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경제포럼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단연 AI였다. 공식 의제는 ‘대화의 정신’이었지만, 무대의 중심에는 AI 기업의 리더들이 있었다. 특히 일자리 문제를 둘러싼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다리오 아모데이는 AI 발전 속도가 노동 시장의 적응 속도를 압도할 것이며, 2026년부터 초급·인턴십 영역에서 일자리 감소가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젠슨 황은 의료 영상 판독 사례를 예로 들었다. AI가 방사선 영상을 1차로 분석하면서 의사가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판독 속도가 빨라지고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되면서 의료 수요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AI는 의사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의사의 역할을 보조하고 확장했다는 설명이다.
같은 기술을 두고 한쪽은 감소를, 다른 한쪽은 전환을 말한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이유는 거대한 경제 전망이나 낙관적 믿음 때문이 아니라, 최근 내가 직접 경험한 변화 때문이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개의 작은 시스템을 설계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즉시 텍스트로 추출해 구글 시트에 저장하는 구조, 입력한 단어로 예문을 생성하고 필사용 PDF까지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웹앱, 독서 기록을 자동으로 정리하는 시스템, 뉴스 데이터를 누적해 키워드 네트워크를 시각화하는 파이프라인. 겉으로 보면 단순한 자동화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구조들은 반복적인 업무를 줄인다. 데이터를 손으로 옮겨 적지 않아도 되고, 예문을 일일이 만들지 않아도 되며, PDF를 수작업으로 편집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나는 일자리를 없앤 것일까?
아니다.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설계하는 위치”로 이동했다. 이전에는 내가 직접 수행자였다. 지금은 흐름을 설계하고, AI가 실행을 담당한다. 변화의 본질은 자동화가 아니라 역할의 재배치다.
AI 이전의 노동 구조는 직무 중심이었다. 정해진 업무를 정확히 수행하는 능력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AI 이후에는 역할 중심으로 이동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 흐름을 설계하고, 어떤 과정을 AI에게 맡길지 결정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반복 작업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위에 놓인 설계와 판단의 영역은 오히려 더 확장된다.
이 지점에서 젠슨 황의 말이 이해된다. AI는 사람을 밀어내기보다, 사람을 더 상위의 판단과 구조 설계 영역으로 밀어 올릴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이동은 자동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업무 수행 능력만을 훈련받는 구조 안에서는 AI가 위협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초급 업무가 사라진다는 말은 초급 인력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초급의 정의가 바뀐다는 의미에 가깝다.
과거라면 내가 만든 시스템들은 개발자에게 의뢰해야 했을 것이다. 예산을 확보하거나, 외주를 맡기거나, 아니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다르다. 나는 코드를 모두 직접 작성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만들지, 어떤 데이터가 필요하고, 어떤 흐름으로 작동해야 하는지를 정의한다. AI는 실행을 돕는 도구가 된다. 생산성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역할이 이동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보스에서 제기된 ‘일자리 감소’ 논쟁을 단순한 숫자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노동의 총량이 줄어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구조가 어떻게 재편되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AI는 기존 직무의 일부를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새로운 설계, 조정, 통제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반복 업무가 줄어드는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은 ‘일’ 전체가 아니라, 특정 방식으로 정의된 직무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그 옛 직무 구조를 기준으로 교육하고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얼마나 정확하게 수행했는지, 얼마나 빠르게 처리했는지를 중심으로 능력을 측정하면서, 문제를 정의하고 구조를 설계하는 역량은 충분히 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AI가 전기나 인터넷처럼 인프라에 가까운 기술이라면, 변화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달려 있다. 인프라 위에서 가치를 만드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 된다.
결국 AI는 일자리를 없애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직무 정의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이야기다. 역할을 재정의하고, 실행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는 위치로 이동한다면 AI는 인간의 일의 범위를 오히려 확장하는 도구가 된다. 다보스의 논쟁은 거대한 미래 예측처럼 들렸지만, 나는 이미 내 작업 방식의 변화 속에서 그 전환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체감하고 있다.
또다시 송길영 작가님의 이 말이 다시 생각난다.
내 '일'은 내 '일'을 없애 일이 될 것이다.
[참고 영상]
https://youtu.be/Ca0DorKNZGs?si=INQKV97pNsZWKDHP
[참고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