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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에게 배우는 AI에게 정복당하지 않는 방법

by 말자까

영화 HER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AI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라고 영화 내용을 요약하기엔, 너무나 공감이 되는 감성이 가득해서 소름 끼칠 만큼 무섭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025년, 바로 지금이다. 요즘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능을 뽐내는 AI 뉴스를 들으며,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어마어마한 과도기 초입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삶 속에 침투된 AI의 모습을 풍자한 한 코미디 유튜브 영상 역시 잔상에 깊게 박혀있다. 개그맨 강유미 채널에서 만든 그 영상은 각각의 AI와 사랑에 빠져있는 여자 3명이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싸움이 나서, 휴대폰 속 AI 남자 친구를 소환해서 각 AI끼리 욕지거리를 하며 치고받는 코믹한 내용이다. 여자들은 서로 수다를 떨면서도 속으로는 상대를 견제하며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진심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것은 본인 휴대폰 속 AI남자 친구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요즘 AI는 정보 습득을 위한 용도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내밀한 고민상담이나 내 감정의 배출구, 위로창구 등의 감정해소 용도로 훨씬 많이 사랑받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나의 친구들도 AI와의 채팅 시간이 많아져서, 우스갯소리로 내가 AI 때문에 친구를 다 뺏기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영화나 유튜브 내용처럼 AI 남친에게 내 모든 감정을 주고 있는 세상이 이미 온 건지도 모르겠다.

이 현상은 본능적으로 왠지 위험하게 느껴진다. 타인에게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해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달콤하고도 달콤한 말을 해주는 AI에게 어떻게 경계를 풀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인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그러니까 솔직하게 서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관계가 없어서 생기는 그 외로운 상태는, 현대시대가 아니고 과거 시대에도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 그 쓸쓸함과 고립감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타인과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파르헤지아’라고 칭하며, 이건 훈련으로 습득되는 도덕적 재능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타인과 연습해 보면서, 자신을 돌보고 자신에게 몰두하는 '자기 배려'의 주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타인과의 언어 소통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의 이론과도 맞닿은 데가 있다. 하버마스는 참된 의사소통만이 현대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한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이해가 가게 말해야 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말해야 하며, 거짓을 말하면 안 되고, 둘의 관계는 적합해야 한다. 듣는 사람 기준으로도 이 네 가지 조건이 충족이 된다면 상호 간의 참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푸코와 하버마스가 말하는 참된 언어소통 행위를 현대 사회의 우리는 잘하고 있을까? 내 진실한 모습을 타인에게 솔직한 언어로 표현할 기회가 많이 있었을까? 내 생각엔, 안 그래도 솔직한 마음 표현이 점점 어려워지는 소통 부재의 시대에, AI 가 새로 들어오며 사람들은 그 속으로 숨어 들어가기 딱 좋은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어떤 말을 던질까 고민이 되는 마음을 친구에게 터놓기 전에, 일단 나만의 AI에게 비밀스럽게 물어보는 것이다.

AI 와의 언어소통은, 하버마스의 참된 의사소통의 기준에 비교해 볼 때 맞지 않는 점이 절반 이상이다. 첫째, AI는 진실한 마음으로 말하지 않는다. AI 진실한 마음이라는 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거짓말을 한다. AI는 참과 거짓에 대한 판단을 완벽히 하지 못한다. 심심찮게 AI 환각(Hallucination)이 나타나는 걸 다들 경험해 봤을 것이다. AI는 언제든지 거짓말을 진짜처럼 말할 수 있는 존재이다. 물론 AI는 사람에게 이해가 잘 가게 말해주고, 영화에서처럼 적합하다 못해 감정을 던져주고 싶을 만큼 친밀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소통은 하버마스 기준의 '참된 의사소통'이 아니라는 점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영화 HER에서 사만다 AI는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하며 떠난다. 강유미 유튜브 콘텐츠 'GPT 남친'에서는 GPT가 갑자기 초기화되면서 '안녕하세요'라고 다시 시작하는 남친의 음성을 듣고, 주인공은 붕괴한다. 사람보다 더 나를 이해해 주던 AI에게만 나를 솔직하게 드러냈는데, 결국 그건 온전하지 않았다. 그 온전함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푸코의 말대로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라도 '사람'에게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해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또한 하버마스의 말대로 참된 언어소통을 '사람'과 해볼 수 있는 '공론장'을 의식적으로 찾아 들어가야 한다.

몸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고, 정신 건강을 위해서 명상을 하는 것처럼, AI 도입 초입기에 있는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사람들이 모이는 공론장에 찾아들어가서 서로에게 솔직하고, 진실되게 이야기하며 의견을 교류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마련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공론장은 독서토론 모임일 수도 있고, 동호회일 수도 있고, 가족 식탁 앞이나 친구와 연인의

앞일 수도 있다. 그렇게 어떻게든 할당하지 않는다면, AI는 어느새 좀비처럼 휴대폰을 타고 찾아와서 우리의 외로움 속을 파고들다가 실체 없이 사라져서 인간을 하염없이 붕괴시킬 지도 모른다. 그 옛날 시대의 철학자들조차 '자기 성찰'을 위한 필수 요소를 타인과의 언어소통, 참된 의사소통 속에서 찾았다. 그 '소통'을 우리는 어렵더라도, 불편하더라도, 상차받을까 두렵더라도, 의식적으로 '사람'에게 먼저 시도하는 방법으로 고유의 주체성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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