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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클럽

브랜더's 다이어리 #08.

처음부터 블루클럽을 찾았던 것은 아니다.
이발소 따윈 사라진 지금, 선택의 여지 없이 다닐만한 미용실은 적지 않았다. 걸어서 다닐만한 곳만 해도 예닐곱 군데, 미용실의 규모와 주인의 연령대, 가격대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그곳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꺼려지는 곳 역시 미용실이었다. 가족보다 더 끈끈한 아줌마들의 수다에,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볼 일?만 보고 가는 경험이 영 불편했다. 아무래도 약한 남자 컷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공통된 소재를 찾기 힘든 침묵의 시간은 더욱 그랬다. 동네 미용실을 벗어나 마트에 입점한 프랜차이즈에서 만난 젊은 여자 미용사는 내가 침묵하자 자신마저 입을 닫았다. 그랬던 내게 블루클럽은 얼마나 반갑고도 고마웠던지...

싼 가격도 고마웠지만 그건 두 번째 이유였다. 기계처럼 10분을 넘기지 않는 이발 속도, 침묵을 덮어주는 조그만 액정 TV, 낯선 아줌마의 손길을 참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셀프 형태의 샴푸와 드라이와 스킨과 로션, 면봉까지. 이제 이발과 관련된 스트레스는 덜었다고 내심 안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블루클럽과의 만남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첫 번째 위기는 다음 손님에 대한 압박이 컸던 초보 미용사의 실수로 잔 머리카락들이 온몸에 들러붙었던 끔직한 경험이었는데 그냥저냥 넘어갔다. 그러나 너무나 편하게 매뉴얼대로 깍은 나머지 온 가족과 회사 동료들의 실소를 자아낸 정체모를 바가지 스타일을 만난 두 번째 경험은 참을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세 배 가까이 비싼 토니앤가이를 고수하고 있다.

원래의 목적에 충실한 것, 필요 이상의 서비스에 매몰되지 않는 것, 대단한 스타일링 보다는 깔끔하고 상쾌한 경험에 경제적인 만족까지 선사하는 블루클럽에 딱 한 가지 모자란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값싸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다른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비단 나만의 욕심이었을까?

토니앤가이의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마치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기계 속 공간에 내 머리를 맡길만한 용기는 좀체 나지 않는다. 모든 블루클럽의 미용사들이 그렇지는 않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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