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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Nov 30. 2023

미국 이직에 대해 지인과 상의하면 안 되는 이유

때로는 남보다 못한 존재


톡이 왔다. 산호세 출장 왔다며 한번 보자는 K의 연락이었다. K는 삼성시절 동료였다. 팀은 달랐지만 같은 그룹이라 가끔씩 함께 일하던 딱 그 정도의 친분관계인. 그리고 보니 한국 출장자에게 연락 온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뜸하더니 이제는 미국으로 활발히 출장들을 오고 있나 보다. 그럼 앞으로 이런 일도 많아지겠다 싶었다. 내 지루하고 건조한 일상에 단비가 내려주려나.


저녁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K와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출장자들을 통해 전 직장 소식을 간간히 듣곤 했는데, K 덕분에 이번에 소식이 조금 업데이트되었다. 조직이 어떻게 개편되었고, 부서장이었던 임원들이 집에 가게 되었고, 또 누구는 이직해서 잘 나가고 있다는 등 흥미진진한 소식들이었다. 몸은 그곳을 떠난 지 꽤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한국에 있는 것인지 K의 이야기들이 모두 내 귀에 쏙쏙 박혔다. 


"미국 생활은 어떠세요?"


안부를 묻는 K의 표정이 신묘했다. 단순히 6년 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의 안부만을 묻는다기엔 K의 얼굴은 꽤 진지했다. 알고 보니 그는 뒤늦게 미국에 오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했다. 의외로 아내와 중학생인 아들이 미국 이민을 강하게 원해왔고 그동안 아빠를 심히 압박(?)했다는 것. 다만 본인도 뜻은 있었으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했다.


이해는 갔다. 미국 이직에 대한 마음이 있어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막상 액션으로 취하기엔 쉽지 않은 일일게다. 아침 일찍 출근. 밤늦게 퇴근. 통근버스 왕복 2시간. 집에 오면 씻고 가족이랑 시간을 조금 보내다 취침.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미국병이 생기다가도 '미국은 무슨...'이라며 의지가 사그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전에 단기 유학, 어학연수, 출장 등을 통한 간접적인 미국 경험이 없는 이들에겐 이민은 마치 모험이나 다름없다. 타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한국에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지면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더 어려워진다. 같은 이유로 K는 점점 소극적이 되었다.


그러던 그가 한 달에 가까운 미국 출장을 경험하고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네..'라는 마음이 들면서 뒤늦게나마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기억해 내곤 출장이 끝나갈 즈음 연락을 했다. 


"글쎄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고.. 근데 장점이 훨씬 많아요!"


나는 오랜만에 수다를 쏟아냈다. 미국의 삶과 직장생활에 대해 평소 글을 쓰고 있는 내게는 이미 콘텐츠가 넘쳐났다. 그리고 단점이라 말한 것이 '일처리가 늦어 관공서나 병원 다니는 게 불편한 정도'였다. 이미 미국 생활이 익숙해진 내게는 그 이상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왜 엔지니어가 실리콘 밸리이어야 하는지를 입에 침을 튀어가며 설파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준비해야 할 방안에 대해 아는 대로 조언했다. 비자, 영주권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경력 위주로 이력서를 꾸며야 하는지, 영어를 다시 공부해야 하는지 등 이직 준비에 대해서 알려주었고, 미국 정착, 산호세 물가, 자녀 교육 등 전반적인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이야기해 줬다. 브런치에 계속 써내려 왔던 것들이었다. 


내친김에 K에게 이 브런치 주소를 알려주고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예나빠'라는 페르소나가 한 지인에게 알려지는 순간 이는 내 또 다른 지인에게 알려질 것이고, 내 글에서 '자유로움'은 영영 사라질 테니 말이다. 지금 이 글도 못써내려 갔을 것이다.



K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없었다 했다. 사실 한국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국으로 이직하고 싶다 했을 때, 백이면 백 다들 부정적이라 했다. '칼퇴근할 수 있고 집과 일터가 가까워 가족과의 시간이 많다던데..'라는 말에 '그러게 누가 서울에 살라했어? 수원 회사 근처 망포로 이사 오면 되잖아!'라는 빈정 섞인 대답까지 돌아오곤 했다고.


"때로는 지인이 남보다 못한 법이에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은근히 남이 못되길 바라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못한 것을 자신의 친구, 지인이 해내는 걸 보면 시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물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보살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초극소수다.


친구, 동료, 지인들은 사실 '미국 이직'과 같은 삶의 중요한 결정을 의논하기엔 부적절한 상대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미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나에 대한 호불호 감정으로 객관성을 잃는다. 질투심에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할 수도, 아니면 무책임하게 밝은 면만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 편의 대다수 사람들은 내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다른 이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을 의논해 봤자 '응, 좋네...'라는 영혼 없는 대답만 듣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나와 전혀 친분관계가 없지만, 경험 있는 멘토를 찾아 나서는 것이 낫다. 어쩌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 온라인으로 소통하던 사람이 더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질문에 누군가 더 값진 정보와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대답을 줄 수 있다.


내가 '미국으로 이직하게 되었다'라고 했을 때 동료들의 시선은 각양각색이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직이 가능하는 것에 대한 생경함, 신기함, 궁금함, 부러움이 담긴 눈빛을 보이거나, 간혹 가벼운 축하와 격려를 건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바로 '무반응'이었다. '아, 또 누가 퇴사하는구나' 정도였을까. 


무리도 아니다. 솔직히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나보다 잘 나가는 팀 동료를 질투하고, 안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미국에 와서도 미국 이직에 대한 문의를 구하는 사람, 미국에 왔다며 어떻게 정착해야 하는지 물어오는 누군가가 있을 때면,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마음보다 '내가 개고생 해서 알게 된 걸 거저먹으려고?'라는 못난 심보를 가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미국에서 도움 입었던 지인, 교회 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시 고쳐먹곤 했다. 


K가 내 친한 친구, 지인이었다면 내가 그에게 남보다 못하게 굴었을까? 어쩌면 내가 그와 필요이상의 친분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말을 아끼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저 살면서 하나둘씩 알게 된 것, 대단한 것도 아닌 것을 이야기해 준 것에 K는 연신 '고맙고 고맙다'고 했다. 그저 민망해졌다. 


K는 용기를 얻고 돌아간 것 같았다. 그는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고맙습니다. 조만간 다시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는 톡을 보내왔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라는 답장을 보내며 그를 미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 예나빠


표지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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