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 Feb 05. 2021

97. 나라는 인물의 설정.

나는 나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방학숙제로 일기를 써오라 하면 사실상 하루 이틀 안에 소설을 쓰는 것과 다를 것 없이 허구의 이야기를 몰아 썼다.

지금까지도 매년 올해는 다르다며 다이어리를 사지만 굳은 마음을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면 1년 뒤에 먼지에 파묻힌 것을 찾는 것이 보통이다.


수없이 글을 써왔고, 소설보다는 비소설을 더 많이 써왔지만, 나에 대해서는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작품의 리뷰를 쓸 때도 일반적인 교양, 사회현상과 결부시켜 논지를 펼쳐나갔지, 내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느꼈는지는 써본 일은 거의 없었다.


나를 바라보기 힘들었다. 내 안에 들어있는 뿌리 깊은 열등감과 좌절의 감정들을 글로 쓰면 쓰는 과정에 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외모에 열등감이 있으면 매일 아침 화장실에 서는 것이 고역인 것과 같다. 차마 매일 실패하고 매일 더 우울해지는 나를 글로 써본다는 것이 엄두가 안 났다.

그리고 뭐, 현실적인 생각으로 누가 그런 글을 볼까 싶기도 했다. 사람들은 글을 읽고 무언가 얻어가거나, 공감을 받기 원할 텐데 과연 내가 그런 공감받을 만한 성격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해서, 지극히 내 감정만을 써내려 보자고 생각한 건 조금은 더 진지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글을 쓰는 건 좋았지만 글을 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늘 거창했다. 알맹이는 얼마 없지만 늘 글은 3000자 이상을 넘어갔다. 요란한 빈 수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글이란 영혼을 벼려내서 만들어낸다고들 입을 모아 말하는데, 내 글에는 내가 벼려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머리를 짜내 글을 억지로 짜 맞췄다. 마음을 울릴 글을 쓰기 위해 영혼을 벼려내야 했는데, 머리에서 얼마나 그럴듯한 단어를 뽑아내는지를 생각하다 보니 두뇌만 벼려졌다.


영혼을 벼리지 못한다는 것은 벼려낼 영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내가 부끄러워 숨기려 하다 보니 내 어디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제대로 꺼내 쓸 수 없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조금만 잘 생각해보면 글을 쓸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소설을 쓴다고 하면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설정해야 한다. ‘이 인물은 여기서 이렇게 행동해’, ‘이 인물이니까 이렇게 말할 거야.’ 캐릭터가 가진 설정과 대화하며 글을 쓰는 게 자연스럽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아주 당연한 일이다. 설정이 없는 캐릭터는 공허한 기능적 인물이 될 뿐이다.

하물며 소설의 한 인물의 설정이 빠져도 그런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자, 어떤 설정을 가진 사람인지 도저히 확인하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가던 것이다.

나니까 쓸 수 있는 글은 어디에도 없고, 그저 기능적으로 옳은 글만 써 내려갔다. 내 글이지만 그 속에는 내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그래서 나란 인물의 설정을 찾아나가기 위해 글을 썼다. 조금이라도 ‘나밖에 못 쓸 글’을 찾기 위해서 먼저 내가 어떤 설정을 가진 인간인지 무작정 써 내려갔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잘 살지는 못하지만 못 살지도 않는 애매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깊은 우울감을 섞어놓으면 더 완벽했고.

물론 쓰고 있으니 난 참 애매하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인 것을 다시 느꼈지만, 그게 또 나를 대표하는 설정이 아니란 것을 날이 지날수록 알게 됐다.


내가 애매한 사람이 된 것은 내가 원래부터 그런 설정으로 태어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 만들어진 소설 속 인물이 아니고 27년 동안 차근차근 만들어진 인물이었다. 애매한 내 현재 모습은 지금의 설정일 수는 있지만 내 근본적인 설정은 아니었다.

책임감, 희생, 피해의식, 창작의지, 무저항, 피로감.... 내 설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예상은 했지만 난 생각보다 일관되지 않은 사람이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생각보다는 애매하지만 재밌는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는 내 설정, 내 감정을 찾다가 어딘가에 쿡 찔린 것처럼 멍하니, 조용히 울기도 하고 감정의 답을 내리지 못해 12시가 넘어가기 직전까지 글을 끝맺지 못한 적도 많다.

솔직히 지금도 그렇다. 도대체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뭔지, 어떤 게 진짜 내가 가지고 태어난 감정인지 물으면 물을 수록 질문만 튀어나온다.

‘나는 지금 어떤 걸 말하고 싶지?’

‘나는 어떤 인간이지?’

애매한 인간이다라고 나를 한마디로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글쓰기는 더욱 어려워졌고, 의문은 산같이 쌓여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미는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게 참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설정이 많은 사람이어서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나는 매력적인 빛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느꼈다.


나라는 사람을 관통하는 가장 큰 설정은 무엇일까. 그걸 알면 참 좋을 텐데. 그러면 이 글들의 제목도 금방 지어질 텐데 참 어렵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만한 설정이 너무 많고, 모든 설정이 참 깊고 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재밌고, 나라는 사람에서 여러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생각보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재미있는 설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정말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일까. 어떤 이야기를 담은 사람일까.

한마디로 하면 뭘까.

모르겠지만 그래도 햇빛에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여러 색이 섞인 사람일 것이다. 나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아마 그런 설정인 인물일 것이다. 분명히.



매거진의 이전글 96. 3할짜리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