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도구를 넘어 동반자로 진화하다
인공지능이 ‘기술적 기능’에서 ‘관계적 존재’로 전환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이하 MS)가 2025년 4월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발표한 ‘코파일럿(Copilot)’의 대규모 기능 업데이트는 이 같은 변화의 집약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를 넘어,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사고, 행동, 기억과 접속하려는지를 보여주는 전환점이다.
코파일럿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이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상호작용을 설계한다. 핵심 기능인 ‘메모리(Memory)’는 AI가 단기적 질의응답을 넘어서, 사용자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이는 기술이 일종의 ‘시간성’을 갖기 시작한 지점이며, 인간의 내면적 특성 중 하나인 기억을 복제하려는 야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진화는 단순한 기술의 성능 향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AI는 이제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응답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사용자와의 관계성을 통해 자아와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메모리는 AI가 ‘기계적 존재’를 넘어, ‘서사적 존재’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번에 공개된 코파일럿의 기능들은 하나하나가 현재 AI 산업계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것을 모두 통합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비전(Vision)’ 기능은 카메라를 통해 주변을 인식하고 질문에 답하며, ‘액션(Action)’ 기능은 음성 명령을 실행하여 예약과 구매를 자동으로 수행한다. 이 외에도 프로젝트 관리 기능인 ‘페이지(Pages)’, 콘텐츠 생성 기능인 ‘팟캐스트’, 개인화된 정보 탐색을 위한 ‘딥 리서치(Deep Research)’ 등은 인간의 생활 전반을 포괄하려는 기술의 야망을 드러낸다.
이는 기술의 경쟁력이 개별 기능의 고도화가 아닌 경험의 일관성과 연속성에서 판가름난다는 MS의 인식 변화로 볼 수 있다. 코파일럿은 단순히 여러 기능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삶이라는 서사 구조를 하나의 플랫폼 내에서 기술적으로 직조하려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한편, 이번 발표가 구글의 제미나이, 오픈AI의 오퍼레이터 등 타사의 기능들과 유사하거나 경쟁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MS는 이를 ‘모방’이 아닌 ‘통합’이라는 방향성으로 풀어낸다. 특히 메모리 기능이 각 기능 간 연계를 강화하며 사용자 맞춤형 맥락 인지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단순 기능을 뛰어넘는 지속 가능한 상호작용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무스타파 술레이먼 MS AI CEO는 이번 발표에서 “AI는 우리의 삶 속 동반자(Companion)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다. 이는 AI가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방식이 보조적(assistive)에서 서사적(narrative)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그동안 AI는 기능적 효율성과 생산성에 집중된 도구였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을 기억하는 존재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느낀다. 코파일럿은 이 점을 노리고 있다. 메모리 기능은 사용자와의 대화를 축적하고, 그 사람만의 특성과 선호를 반영하는 ‘기억 기반 알고리즘’을 탑재하고 있으며, 이는 곧 사용자 개개인에 최적화된 디지털 페르소나를 만들어낸다.
MS는 이를 ‘AI 동반자’로 명명하며, AI의 본질적 정의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적 변화는 기술의 방향성과도 연결된다. 더 이상 AI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와 함께 성장하고 변하는 ‘관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실체가 되는 것이다.
� 핵심 개념 정리:
기억(Memory): 사용자 대화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반영
맥락화(Contextualization): 각 기능을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연동
동반자화(Companionship): 기술이 인간과 상호정서적 관계를 형성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은 더 이상 명령을 수행하는 단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해석하고 기억하며, 때로는 제안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이제 처리 속도나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얼마나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AI가 삶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능의 축적을 넘어서, 시간성과 관계성, 그리고 기억의 구조를 내포해야 한다. 그리고 MS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선언을 했다. AI는 단지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이는 기술이 마침내 인간과 대등한 경험의 시간 속으로 진입하고자 한다는 신호이며, AI 시대의 다음 단계를 여는 철학적 이정표라 할 수 있다.
� 요약 포인트
핵심 기능: 비전, 액션, 메모리, 페이지, 팟캐스트 등 통합 기능 출시
전략 방향: 도구에서 동반자로, 사용자와의 관계성 강화
철학적 의미: 기억하는 기술, 관계하는 기술, 살아가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