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를 언제부터 영감이라 불렀어요?
응? 내가?
네, 아까도 할아버지보고 영감이라 불렀잖아요, 옛날에는 당신이라 불렀던 거 같은데
내가 언제
맞는데?
선화아버지라고 잘 불렀지
아, 그것도 그렇고, 당신이라고도 잘 불렀어요
예이 모르겠다. 어이, 저기, 야 이렇게 부를 때도 있고
그냥 신기해서.. 언제부터 호칭이 변한 건가 해서
할머니는 손에 든 프라이팬을 들고 식탁으로 총총 걸어가 반찬을 접시에 듬뿍 쏟아 담는다. 내 말은 홀연히 공기 속에 퍼졌고 그 누구도 담아 가는 이 없었다.
할머니, 그 예전에 우리 촌에 작가 한 명 있지 않았어요?
아, 그 윤작가? 뼈암으로 돌아간?
네. 아마도.. 우리 8촌이라 그랬나?
에이. 뭔 8촌은, 그냥 친척네 친구 그 정도~
아하. 근데 그분은 어땠어요? 아니다, 그분 책 혹시 읽어보셨나?
읽어봤지. 근데 난 뭐 별로드라, 지저~분~해. 복잡하다. 보니까 우리 촌에 일들을 쓴 거 같긴 하던데
우리 촌 이야기?
에이 모르겠다. 나는 그런 이야기보다는 잡지에 실린 부부얘기가 더 잼있드라. 그 여자가 임신을 못해서 시어머니한테 구박받고, 근데 위 이쪽에 또 혹이 달려가지고.. 몸이 성치 않아서 허리를 동여매고 농삿일하고 결국엔 아이 낳다 죽고
아... 그럼 혹시 그 소설가, 아니 우리 촌에 살던 작가가 쓴 소설은 별로였어요? 아니다. 그분 소설가였던 거 맞아요? 등단했어요? 아님 그냥 글 쓰는 사람인데 촌에서 작가라고 불렀나?
작가, 작가 맞지, 그 시절에 월급도 나오고. 책 판 돈도 나오고 뭐.. 근데 나는 그 잡지가 너무 재밌다 이거야.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셔서 그때 읽으셨던 잡지에 실린 부부얘기를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알려주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말은 서서히 공기 속에 가라앉았고 그 누구도 담아 가는 이 없었다.
그렇게 나와 할머니의 대화는 공지 속에 퍼지고 가라앉으며 온기를 채워나갔다. 남은 것은 말랑말랑한 다릿살과 근육이 쏙 빠져 흐물흐물해진 팔뚝살의 감촉뿐이다. 그 살결들에 파묻혀 살냄새를 맡으며 질식하듯 안겨 남은 인생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잠은 눈꺼풀을 짓누르고 형광등의 광선은 눈알에 식초를 뿌렸다. 찬바람을 맡으며 군고마 냄새에 이끌려 킁킁하고 잠을 몰아냈다. 총총 걸으며 겨울에 꺼져 들어가 나의 마음뿌리 속에 짙게 발자국을 남겼다. 이내 바람 한 올이 불더니 발자국을 덮어버렸다. 오늘이라는 이 순간에 있었던 하찮은 자국을 또 1년 후에 꺼내볼까 생각한다. 같은 단어들을 이어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공기에 퍼뜨리고 가라앉게 하고 뭐 그런 것을 말이다. 그리곤 느끼겠지. 엇? 익숙한데? 내가 언제..이 얘길 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