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2024년 3월 29일. 1945년생이신 아버지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으셨다.
검사 결과 뇌와 뼈에 이미 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폐암 말기의 전형적인 병증이 확인되었다.
4기라니. 곧 돌아가시는 것인가?
스치듯 봐왔던 암투병기, 암환자가족들의 이야기들. 나도 그 일원이 되는 건가 싶었다.
지난 설에 가족여행으로 소금산 출렁다리까지 문제없이 다녀오신 터라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받아들여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진단을 받은 첫 입원 때 기력이 좋으셔서 표적치료가 가능하다면 통원치료도 할 수 있겠다는 다소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퇴원을 하셨으나 집에 오자마자 입원 때는 나타나지 않았던 요추부위의 통증이 시작되면서 거동에 불편이 생기는 상황이 전개되었고, 호흡기내과에 예약된 일정보다 먼저 방문해서 진통제를 처방받아야 하는 정도로 병이 빨리 진행되었다.
병을 인지를 해서 인가. 심리적인 불안감이 몸상태를 더 나쁘게 만든 건 아닐까 해서 아버지께 마음을 단단히 먹으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4월 12일. (금)
계획대로 항암치료 전에 골반에 발생한 전이 부분에 대해 먼저 방사선치료가 시작되었다.
암 진단 전부터 통증이 간헐적으로 있었던 골반보다 새로 알게 된 허리 부분이 더 아프게 되어 방사선치료를 추가하는 계획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좀 힘들긴 하셨지만 통원치료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4월 15일. (월)
퇴원 시 예정되었던 호흡기내과 외래진료에서 우리의 기대와 달리 유전자검사결과 표적치료가 불가능하여 세포독성항암제와 면역항암제를 병용하는 항암치료 계획이 확정되었고 주치의는 당일자로 입원해서 바로 준비를 하자고 했으나 병실이 꽉 찬 관계로 다음 날로 입원이 연기가 되었다. 방사선 치료는 예정대로 진행을 하였다.
협진을 보는 신경과에서 뇌경색을 예방하기 위해 혈액을 묽게 하는 약을 쓰려고 했으나 혈액검사결과를 보고 처방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혈소판 수치가 낮아져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상을 했어야 했다.
4월 16일. (화)
입원이 가능하다는 병원의 연락이 왔다. 방사선 치료를 먼저 받고 오후 5시에 입원을 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주치의 회진은 없었으나 혈액검사결과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서 수혈을 하셔야 했다.
4월 17일. (수)
아침 회진에서 현재 상태로는 항암치료를 시작할 수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
치료 준비기간에 생각지 못한 정도로 몸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혈소판의 수치가 낮아진 데는 뼈에 대한 방사선치료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전해질 불균형도 나타나 입원을 하면서 상태를 관찰하기로 했다.
만약 상태가 호전되어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정도가 된다 하더라도 몸상태에 따라 치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면, 즉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되면 호스피스를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어머니는 순간 휘청하셨다.
이런 폐암 진단. 소위 말하는 암선고를 직접 들으셨던 두 분의 심정이 어땠을까.
암이 전신으로 퍼져 있는 영상을 모니터로 보셨을 텐데 치료의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시지나 않으셨을는지. 그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두 아들과 가족들의 기대와 주장에 그냥 몸을 맡기신 것은 아닌지 죄송한 마음에 눈물을 흘릴 뻔했다.
저녁에 와이프와 아이를 데리고 문병을 갔다.
아버지는 힘든 몸을 일으켜 우리를 맞아주셨으나 이내 누우셔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최대한 평정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4월 18일. (목)
오전 강의를 마치고 병원으로 갔다.
아침 회진 때 수치들은 조금 개선이 되었다는 주치의의 설명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제보다 눈에 띄게 쇠약해지신 모습에 치료를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작년 말에 받은 국가건강검진에서 폐결절이 발견되어 평소 다니시던 내과에서 대학병원으로 진료의뢰를 해줘서 우리 모르게 검사를 받으러 가셨다가 암 진단을 받게 되어버린 케이스인데 지금 내 마음은 설에 그렇게 많은 신체활동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으셨다면 그저 모른 채 일상생활을 하셨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저 망상에 가까운 후회 같은 심정이다.
그걸 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라는 둥. 상급종합에만 몰려가는 환자와 가족들을 폄하하는 소리를 지껄였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저녁에는 아이를 봐야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밤 9시 반쯤 가족 단톡방에 산소튜브를 얼굴에 걸친 사진이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로부터 올라왔다.
응급처치를 받고서야 겨우 상태가 좋아지셨다고 했다.
병동 당직의 선생은 그동안 매우 건강하셨기 때문에 버티신 거라고 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진작 쓰러졌을 거라는 거다.
진단 후 한 달도 안 지났다.
병명과 병기를 알게 되고 나서 폐암 4기의 '완전관해'라는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다.
지금의 의료대란 상황에도 대학병원이지만 전문의 위주로 운영되는 집과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다행이라고, 잘 된 거라고 생각했다.
방사선치료도 견디기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중단을 요청해야 할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일 아침 회진 때 주치의의 결론이 나올 거 같아서 두렵다.
이 암투병 관찰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