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전해 듣다.
쇼펜하우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살아가는 데 최고의 지혜이자 원칙으로 들었다.
"현자는 괘락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
아들 녀석이, 작년에 출간되어 히트 친 책이라며 읽다가 던져둔 것을 잠시 서서 후루룩 읽다가 이 부분에 30초간 침묵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만나보지도 못해 면식도 없으면서 지난 두 달간 가장 긴 통화를 하루가 멀다 하고 했던 분과 나눈 이야기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가시가 돋아나 내내 마음을 여기저기 생채기 내며 회오리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이 오십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문득 내가 살아온 자신만만했던 인생들이 다 망친 길이었던 건가? 결국 실패한 인생인 건가? 하는 생각들이 들어서 내심 두려움도 없지 않습니다."
나의 이러한 우문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이 육십을 넘어 살아오면서 차분히 생각해 보면, 요즘에 한창 나오는 책들처럼 마흔이 일할 수 있는 최대 절정기이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시기라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라는 걸 느껴요. 생체나이들이 다들 젊어지면서 결혼도 늦어지고, 수명이 늘어나서 대부분 80까지는 살잖아요. 마흔은 뭘 하기에는 덜 여문 시기라고 생각해요. 특히나 세상의 고초를 모두 겪어 맨들맨들해지는 돌이 되는 과정의 초입이라고 보기엔 턱없이 덜 여문 시기인 거죠. 저는 지나고 보니 그게 50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50대라서 공감이 간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은 살아온 사람의 경험과 실리적인 근거를 배경으로 한 직관이 함께 묻어나 있어 깊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실 육십이 넘으면 뭔가 시들해지고 의욕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오십은 내가 마지막으로 인생의 무언가 발판을 만들어서 제2의 인생, 즉 죽기 전까지의 살거리를 만드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2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오십 전까지 배우고 부대끼고 넘어지고 상처 나며 달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대까지 대학이네 학위네 하며 배움에 쏟은 젊은 날을 뒤로하고 결국 마흔은 겨우 일을 배우고 시작한 지 10년이 된 시기이고, 다 채워 20년이라고 해도 반복되는 같은 일에서는 직능적으로 레벨이 올라갔을지 모르겠으나 인생의 측면에서 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다양한 부대낌과 위험한 것들을 비껴오면서 살아가기엔 충분한 세월이 아님은 맞다.
오십이 훌쩍 넘어서도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피터팬 같다는 지적을 같은 침대 쓰는 분에게 듣는 내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지 모르겠으나 내가 이제까지 시행착오라고 했던 모든 일은 참 신기하게도 지금에 이르러 혹은 내일에 이르러 그 용도가 폐기되는 일이 없음을 매일같이 확인하게 된다.
걷지도 못하던 아기가 겨우 걸음마를 떼고 달릴 수 있다고, 전문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한 어른의 달리기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단순히 젊은 에너지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우리는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머리로 모두 알고 있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못할 나이가 되고 나면 그것만큼 허망하고 가슴 아픈 일도 없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까지 쓰러지지 않고 살아내서 오십을 맞이했다면, 공자의 말처럼 천명을 아는 나이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겠으나 49년 동안의 경륜과 수양의 결과를 꽃피우기에는 부합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결국 오십 대는 그렇게 완성한 삶의 형태로 남은 30여 년을 쭈욱 더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오십이 한물간 세대라면 인간은 30년 이상의 세월을 반시체 늙은이처럼 노인정이나 기웃거리며 주민센터의 수업을 듣겠다고 소일을 해야 할지도 모를 터이나, 둘러보라,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아직 없지 않은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제2의 인생과는 다른 말이니 혼돈하지 말길 바란다.
이제까지 자신이 쌓아온 그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시기이고 그것을 꽃피울 수 있는 시기임을 말하는 것이다.
내게 지금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혹은 그러고 있는 중이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주저하며 흔들릴지도 모른다. 지금 세계가 내게 세찬 흔들림을 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아직 나는 그 앞을 살아보거나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다.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나 자신 말고는 그 어느 누구도 도와주거나 대신할 수 없는 내 삶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오십 년을 넘겨 살아오면서 배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