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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Jul 10. 2021

전단지 알바

나는 겪어도 괜찮지만 누군가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

일요일 저녁에

친구들이랑 카톡을 하면

다들 앓는 소리다.


“아, 출근하기 싫다.”

“출근이라는 게 참 그래.

 해야 하면 하기 싫고 근데 또 안하면 불안하고.”

“아, 모든 문제의 근원은 불안이야.”

“하나 더 있어. 돈이야.”

“맞아. 불안과 돈이 문제야.”     


요즘 내 마음이 이렇게 어려운 것은 돈을 벌지 못하는 어른의 무능력을 내가 너무 쉽게 인정하는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인 걸까. 그래서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은데 이게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가치니까, 아니 아주 중요한 삶의 ‘요소’니까 이왕이면 조금 더 좋은 것, 인정받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열심히 그리고 잘 해낼 수 있는 것을 찾느라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용돈 말고 처음 돈을 벌어본 일은 중학생 때의 전단지 아르바이트다. 다니던 교회의 집사님이 영어학원을 개원했는데 늘 방과 후에는 교회에서 시간을 때우며 농땡이를 부리는 나와 친구 튜브에게 전단지 알바를 제안했다. 우리는 어린 마음에도 전단지 알바가 부끄러움을 무릅쓸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집사님이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게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동네 빌라나 아파트 현관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이 경우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보다 육체적으로 더 힘들고 고될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동네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다가 학교 친구를 만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열다섯 살이었다.     


전단지 알바를 하면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전단지를 붙이다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어색함. 경비 아저씨가 너네 뭐냐고, 어디 몇 동 몇 호에 사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차마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고 줄행랑치던 뒷모습. ‘전단지 사절’, ‘신문 사절’이라는 문구가 마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이 일이 부정적인 것이라고 계속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내 인기척을 어떻게 알았는지 현관 안의 강아지가 컹컹 짖는 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지면, 마치 도둑질처럼 나쁜 짓을 하다 걸린 듯이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도 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쁜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일.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일. 나에게 전단지 알바는 그랬다.     


하지만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내가 만져보기 힘들었던 몇 만 원의 큰돈. 그리고 전단지를 돌릴 때마다 땀이 나고 숨이 가빠 오는 게, ‘그래, 이건 내가 정직하게 노동하고 있는 거야’, ‘이건 성실한 노동이야’라고 생각했던 작은 확신. 그리고 그런 성실한 노동에 대한 ‘어른의 칭찬’이 있었다. 교회에서 존경받는 집사님 부부가 나와  튜브를 칭찬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그 어떤 아르바이트생들보다 성실하다고 했다. 그동안의 아르바이트생들은 전단지를 제대로 안 돌리고 시간만 때우다가 길거리에 버리기도 한 것 같은데, 우리들은 그렇지 않다고. 학원으로 오는 상담전화의 수가 현저하게 늘었다고 했다. 요령이 없었던 우리. 할 줄 아는 건 성실함뿐이었던 중학교 2학년의 나와 친구는 전단지 한 장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가끔씩 한 집에 2장을 붙이기도 했지만, 500장의 전단지를 돌리기 위해서 적어도 400곳 이상의 현관을 마주했으니까.     


그렇게 한 달 정도 전단지를 돌렸던 것 같다. 이제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의 웬만한 주택가는 다 돌아다닌 듯 한 느낌이 들 즈음의 어느 날, 전단지를 다 돌리고 학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만났다. 학원 입구에서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친구가 물었다.     

“너도 이 학원 다녀?”


“아니, 너는 거기 다녀?”

“응, 나는 오늘부터 다니기로 했어. 너는?”

“아, 나는 그냥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왔어.”    

 

괜히 이곳에서 전단지 알바를 하고 있다는 말은 못 했다. 지금은 ‘타인에게 모든 걸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라는 생각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노출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때는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든 것이 곧 약점이 될 것 같다’라는 불안을 품고 사는 열등감 많은 중학생이었다. 나는 며칠 지나지 않아 친구를 꼬드겨서 알바를 관뒀다. 왜 관두냐는 집사님의 질문에 우물쭈물 거리다가, “이제 중간고사도 있고, 시험공부 좀 해보려고요.” 라고 말했다. 사실 공부와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핑계를 댔다.     




그해 가을에는

엄마와 크게 싸웠다.


엄마가 잘 다니던 회사를 또 몇 달 만에 관뒀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엄마는 1년 이상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1년 이상 같은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삶은 존경 받아 마땅한 것 같다. 매번 엄마는 금세 또 새로운 곳으로 출근하고는 했다. 나는 그 비법을 여전히 모르겠는데, 아직까지 엄마 주변에는 엄마를 챙겨주는 사람이 많다. 나 빼고.) 일 년이 사계절이면 계절마다 회사를 옮기기 일쑤였고 어떤 해에 엄마에게는 다섯 번째 계절이 존재하기도 했고, 여섯 계절, 일곱 계절로 늘어나기도 했다. 아무튼 나와 가장 가까운 어른이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그 시절 나에게는 가장 큰 스트레스였나 보다. 엄마는 스스로를 위태롭지 않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한동안 출근을 하지 않던 엄마가 다시 바깥일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엄마가 또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는지 싶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피곤하다는 말을 그전보다 더 자주 하고, 밤에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금세 잠이 들었는데, 나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짐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가방에서 내가 돌리던 영어학원의 전단지를 봤다. 순간 의아했지만, 처음에는 엄마도 그 집사님이랑 친하니까 학원에 놀러 갔다가 그냥 한 장 받아온 걸 거라고 생각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엄마 몰래 가방을 열어봤는데 전단지가 한 장이 아니라 뭉텅이로 들어있었다. 엄마의 낡은 핸드백에 가득 들어있는 수십, 수백 장의 전단지.      


- 믿고 맡길 수 있는 CMS 영어학원.

- 파닉스부터 회화까지.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꽥 질렀다. 그리고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 그 학원에서 전단지 돌리는 일을 하고 있었냐고. 그걸 집사님이 엄마에게 시키더냐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냐고. 그 와중에 또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파닉스가 뭔지는 알까. 이 전단지에 쓰인 영어 문장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돌렸을까. 나는 엄마에게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 CMS가 뭐의 약자인지 알아? 여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는 알고 전단지를 돌렸어? 엄마가 돌린 전단지가 헐벗은 살색 사진으로 도배된 유흥업소의 명함도 아니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바다이야기 같은 도박장의 홍보지도 아니었지만, 나는 엄마가 절대 만져서는 안 되는 그런 물건을 만진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되는 대로 쏟아내고 가쁜 숨을 헉헉 내쉬고 나니,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집사님 부부에게 너무 화가 났다. 집사님은 어떤 마음으로 엄마에게 이 일을 시킨 걸까. 엄마가 먼저 하겠다고 한 걸까. 그래도 왠지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당장 영어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러지 말라고 나를 말리는 엄마를 뒤로하고서. 학원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인사하는 집사님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학원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놀라서 나를 쳐다봤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집사님 부부에게 내 분노와 원망을 다다다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을 뿐이다. 그러고는 “도대체 엄마한테 왜 그 일을 시켰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우리 엄마에게 전단지 알바를 시킨 거예요?     


사실은 나조차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없었다. 엄마가 영어학원의 전단지를 돌린 것이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 일이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일인지 나도 잘 몰랐으니까. 왜 이렇게 집사님이 싫고 밉고 짜증이 나는지, 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나 몰래 벌여 놓은 것만 같은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내가 느꼈던 마음을, 내가 전단지를 돌리면서 느꼈던 마음을 엄마도 느낀다는 게 싫었던 거겠지. 나쁜 짓이 아니지만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일,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일. 아니면 누군가의 거절을 수십, 수백 번 감당해야 하는 일.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38살의 엄마와, 엄마에게 그 일을 맡긴 어른들이 내 이름을 알고, 내가 그들의 칭찬에 잠시라도 뿌듯해했다는 게 모두 속상한 일이 되었던 걸 테다.   




나는 겪어도 아무렇지 않지만

누군가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는 일들


나는 겪어도 아무렇지 않지만 누군가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는 일들이 여전히 많다. 형편없는 어른들 앞에서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나에게 오는 비상식적인 언행과 무안을 웃음으로 받아들였던 면접이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인터넷 계정으로부터 들었던 날카로운 비난의 말들.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좁은 보트 위에 엉켜 타게 되었을 때 잡고 있던 손을 바로 놓아버린 경험 같은 것들.     


나는 겨우, 엄마보다 전단지 알바를 먼저 해보았을 뿐이지만, 그래서 엄마가 나보다 조금 더 늦게 겪는 그 경험이 나에겐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못 미덥고 속상하고 안타까웠을 뿐이지만, 나보다 23년을 먼저 산 엄마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그런 마음으로 겪어 왔을까. 내가 못 미덥고 불안하고 속상해서 또 마음속으로는 수백 번 화를 삼켜냈을까.     


나는 지금까지 내가 부모가 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 부모가 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여전히 그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은, 부모가 되는 것이 여전히 자신이 없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정말로 아끼는 사람이 나에게 계속 생겨나는 것도 자꾸 두려워지는 이유는, 아마도. 아마도 그날의 풍경이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남아 있어서일지도. 영어학원에서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던 열다섯 살의 내 모습. 그런 나를 데리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던 엄마의 얼굴. 그날, 거리에 진하게 남은 우리 둘의 뒷모습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나에게 38살은 이제 고작 몇 년 안 남았는데, 그 사이에 나는 그만큼의 어른이 될 자신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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