하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서울랜드에 들어가자마자 빙빙 도는 놀이기구를 두 번씩 타고 (겨울이라 2년전 봄에 갔을 때보다는 줄이 짧았다) 점심을 먹고, 눈썰매를 타러 갔다. 눈썰매도 거의 줄이 없어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아이와 남편이 타고 내려왔다. 그 모습을 멀리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남편이 아이 앞에서 뱅글뱅글, 갈팡질팡하면서 내려오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깔깔대고 웃었다. 

"태윤이가 더 잘타네! ㅋㅋㅋ 오빠 왜 이렇게 비틀 거리고 못타" 그랬더니

"태윤이 잘 내려오는지 봐주느라 그랬어"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아닌데... 일단 알았다고 하고 나중에 커피숍에 앉아서 동영상을 봤다.

남편은 아이를 쳐다본 적도 없고 그냥 쭉 내려가더니 아이 앞에서 빙글빙글 비틀비틀 거리다가 아이앞에서 넘어져서 아이가 부딪힐뻔했다. 빼도박도 못하게 동영상에 찍혀있으니, 남편이 아이를 보느라 빙글빙글 갈팡질팡한건 아닌 것으로.


남편은 좀 그렇다. 이렇게 빼박인 증거가 없으면, 본인이 무조건 맞다고 한다. 본인의 기억을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강하다. 이걸 적응하느라 10년이 걸렸는데, 아직도 조금은 적응이 되지 않는 듯 하다. 


마지막으로 키즈까페 같은 곳에서 30분 줄을 서며 기다리는데, 저녁시간이라 출출하다. 

"줄 기다리는 동안, 소세지랑 츄러스 좀 사와주라"고 말했더니

"츄러스밖에 못봤는데? 소세지 안팔아!"라며 너무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다

"좀 다녀봐. 소세지 있을꺼야"

"아니야, 츄러스밖에 없어"

순간

"아 정말! 알았어, 내가 다녀올게!"라고 눈을 흘기고 내가 다녀오기로했다.

당연히 소세지도 있고, 닭꼬치도 있고, 츄러스도 있고 모든 먹거리들이 넘쳐나는 놀이공원이다. 

두 손에 잔뜩 들고 갔더니, 남편이 무안한듯 말한다

"대단한데? 난 츄러스밖에 못봤는데"

순간, 한대 때릴까....했지만 그냥 눈을 흘기고 말았다.

소세지에, 츄러스에, 닭꼬치를 함께 먹은 남편에게 "오빠, 무조건 없다고 말하면서, 오빠 기억을 너무 믿지말고, 그냥 없는것같더라도 한 번 다녀와보면되잖아. 오빠의 기억이 다가 아니라고... 좀 유연해지자"


남편이 무안한지 갑자기 친한 척 나에게 헤드락을 건다.

아.. 그나저나 이거.. 봉석이의 전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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