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만드는 웹앱 번역기, 문장 생성기, 간단한 도구들 대부분은 처음부터 계획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이게 될까?”라는 생각으로, 재미 삼아 AI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만들어 본 것이다. 딱히 쓸모를 정해둔 것도 아니었고,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그냥 궁금했고, 만들어보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하나를 만들다 보니, 처음엔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능이 떠올랐고, 기능을 추가하다 보니 구조를 바꾸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게 내 일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놀이처럼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내가 실제로 쓰는 도구가 되었고, 요즘 내가 만드는 웹앱 대부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보통 ‘놀이’라고 하면 쓸모없고, 생산적이지 않고, 쉬는 시간에 하는 것을 떠올린다. 그래서 일과 놀이는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생각은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조금 어긋나기 시작한다. AI는 이미 정답을 찾고, 요약하고, 자동화하는 일을 아주 잘한다. 효율과 생산성의 영역에서는 인간이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느끼기에, 남는 것은 바로 목적 없이 시도해 보는 능력이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 번 해보는 것, 실패해도 손해가 없는 실험, 결과보다 과정이 재미있는 시도.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이라기보다, ‘놀이’에 가깝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그는 문화가 노동이나 생존의 필요에서가 아니라, 놀이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중요한 점은, 놀이의 가치는 처음부터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놀이는 외부 목적을 위해 시작되지 않고, 그 의미는 보통 나중에 드러난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과정도 그렇다. 처음부터 “이걸로 뭔가를 해야지”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재미로 만들었기 때문에 계속 손을 댈 수 있었고, 계속 만졌기 때문에 내 일과 연결될 수 있었다.
AI는 이 과정을 훨씬 가볍게 만들어 준다. 과거에는 하나를 만들어보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면, 지금은 질문 하나, 시도 하나의 부담이 거의 없다. 그래서 AI는 인간의 일을 빼앗는 존재라기보다, 놀이의 진입 장벽을 낮춘 도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AI 덕분에 우리는 계획이 완벽하지 않아도, 쓸모가 불분명해도, 일단 만들어보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놀이 같은 시도’들이 쌓여 어느 순간 실제로 쓰이는 도구가 되고, 일의 방식 자체를 바꾸기 시작한다.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놀이를 얼마나 오래 이어갈 수 있느냐일지도 모른다고.
의미 없이 시작한 시도가 의미를 목표로 시작한 일보다 더 멀리 가는 경우를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 처음부터 일로 시작하지 않았던 것이 있는지 떠올려보자. 그게 있다면, 어쩌면 그 지점이 다음 변화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