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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01. 2022

그런식으로 울지 말라니요, 아버님

K-장남들

방학을 맞은 아이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아쿠아플래닛이라고 했다. 

원래는 지난주에 아이와 둘이 가려고 했었는데  다른 일정으로 미뤄져서 아이를 몇 번이나 설득하고 이번주에 가자고 했다. 

제주도 이웃 중에 남편과 동갑이 있어 함께 아쿠아플래닛에 가자고 했더니, 그 집은 이미 5번 이상을 가봤다고 한다. 입장료가 만만치 않아 이번에도 그냥 가자고 하기가 미안해서 오늘 엉또폭포를 가자고 두 남편이 약속하는 것을 보았다. 아쿠아리움은 다음에 가면되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부모만의 생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방학숙제 및 엄마가 내준 숙제를 스스로 꺼내서 열심히 하고 있는 기특한 아이가 물었다.

"오늘 아쿠아리움가지?"

"아니? 오늘 엉또폭포 가는데?" 라고 남편이 대답했다.

"오늘 아쿠아리움가기로 했잖아" 아이가 나를 보며 억울하다는듯이 말한다.

"아.. 그랬지..그런데 겸이 형아가 아쿠라리움을 몇번이나 가봤데. 그래서 같이 못간데"

"상관없어! 난 아쿠아리움 갈꺼야!"

"아쿠아리움은 나중에 가!" 남편이 윽박지른다.

아이가 오랫만에 엉엉 울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다.

속상한 마음도 이해가 되고,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으며 눈물을 닦아주었는데, 남편이 다시 아이에게 윽박지른다

"울지마! 머 시도때도 없이 울어!"

"당연히 억울하지.. 태윤이가 원래 저번주부터 가자고 했는데 설득해서 이번주로 미룬건데.."

태윤이의 마음을 대변해서 이야기해주었더니,

"그래도 저렇게 우는 건 아니지"

"아니, 우는게 왜 나뻐? 자기의 감정을 저렇게 표현하는 건데? 저 상황에서 안 우는게 이상한거 아니야?"

남편과 내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아이가 울음을 살짝 그친다. 

"오늘 엉또폭포를 갔다가 반대방향이라도 아쿠아리움에 다녀와.."라고 말하자, 남편이 알겠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빈센트랑 점심을 먹기로 했잖아?"

"아.. 그렇지.." 문득 어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두 남편들이 정한 약속이 생각난다. 


"태윤아, 아빠가 병원가서 오늘 팔 치료를 받고, 빈센트 삼촌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어. 점심먹고 엉또폭포에 다녀오면 아쿠아리움에 가도 1-2시간밖에 못봐. 그런데 거긴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1-2시간으로는 부족해. 그냥 내일 아침에 일찍가서 하루종일 있는게 어때?" 

아이가 잠시 생각하는 틈을 타서 한 번 더 설명해주었다. 

"어떻게 할래?" 라고 물어봤더니

"내일 하루종일.... " 이라고 대답한다. 

아.. 설득되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아이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남편에게 속삭였다.

"봐.. 일단 달래고 설득을 해야지.."

남편이 입을 꼭 다문다.

"이그.. 또 저렇게 입을 꼭 다물고.. 동의하지 않는구나"라고 말했더니

"그래도 저렇게 우는 건 아니지!"라고 말한다.

휴~!!!

무한의 돌림노래다. 

남편은 운다고 다 들어주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아이는 정말 오랫만에 울었는데도 말이다! 

남편도 아이 시절이 있었을텐데 정말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는 막혀있는 부모라는 벽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울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논리적으로 말하지도 못하고, 울지 않으면 부모들은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울었더니 울면 다되는 줄 안다고, 버릇없어진다고 윽박지른다. 


남편과 아이를 뒤로하고 글을 쓰러 제주소통협력센터에 가는 길에 생각해본다.


K-장남들. 어렸을때부터 우는 것은 나쁘고, 울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건 나쁘다고 배워왔고 양육되었던 K-장남들. 나는 결혼 10년동안 남편이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 남편은 울면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처럼 배워왔을 것이다. 

하지만 우는 일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나쁜 일일까?

자주 우는 사람은 매력이 없을지 몰라도, 억울한 감정, 감사함으로 넘치는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눈물과 울음을 가끔 흘리는 사람은 벅차도록 매력적이다. 


하아... 남편 육아가 더 어렵다.


사족.

어제 윗층에 놀러가겠다는 아이에게 비가 오는데 우산을 쓰지 말고 가거나, 네가 우산을 직접 갖고 가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남편이, 윗층 아이가 우리집에 우산없이 내려와서 김밥을 갖다주자 런닝셔츠 바람으로 얼른 우산을 씌워주는 것을 보았다. 남편이 옆집 아이 대하듯이 우리 아이도 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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