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비타민을 한 줌 주워 먹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적된 피로는 해소될 기미가 없다. 예전엔 오랜 기간 불면증에 시달렸던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일이 많으니 주변 사람들이 계속 커피를 사다가 책상에 가져다주었다. 그땐 모든 사람들이 '잘 잤냐' 묻는 게 일상이었는데, 지금 와서 떠올려 보니 괜히 걱정만 끼치고 다녔던 것 같다(죄송). 카페인 중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부신의 기능이 떨어져서 이제는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코르티솔 분비량이 늘어 언제나 심박이 높다. 지하철에 가만히 서 있어도 심박이 140을 웃돌 때도 있다. 몸 상태가 영 엉망이다.
요새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스스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명치가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문득 생각해 보니 이거 심장에 문제가 있을 때도 비슷한 증상이 있지 않았던가? 이 글을 읽으면 당장 운동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나도 나만의 속도로 운동과 만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단다(아마도?).
2. 동호회 시샵님께 <거인의 노트>를 빌려다 읽고 있다. 내가 싫어하는 자기 계발서의 면모를 제법 많이 갖추고 있다. 특히 A라는 아이디어를 갖가지 방법으로 반복해서 설명하는 거. 그리고 듣기 거북할 정도로 자기 고양 편향에 빠진 거. 자기 계발서를 쓰는 사람들은 차라리 초연한 태도를 보이는 게 나은 듯하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지 먼저 뽐내고 드러내지 않으면 내가 하는 말이 개똥철학으로 보일 것 같다는 두려움 같은 걸까. <말의 품격>도 마찬가지였다. 책이 가진 메시지(말 예쁘게 하기♡)는 무척 이로우나 그걸 풀어내는 방법이 오히려 반감을 일으켰다. 특히 불편했던 것은 좋지 않은 예시를 열거한 뒤에 '여러분 보셨죠?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저는 이렇게 살지 않아서 쟤들보다는 나은 사람이죠? 당신들도 나아질 수 있어요.'라며 설득하는 것... 뭐 어쨌든 나 말고 당신들을 좋아해 줄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할 점은 취하리라.
그 전엔 동호회 소모임 때문에<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를 읽었는데, 이 책을 읽고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큰 퍼즐이 맞춰진 느낌이 들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짝이 맞춰진 소설이라고 하던데 이것도 곧 읽어봐야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3. 오늘이 절기상 입추(立秋)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찍 퇴근해서 아파트 복도를 걷다가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게 느껴졌다. 지구온난화로 절기가 무의미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효력(?)이 있다. 어서 선선해져라. 캠핑도 피크닉도 잔뜩 가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