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x 쉐이딩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들에서 많은 화가의 작품을 접하곤 했다. 기억에 남고 인상적인 화가들도 많았지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만큼 내게 짙은 여운을 남긴 이는 없었던 것 같다. 이미 많이 알려진 고흐의 생전의 모습 때문인지, 아무리 건조하게 대하려 해도 그의 그림 앞에서는 이내 감상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데 이럴 때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다. 참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화가다.
고흐의 그림이 관람자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데는 그가 캔버스에 표현한 빛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고흐의 빛이 만들어낸 색채 때문이다. 눈을 기쁘게 할 만큼 화려하지는 않아도, 뭔가 꿈틀거리는 듯 요동치는 색감이 자꾸만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 색은 한낱 빛의 반사로 이뤄지는 자연현상일 뿐인데, 고흐의 색에는 이를 뛰어넘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왜 고흐의 그려냈던 색에서 남다른 감명을 받는 것일까?
이 답을 하기 앞서 색을 만들어내는 빛은 과연 무엇인지 다시한번 살펴보자. 빛은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전자파(電磁波)중 하나인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波, wave)' 즉 고흐의 그럼처럼 꿈틀대며 움직이는 일종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꿈틀거림을 잘 살펴보면,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듯, 반복적으로 발생되는 어떤 움직임이다. 그리고 이 움직임은 한번 움찔할 때마다 일정한 길이(파장)나 높이(진폭)를 갖는다. 우리는 중학교 과학시간에 이를 '진동'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전자파는 한번 진동할 때마다 파장만큼의 거리를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다양한 전자파가 있다. 라디오, TV, 스마트폰이 사용하는 전파, 병원에서 흔히 만나는 X-ray 등이 모두 전자파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자파들은 각각 그 모양이 다르다. 한번 움찔할 때마다 이동하는 거리, 즉 파장이 다 다른 것이다. 게다가, 각 전자파들은 딱 하나의 파장만을 갖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TV 전자파는 한번 진동할 때마다 1~100m까지, 라디오 전자파는 100m~1000km 거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전자파는 각각 적당한 파장의 영역대가 있다. 근데 특이한 것은 모든 전자파가 이동하는 속도가 같다는 것이다 (바로 빛의 속도!). 그래서, 파장이 다른 전자파가 같은 시간 내에 같은 거리를 날아가려면, 진동하는 횟수가 달라야 한다. 전파와 같이 비교적 파장이 긴 녀석에 비해 X-ray와 같이 파장이 짧은 단파는 훨씬 많은 진동을 그것도 더 빨리 해내야 한다. 그렇기에 파장이 다른 전자파들은 각각 그 성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빛도 전자파의 일종이라 했으니 고유의 파장 영역대를 가질 것이다. 일상적으로 말하는 빛, 즉 가시광선은 대략 380-750nm(나노미터는 10의 -9 제곱승이므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매우 짧은 거리다)의 파장 영역대를 갖고, 그 영역대 내에서 파장에 따라 빛은 고유의 색을 갖는다. 파장이 가장 짧은 쪽은 보라색, 긴 쪽은 빨간색을 갖고 그 사이에서 무지개 빛의 색들이 펼쳐지는데, 이를 우리는 '스펙트럼(spectrum)'이라고 부른다. 즉, 가시광선은 고유의 파장을 갖는 여러 가지 색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색깔을 갖고 있는 빛이 물체에 부딪히게 되면 물체의 물리적인 특성에 따라 일부는 흡수되고 나머지는 반사된다. 앞에서 말한 대로 빛의 색깔은 각각 고유의 파장을 갖는데, 물체가 반사시킨 파장대의 빛이 우리의 눈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시각 기관을 통해 그 물체의 색으로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만일 어떤 물체가 700nm 영역대의 빛을 주로 반사시키고 나머지를 다 흡수해버린다면 이 물체는 빨간색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물체가 반사시킨 빛을 그 물체의 색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파장대에 따라 반응할 수 있는 시각세포가 우리의 눈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체의 색은 물체의 반사 특성뿐만 아니라 조명의 특성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는 조명이 그 종류에 따라 각자 다른 파장 스펙트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열등은 상대적으로 장파장대의, 형광등은 상대적으로 중파장대의 성분을 갖고, LED와 갖은 최신 조명은 그 조명 색에 따라 파장대를 변경시킬 수도 있다(3파장, 5파장 램프니 하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따라서, 같은 물체라 하더라도 다른 종류의 조명에서 나온 빛을 받으면 그 반사된 빛의 파장 스펙트럼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조명이 달라지면 물체의 색이 달라질까? 우리의 눈이 빛을 받아들여 시각 세포에서 파장을 측정하면, 이 측정된 정보는 일종의 신호로 바뀌어 시신경을 통해 우리의 뇌로 전달된다. 이때 우리의 뇌는 이 신호를 해석하게 되는데, 이때 조명의 세기나 색의 변화를 '어느 정도' 보정하게 되어, 물체의 색을 일정하게 보이게 한다. 따라서, 태양빛 아래서나 백열등 아래서 사과는 빨간색으로, 바나나는 노란색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주변 환경이나 조명의 밝기에 따라 물체의 색이 조금씩 달라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 늦은 오후에는 세상의 사물은 다소 어둡고 칙칙해 보이지만, 화창한 정오에는 모든 사물의 색이 선명히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광원의 세기나 색상에 따라 사물의 색채가 조금씩 달라 보이는 이유는 우리 뇌의 조명 보정 능력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체가 갖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빛이 주어진 환경에서 전자파의 형태로 우리의 눈으로 입사되고, 시각 세포를 통해 그 파장이 측정된 뒤 뇌에서 해석되면서 비로소 '색채'로 거듭나게 된다. 그래서, 지금 눈에 보이는 물체의 색이 주어진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바로 그 물체의 색인 것이다.
시각적인 콘텐츠를 다루는 컴퓨터 그래픽스에서 사물의 색채를 결정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실세계에서 물체의 색이 그 물체가 반사해 낸 빛에 의해 결정되듯이, 그래픽스에서는 현재 환경에서의 조명과 물체 자체 특성(물질, material)을 반영한 수학적인 모델을 통해 최종 색을 계산하게 된다. 실세계의 모든 조명의 종류를 정확하게 고려할 수 없기에 몇 가지 근사화된 모델을 사용하게 되는데, 광선이 물체에 부딪히는 순간, 그 지점으로 향해 주변에서 들어오는 빛(주변광, ambient), 주변으로 확산되는 빛(확산광, diffuse), 그 지점에서 정확히 반사되는 빛(반사광, specular) 등 세 가지 정도를 고려하고, 빛을 받아들이는 물체의 특성을 함께 반영하여 최종 색을 계산하게 된다. 이 과정을 그래픽스에서는 쉐이딩(shading)이라고 부른다.
쉐이딩 계산을 수행할 때 빛의 색(정확히는 물체가 반사해 내는 색)이 반영되기 때문에 조명 조건에 따라 최종적인 물체의 색은 달라질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자연광에 대한 색상을 달리 반영하여 정오와 저녁시간의 조명 조건을 모사하여 렌더링한 경우로, 정오는 선명한 색을, 저녁은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가미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실세계에서 주어진 조명의 특성에 따라 사물의 색이 조금씩 달리 보이는 것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빛을 탐구하던 과거의 예술가들은 조명에 따라 사물의 색이 달라지는 자연현상이 매우 흥미로웠다. 비추이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색채를 내는 사물을 보며,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원래부터 정해진 색이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물이 내뿜는 색채는 지금 이 순간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는 사라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들은 대상보다 대상에게 색을 입히는 빛 그 자체를 그리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런데, 무언가를 화폭에 담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대상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기 위해서는, 결국 빛을 우리 눈으로 되돌려주는 사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때 사물은 빛을 잠시 담아내는 그릇에 불과하고, 빛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한 매개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눈으로 보이는 현실의 장면보다 그 대상을 대했을 때 인간 내면에 떠오르는 영상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인 영상이 바로 '인상(impression)'이며, 이들처럼 '대상을 향한 인상'을 그려냈던 화가 집단이 바로 우리가 현재 가장 사랑해마지 않는 '인상주의파'이다.
인상주의 화가들 중 빛에 대한 탐구정신이 남달랐던 이로 단연 오스카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를 꼽는다. 그는 인상파의 기원으로 알려진 <인상, 해돋이>를 1872년에 발표한 뒤, 후일 인상파를 이끌게 될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리, 세잔, 에드가 등 진보적인 젊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빛의 변화만을 담고 대상의 형태는 도외시하는 인상파의 화풍은 당시 사실주의를 중요시하던 주류 미술계의 조롱감이었다. 초기엔 사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실력이 없는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았고, 비평가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했기에 늘 가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인상파의 그림이 차츰 재평가되면서 모네의 그림들이 하나 둘씩 팔리기 시작했고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된 그는 1883년 가족을 데리고 북부 프랑스 작은 마을 지베르니(Giverny)에 정착한다. 이곳에서 그는 자연을 주제 삼아 말년까지 작품 활동에 몰두했는데, 돈 걱정이 없어지면서 그는 비로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바로 빛에 대한 실험을 더욱 밀도있게 진행한 것이다.
지베르니에서 그렸던 건초더미 연작은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빛에 대해 탐구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어느 날 그는 건초더미에서 빛의 변화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주제로 연작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다양한 시간대에 똑같은 건초더미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는데, 때로는 그림을 그리는 속도가 빛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눈앞의 장면들을 가능한 많이 담으려 하다 보니, 한번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수레 가득 캔버스와 물감을 준비하곤 했다. 그 결과 시간, 계절,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햇빛, 대기, 분위기를 다양하게 담아낸 아래와 같은 그림 연작을 그려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화가들은 첨자 인상주의는 한계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빛의 변화에 집중하고 사물의 인상만을 담기 위해, 짧고 거친 붓터치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항상 뭉그러진 형태의 대상만이 남은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잔, 고갱, 고흐, 쇠라 같은 화가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풍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이들 모두 모네의 인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고, 인상주의의 바탕아래 입체주의, 표현주의, 상징주의 등의 새로운 미술사조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고흐의 그림에 담긴 색채는 이런 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시도의 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고흐는 그림에 빛이나 사물이 아닌, 열정적인 자신의 내면을 화폭에 담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어떤 대상이나 주제보다 그의 삶이 송두리째 녹아 있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 앞에서는 그토록 감상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빛이 우리의 눈으로 입사되면 망막에서 시각 세포를 통해 감지되고, 그 신호가 뇌로 전달되어 '색채'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색채는 우리의 마음에 전달되어 심리적인 영상, 즉 인상을 남긴다. 그 인상은 또다시 내면에 구축된 세계와 섞여 불타오르는 감정과 열정으로 승화된다. 고흐가 그림에 담은 것은 바로, 외부로 표출한 그의 마음속의 색채였던 것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Liz West, rainbow tun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