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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보물상자

등굣길

by 별새꽃

버스가 자주 없어 국민학교 때는 차를 타고 다닌 적이 거의 없다. 추우면 추운 데로 더우면 더운 데로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다녔다. 포장도로가 아닌 신작로라 먼지가 펄펄 날리는 곳을 다니다 보니 먼지를 끄집어 쓰기 일쑤였다.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교문을 열지 않은 날에 등교하는 날도 많았다. 극성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여서 동네 언니 오빠들과 도로로 다녀도 되는데 산등성을 타고 다녔다.

무서워하면서도 왜 그리 다녔는지 이해가 안 된다.


여름이면 하교길에 강가에서 수영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멀기만 했다. 수영복이 없었기에 등교 때 입은 옷을 입고 놀다 그냥 대충 짜고 오는 길에 젖은 바지춤을 잡고 와야 했다.


도로길을 마다하고 강둑으로 다니다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겨울이면 강물을 따라 썰매를 타고 등교도 했다.


학교 가는 길에 다리가 있었는데 사고가 자주 난 이유가 죽은 귀신이 다리에 붙어 있어서 그런다고 했다.

군부대 가까이 있어서 군인 차량이 많이 다니고 보통 경운기 아니면 버스 정도 다니는 도로인데 한 번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군인 차량에 머리를 다쳐 몇 바늘 꿰맨 적이 있는데 마취도 안 하고 꿰매서 얼마나 아프던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꿰맨 자리에는 머리카락이 나지 않아 훈장처럼 있다.


군인차량이 다니면 태워 달라고 하면 태워준 아저씨를 만나는 운이 좋은 날도 경운기 뒤에 타고 편히 가는 날도 있었다. 뒤에 타면 엉덩방아 찧고 난리 법석을 피웠지만 즐거운 날이다.


어떤날은 오토바이에서 뻥튀기가 떨어진 것을 모르고 달려가는 아저씨 덕분에 뻥튀기 한자루를 주워 먹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주 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시장 다녀오는 엄마가 버스를 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날은 버스 타는 재수 좋은 날이다.


우연히 만난 엄마가 얼마나 좋던지 몰랐다.


겨울에는 난로에 불을 지펴야 해서 옥수숫대도 가져가고 솔방울도 주워 자루에 담아 가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야지 따뜻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던 시절 이고 학교에서는 늘 도시락 검사를 했다. 잡곡밥 장려를 위해서이다. 잘 사는 아이들은 흰밥을 싸와 다른 아이의 보리밥을 얻어서 위만 살짝 덮어 통과하는 얕은수를 쓰기도 했다.

최고의 반찬은 달걀 프라이 아니면 소시지 반찬이었다.

대부분 비슷한 반찬 김치, 감자볶음, 짠지무, 가지나물, 시래기나물, 콩자반 제철나물 반찬이 전부였다. 친구들과 모여서 비벼 먹던 비빔밥은 잊지 못할 맛이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친구들은 숟가락만 가져와 친구들 도시락 한 숟가락씩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인심 좋았던 그 시절이다.


극내성적인 나는 진짜 울면서 다녔던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날 꺾인 도로를 돌아가야 할 때 너무 추워 울면 오빠가 업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세 살 위 오빠였는데 그때는 참 얼마나 어른스럽던지

등이 얼마나 따스했는지 모른다.지금은 나보다 키도 작은데 그 당시에는 어떻게 업고 다녔는지.

모든 것이 변한 등굣길은 잘 정리되어 거리도 가까워졌고 학교는 분교로 바뀌고 성인이 되어 찾은 운동장은 얼마나 작은지 그 많던 학생은 어디 가고 텅빈 운동장은 그네만이 바람에 흔들 걸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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