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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Dec 14. 2023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소설로 알게 되는 기억의 왜곡

30년전의 이야기를 그렇게 생생하게 지어낼수있다는 사실이 첫번째로 경이로웠고, 그걸 진짜 있었던 일로 확신에차서 말하는게 두번째로 놀라웠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었기에 우리각자의 기억의 왜곡이 얼마나 심한 줄알았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너는 모른다.

(기억이 완전한 허구는 아닐지라도, 원본이 아닌 각색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과거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기억과 과거 모두 마음속에서 창조한 환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나를 돌보는 묵상독서 中)


하지만 이건 나의 잘못도 너의 잘못도 아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이해하기위해 노력하는게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를 인정하는것이 맞다는 생각이 굳건해졌다. 그래서 네가 내 이야기를 너의 입장에 서서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해도 나는 아무상관이 없다. 기분이 나쁘지도 슬쁘지도 않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가만히 상황을 들여다볼 뿐이다. 과거에 나의 방에 들어온 사람이었었지만, 나를 둘러싼 중심에 있지 않기에 나의 감정이 거기까지 뻗치지 않는다. 전화를 끊고, 서로 적당한 감정의 거리를 둔 사람들, 상처되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지금의 존재들에 관심을 주는 이야기를 하는사람들과 식사를 하다보니 안심했다. 이 사람들이 옆에 있어서 다시 뛰쳐나온 오래된 과거의 아픈기억들이 괜찮구나.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는 어제였다.




이 책은 1, 2부로 나누어져있는데, 1부에서는 화자인 주인공이 자신의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들이야기와 대학생이 되어서 만났던 여자친구 이야기를 극적인 사건없이 자신의 기억을 위주로 이야기해 준다. 


누구의 젊은 시절이건 우정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랑이 있고 상처가 있는 법.  주인공 화자도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그 젊은 시절의 기억을 본인이 기억하는대로 떠올린다. 


하지만 2부에서는 화자가 기억하는 40년전의 사건과 편지들이 실제와는 확연히 다름을 알고 화자 또한 충격을 받게 되는데...


내가 커다란 사건이나 굴곡없이 잘 지낸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내가 과거에 누군가에 준 상처가 그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상하고 극복해야할 것인가.


소설을 모두 다 읽고,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가 남에게 준 과거의 상처가 다른 사람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과연 그런가? 라고 반문을 해 본다. 


물론 상처가 되었거나, 상처의 상황이 만들어졌을 수는 있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면 그 상황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있지 않았을까?


젊은 시절에는 본인의 의지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기에 주인공의 친구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일까.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니지만 가독성 좋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계속해서 독자를 생각하게 하는 마력을 가진 작가임이 틀림없다.


p264 두 통의 편지가 있다. 하나는 토니가 스스로 썼다고 생각하는 가상의 편지이며, 다른 하나는 기억하지 못하나 토니가 '실제로' 쓴 편지이다. 둘 간의 괴리는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를 이룰 만큼 충격적이다. 정작 토니는 기억하지 못한다. 실제 편지에 담긴 실랄한 악담은 그에겐 다만 한때의 감정적 분출이자 치기 어린 수사학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는 금세 잊었다. 혹은 그의 입장에서 윤색한 버전으로 기억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그 편지가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미래를 결정짓는 무시무시한 예언이 된다. 


왜곡이 본질인 기억과 우연과 무상성이 본질인 시간의 담합이 만들어낸 파국이 아닐 수 없다. 경제현상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공포문학 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적인 울림 속에 담긴 잔혹한 이야기" 

선데이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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