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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Feb 25. 2024

나를 돋보이게 만드는 발표 자료 작성 요령 5가지

발표는 의무가 아니라 기회


대학원, 직장에서 소위 PT(프레젠테이션)라 불리는 발표는 수시로 일어난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다수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공학도나 엔지니어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원에서는 랩 연구 보고, 세미나 논문 요약, 외부 학회, 학위 심사 같이 크고 작은 학술적인 발표가 많다. 졸업 후 연구원이 되면 학회 발표를 계속하게 되지만, 연구소도 일종의 위계 조직이니 보고를 위한 발표도 많아진다. 엔지니어 직군도 유사하다. 실무자들은 상사, 팀원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관리자가 되면 경영진에게 프로젝트를 기안하거나 결과 보고를 위해 발표를 하게 된다. 


성공적인 발표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바로 스피치 능력청중에 최적화된 발표 자료다. 스피치 능력이야 개인 역량에 달린 것인데, 필자가 글로 알려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발표는 짬밥이라 했던가. 많은 연습만이 답이며, 필요하면 개인 스피치 학원을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은 발표 자료, 그중 '전달'용 발표의 자료 작성 방법을 알아볼 것이다. '설득'을 위한 발표를 배제한 이유는 다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VC Pitch(투자자 대상 발표), 기술 마케팅, 입찰용 경쟁 PT, 경영진 리뷰와 같은 발표는 타깃 청중이 한 명 내지는 소수에 국한된다. 물론 발표를 함께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 발표의 성패에 영향력이 없는 이들이다. 


따라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그 타깃 청중에 맞춰 자료 작성을 해야 한다. 직감형, 숙고형, 텍스트 선호형, 비주얼 선호형 등 취향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폰트 종류와 크기, 테이블, 그래프 형식이 아니면 발작버튼을 누르는 임원도 있다. 이런 고약한 의사 결정권자가 버티고 있는 경우 맞춤형 작성 요령이 조직 전체에 암암리에 전파되곤 한다. 따라서 이러한 '설득'형 발표의 경우 이후 필자가 기술할 방법보다 타깃 청중의 스타일에 최적화하여 준비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형식을 중요시하던 K모 전무님. 이미지 출처=예나빠 태블릿


자, 그렇다면 '전달'용 발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기조연설, 패널 토크, 논문 요약, 랩 세미나, 업무나 정보 공유, 출장 보고회, 전파 교육 등 특정인이 아닌 다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발표 모두 해당된다. 물론 여기서 편의상 '전달'과 '설득'으로 구분 짓긴 했지만, 전달용 발표에도 일부 '설득'의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통해 은연중 청중을 설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달용 발표도 적절히 문맥을 설정하고 논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본 글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스탠퍼드대 컴퓨터 과학과 Kayvon Fatahalian 교수의 'Tips for Giving Clear Talks [1]'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의 의견을 추가한 것이다. 필자가 학회나 사내 발표 자료를 준비할 때 이 가이드라인이 꽤 도움이 되었다. 


1. 청중을 식별하라


엔지니어의 모든 글쓰기가 독자를 상정해야 하듯, 발표 자료를 작성할 때도 청중이 누군가 인지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발표 시 내가 말하게 될 모든 것에 대해 청중을 이해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철저히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해 자료(와 스크립트)를 작성해야 한다. 심지어 청중이 발표자의 업무와 연구 분야에 익숙한 팀 동료, 지도 교수와 같이 전문가라 할지라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같은 문제를 놓고 발표자만큼 고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연구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한 임원이 발표자에게 "자네의 아내가 들어도 이해 가도록 설명하고 발표하라고!"라며 일갈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다소 과장스러운 표현이긴 했지만 그만큼 '전달력'이 발표의 중요한 덕목임을 말해준다. 실제로 성공한 교수, 연구자,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글이나 말을 타인의 관점에서 분석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2. 모든 문장은 중요하다


발표 자료에 적힌 모든 문장에는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기술적인 배경, 핵심 요점, 발표의 주제와는 상관없는 문장이라면 과감히 제거하라. 듣는 사람의 이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사족에 불과하다. 


특히 서론의 경우 이런 경향이 강한데,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하겠다는 의도에서 '누구나 아는 사실'을 기술할 때가 많다. 서론에서 "XXX은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왔다"느니 "YYY는 현재 업계, 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같은 말은 청중에게 지루함만 가중시킨다. 임원 앞 발표라면 '됐고, 다음'이란 말을 딱 듣기 좋다. 슬라이드의 과감한 삭제에 미련이 남는다면, 백업 슬라이드로 돌리면 된다.


논문경우 '관련 연구' 섹션이 있는데, 발표 시 이를 일일이 소개할 필요가 없다. 발표장에 있는 청중 그 누구도 인용이 제대로 되었는 관심이 없다. 별도의 슬라이드를 통해 관련 연구 목록을 나열해 보았자, 이 분야에 친숙한 전문가들에게는 이미 아는 내용이고, 비전문가들에게는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없는 외계어일 뿐이다.  


발표 자료의 '서론과 배경'의 진정한 목적은 발표 서사의 프레임(Frame, 틀)을 잡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들 '개요, 목차' 슬라이드를 제일 앞에 삽입하곤 한다. "발표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론을 말씀드리고, 관련 연구를 짚은 뒤, 본론에서 제안하는 XXX, YYY를 논한 뒤, 실험 결과를 보여드리고 결론을 맺습니다"라는 발표자의 멘트는 식상하기 짝이 없다. 목차 슬라이드가 청중에게 주는 메시지는 '본 발표는 서론과 결론이 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서론에서 발표 서사의 프레임을 설정하는 방법은 '제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런 것이고, 이에 대해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청중에게 던지는 것이다. 서론을 통해 청중이 '내가 몰랐던 새로운 문제가 있었네?' 또는 '이미 알고 있던 문제인데 새로운 관점이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성공이다. 이후 그들은 발표자의 발표를 더 관심을 가지고 듣게 된다.


문제를 설명하는 이미지, 비디오, 아니면 의문형의 텍스트 문장으로 화두를 던지고, 몇 가지 예나 근거를 추가함으로써 청중에게 '흠, 그렇군.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겠군'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하면 된다. 다음 슬라이드에서는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러저러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라 목표 설정을 한다. 결과 슬라이드에 사용된 이미지가 있다면 이곳에서 미리 보여주면 좋다. '우리의 목표는 이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두괄식 논리 구성 방법의 좋은 예이다.


3. 말하지 말고 보여라


발표 자료의 모든 슬라이드에 걸쳐서, 텍스트보다는 그림이나 이미지로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텍스트는 궁극적으로 '모호함'을 피할 수 없는 매체다. 문제를 설정하거나 개념을 설명할 때 텍스트만으로 기술한다면 발표자의 의도가 청중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거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청중에게 연속적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반면 그림이나 이미지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면 청중은 이를 더 직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청중이 가질 대부분의 의문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사진이나 스크린 캡처 등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다면 적극 활용하고,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파워포인트의 기능을 이용하여 그림으로 형상화하라. 이전 글에서 엔지니어는 비주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 맥락에서 한 말이다. 엔지니어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추상적인 지식, 개념, 정보를 시각적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4. 청중은 생각하기 싫어한다


청중은 발표를 들으며 불필요하게 머리를 쓰고 싶어 하고 않는다. 발표를 구성하는 서사도 발표자의 진행에 따라 별생각 없이 그대로 따라간다. 세부사항을 이해하기 위해 발표자가 쏟았던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이며, 발표 자료의 그림과 그래프를 직접 해석하고자 하지 않는다. 대신, '그래프에서 이 부분을 보시면..'라는 식으로 발표자가 그 해석 방법을 직접 설명해 주길 원한다.


따라서 발표자는 청중이 해야 하는 정신노동의 수고를 덜어줘야 한다. 많은 숫자가 담겨있는 표보다는 그림이나 그래프로 보여주고, 또한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간명한 형태로 표현해한다. 슬라이드 장에 많은 정보를 담는 것은 피하고, 여러 장으로 나누더라도 한 장에 하나의 요점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슬라이드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 슬라이드 제목에 메시지를 담기도 수월하다. 


정작 청중은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싶어 한다. 제안하는 방법의 문제나 한계는 없는지, 예외 케이스는 없는지, 평가 방법이 허술하지는 않은지, 아니면 자신의 프로젝트와 연계할 수 없는지를 고민한다. 따라서, 최대한 발표 자료를 직관적으로 작성하여 청중이 생각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5. 결론은 긍정적인 메시지로


결론 슬라이드에서는 대부분 발표 내용을 요약하고 향후 계획을 이야기한다. 현 단계에서는 이런저런 한계가 있다며 단점을 강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추가로 해야 할 일을 열거한다. '이 연구 결과를 XXX에 적용해 본다'든지, '좀 더 일반화시켜 본다'라는 식이다. 사실 이런 정형화된 결론은 꽤 식상한 패턴이다. 


청중은 좀 더 큰 그림을 원하기 마련이다. '결론'은 발표자가 한 일이 조직이나 업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성찰하는 내용으로 채워야 한다. 제안한 방법이 실제 업계 기술 트렌드나 조직 내 제품에 어떻게 기여될 수 있는지, 밝은 전망을 나름대로의 근거를 통해 강조해 주면 훨씬 더 신선하게 발표를 마무리할 수 있다.




이상으로 엔지니어의 효과적인 발표 자료 작성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엔지니어에게 발표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첫째는, 유익한 정보를 전달해 청중의 이해를 돕는 것이다. 발표를 듣기 전까지 청중은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모른다. 발표자가 그 기술적 문제를 놓고 청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내가 '이런 일을 했다'라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를 말해야 한다. 


두 번째는, 발표자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발표를 통해 청중으로부터 건설적인 피드백을 수집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발표자의 업무, 연구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표 시 가능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 또는 똑똑한 사람들을 청중에 포함시켜야 한다.


가장 좋지 않은 발표의 이유는 이를 일종의 의무로 생각하는 것이다. 세미나 발표 순번이 돌아와서, 지도 교수나 상사가 시켜서 하더라도, 이를 의무감에 하면 앞에서 말한 순기능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발표자나 청중에게도 시간 낭비만 될 뿐이다.


따라서, 엔지니어는 발표를 의무가 아니라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 발표는 청중에게 나를 각인시키고, 내 프로젝트를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발표를 듣고 누군가는 내 아이디어를 자신의 업무에 적용할 수도 있고, 공동 프로젝트나 새로운 자리를 제안할 수도 있다. 조직 내에서는 내 가시성을 높여 기술 영향력을 키울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테크 기업에서 빠른 성장을 원하는 직원들은 기회만 되면 발표를 하려고 스스로 자원하기도 한다.


오늘 살펴본 발표자료 작성 원칙 다섯 가지가 공학도, 연구원, 현업 엔지니어 여러분들이 조금 더 나은 발표자가 되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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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graphics.stanford.edu/~kayvonf/misc/cleartalktip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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