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발전의 간단한 역사

세 번의 부흥기와 두 번의 침체기

by 신광은

AI가 발전한 역사는 100년이 채 못 된다. 1950년 경부터 본격적으로 AI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 두 번의 침체기를 겪었다. 그리고 침체기 전후로 3번의 부흥기가 있었다. 지금 우리는 3번째 부흥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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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부흥기(1950-60년대): 탄생


통상 AI 기술 연구는 1956년 다트머스 회의와 함께 탄생했다고 한다. AI는 56년생으로 나이가 대략 70살 정도 된 셈이다. 다트머스 회의는 AI의 대부라고 불리는 존 매카시가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개최한 대학교인데, 여기서 다양한 용어들을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로 통합하고 AI 연구를 정식 학문 분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아이디어가 존재하기는 했다. 이미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앨런 튜링이 제안한 개념을 따라서 콜로서스라는 기계 계산기가 발명되었으며, 1945년에 애니악이라는 최초의 컴퓨터까지 발명되었다. 기계가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을 하는 것을 보고 이런 기계가 고도로 정교하게 발전하면 기계가 생각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에 앨런 튜링은 튜링 테스트를 제안하며 AI의 기본 개념을 제시했으며 유사한 시기에 노베르트 위너(Nobert Wiener)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이것은 자극과 신호라는 가장 단순한 피드백 시스템으로서의 AI의 개념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트머스 회의와 함께 이제 이러한 개념과 용어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첫 번째 겨울(1970년대)


다트머스 회의와 함께 본격적으로 출발한 AI 학문은 상당한 기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기계가 상당 수준을 추론을 한다거나 엘리자라는 챗봇으로 초보적 수준의 자연어 처리를 한다거나 퍼셉트론이라는 인공신경망 개념이 제안된 것은 큰 성과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라벨의 역설은 이렇게 AI 발전이 큰 장벽을 만난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모라벨의 역설이란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AI에게는 쉽고, 인간에게 쉬운 것은 AI에게 어렵다’는 것이다. 수조 단위의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이 인간에게는 어렵지만 AI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말을 한다거나 산책을 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쉽지만 AI에게는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AI 발전은 이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10여년 가까이 큰 침체를 겪는다.


두 번째 부흥기(1980년대): 전문가 시스템


그러다가 1980년대에 AI의 두 번째 부흥기가 도래한다. 그것은 바로 전문가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기술적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전문가 시스템의 기본 전략은 AI가 인간의 모든 지능을 모방하고자 하는 전략을 포기하고 AI의 특기를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일종의 특수 인공 지능(ANI: 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을 다수 개발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가령 의학, 화학, 광물, 컴퓨터 공학 등의 분야에 맞는 전문가 시스템 ANI를 개발한 것이다.


전문가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일단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 것이다. 의학의 경우, 질병과 증상들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만든다. 그런 다음 if ~ then ~이라는 알고리즘을 만든다. 그래서 ‘if’ 30대, 남성, 두통... 등의 조건문을 입력하면 ‘then’ 감기 65%, 뇌암 5%... 이런 식으로 결과값을 산출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전문가 시스템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검색하여 조건에 따른 논리적 추론을 할 수 있는 AI인 것이다. 이러한 AI는 제한된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성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번째 겨울(1980년대 말-1990년대 말)


전문가 시스템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AI의 활용 가능성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었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조금만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이 예외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이 때 인간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일일이 개입해야 했다. 또한 데이터 베이스의 정보가 계속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생겼다. 그러면 데이터 베이스가 확대되고, 그렇게 데이터의 업그레이드가 될 때 ‘if ~ then ~’의 조건문도 모순과 충돌이 생기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도 인간이 일일이 찾아서 새롭게 코딩을 해주어야 했다. 전문가 시스템 AI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값싼 PC 시대가 도래하면서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값비싼 전문가 시스템의 AI에 대한 수요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세 번째 부흥기(2000년대 이후)


두 번째 침체기는 체스를 두는 AI 딥블루(DeepBlue)가 1997년 체스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세 번째 부흥기는 2012년 제프리 힌튼 교수팀이 이끄는 수퍼비전(Supervision)팀의 알렉스넷(AlexNet)이라는 이름의 AI가 ImageNet 이미지 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시작되었다.


image.png 출처: https://www.letr.ai/ko


제프리 힌튼 교수의 가장 큰 공헌은 딥러닝 메커니즘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딥러닝 메커니즘이 가지는 의미는 AI의 주도권이 인간에게서 AI에게로 넘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이제 인간은 AI를 개발하기 위해서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다. AI가 스스로 학습(머신러닝)하여 패턴과 규칙을 찾아내면 된다. 이러한 아키텍트가 과거에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힌튼 교수 팀은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환경과 방식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큰 공헌이 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미지를 인식하는 AI를 개발했다. 인식형 AI가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10년쯤 뒤에 생성형 AI가 등장하고, 지금은 AI 어시스턴트가 막 출현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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