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_사라지는 것들 중 가장 오래 남는 기억

냄새가 사라진 자리에서, 기억이 깨어난다.

by 깊고푸른밤

(이미지출처 : 네이버)


“사라지는 것들 중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향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냄새와 향, 그 둘 사이에는 무엇이 다를까.

누군가는 냄새는 낮고 향은 높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구분이 늘 불편했다.


된장 냄새와 장미 향기 사이에 누가 더 고귀한가를 굳이 나눠야 할까.

갓 볶은 커피의 향, 갓 지은 밥의 김, 비 오는 날의 흙내음.

그중 어느 것도 고상하거나 천박하지 않다.


우리의 기억은 대체로 ‘좋은 향기’보다

‘지독한 냄새’에 더 오래 머문다.

그건 어쩌면, 냄새가 더 정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후각은 다섯 감각 중 가장 먼저 기억을 깨운다.

냄새는 곧장 뇌의 해마(記憶中樞, hippocampus)로 향한다.

그래서 오래된 골목의 된장 냄새나, 갓 지은 밥의 김 냄새를 맡는 순간,

십 년 전 부엌의 공기와 누군가의 웃음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기억은 이미지보다 향기로 돌아온다.

냄새가 사라진 자리에는 늘 시간이 깃들어 있다.

(이미지출처 : 네이버)



옛사람들은 향을 시간을 재는 도구로 썼다.

‘향로(香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불의 흐름을 기록하는 시계였다.

향 하나가 다 타는 동안의 시간을 ‘일향(一香)’이라 불렀다.

불이 타며 남긴 재는 결국 시간의 흔적이었고,

그 향 속에 머문 마음은 이미 지나간 세월이었다.

결국 향이란, 시간의 온도를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어릴 적 부엌의 냄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침마다 끓는 미역국, 볶음간장의 짠내, 밥솥의 하얀 증기.

그 모든 냄새는 그 시절의 공기와 함께 내 안에 머물러 있다.

향수 한 병보다 오래된 부엌 냄새가, 내게는 더 고급스러운 기억이다.


아마도 향기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사라지는’ 존재일 것이다.


지금도 식탁 앞에서 김이 오르는 순간,

나는 냄새보다 먼저 마음을 들이마신다.

그 향이 내 안의 오래된 누군가를 깨울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밥 한 숟가락의 향기 속에는

사람 한 명의 생애가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향을 믿는다.

그건 맛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고,

시간보다 천천히 사라지는 기억이다.

향은 결국, 우리의 과거가 남긴 온도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사라지는 것들 중 가장 오래 남는 건, 바로 향이다.

우리에게 오래 남은 향은 무엇인가?

그 향을 맡는 순간,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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