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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Apr 15. 2024

2화 호르몬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다들 궁금해하실 그래서 어쩌면 어떤 의미로든 실망하실 수 있는 나의 몸무게는 과연 몇일까? 작년 4월에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확인한 몸무게는 38킬로였고 그 뒤로 구토를 중단했다. 그 후로 일 년이 흘렀는데 나는 내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었다. 아주 어릴 때 한번 찍어봤던 그 몸무게를 똑같이 한 번 더 찍었다.

 그래. 사실 버겁기도 하다. 거울 볼 때마다 우울하기도 하고 맞는 옷이 없는데도 굳이 굳이 새 옷을 사지 않고 입을 옷이 없다며 운다. 아직도 내가 날씬한 줄 착각하고 있을 때도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몸을 선택한다. 물론 조금 몸무게를 조절하는 것은 좋은 일일 수 있지만 그걸 컨트롤할 수 있을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빼고 싶은 마음이 그리 크지 않아서 이 몸을 선택한다.



 구토를 하지 않고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달라지는 변화는 몸무게 외에도 정말 많다. 그중에 가장 기쁜 일은 탈모 해결이다.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서니 머리가 매일같이 한 움큼씩 빠져서 가발을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인들은 애써 "괜찮은데 정수리만 보면 잘 모르겠어".라고 말해주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럼 이 머리로 이성 만나러 갈 수 있어?"라고 말하면 다들 조용해지곤 했다. 그랬던 머리가 이제 슝슝 난다. 정말 정수리에서부터 새로운 머리들이 자라나고 있다.

일부러 숱을 치거나 자른 게 아니었는데 머리가 이렇게 없었다. 아주 작은 집게핀을 꼽아도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곤 했었다. 그러다 지금은,

앞머리를 자른 상태가 아니었는데 정수리에서부터 저렇게 머리들이 자라나고 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아직도 가발은 착용하지만 그럼에도 저렇게 머리가 자라난다는 기적이 날 버티게 해 준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들이 처음부터 다 기쁜 것은 아니었다. 탈모해결이야 너무 기쁜 일이지만 그 외의 변화에는 당황스러운 면면들이 있었다.

 마른 몸이 되면 당연히 지방이 부족하게 되고 여성 호르몬이 돌지 않게 된다. 그래서 지방으로 채워진 가슴도 당연히 줄어들고 생리도 안 하게 된다.

삼십몇키로였을 때 옆으로 누운 가슴 / 지방이 생긴 가슴

                                            

 말랐을 때는 굳이 속옷을 착용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맞는 속옷이 없어서 보기 흉할 뿐이었다. 사람들도 내가 속옷을 입었는지 아닌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 살이 찌었음에도... 그것이 당연에 가까울 만큼 편했으니까. 하루는 서울대병원 예약시간에 늦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그 언덕을 허겁지겁 뛰어가는데 이상했다.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한층 커져버린 가슴님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덜렁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누가 볼까 옷깃을, 가슴을 부여잡고 뛰었다. 주룩 땀이 났다. 너무 오랜만의 변화에 당황했고 이 당연한 변화가 싫었다. 이 당연한 변화가 기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처먹었으면 가슴이 흔들리지?

 

 이게 첫 생각이었다. 굴욕적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성스럽고 아름다운 일이 그땐 너무 싫었다. 부끄럽고 한동안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힘들기까지 했다. 먹더라도 몰래 먹고 싶었다.

 다시 살이 찐다 해도 가슴이 커질 순 없을 거라 생각해 왔기 때문에 커진 가슴이 정말 기특한데. 기특하다는 표현을 써주고 싶을 만큼 대견한데 내 마음은 꼭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예쁘고 귀하게 여긴다. 기특하다고 잘했다고 여기까지 수고 많았다고 아낌없이 사랑해 주려고 노력한다.




 세 번째 커다란 변화는 당연히 월경이다.

생리에 대해서는 정말 할 이야기가 많은데 모두가 보는 곳이라 단어를 자제하며 쓰려한다. 생리 역시 가슴과 비슷했다. 처음 예고 없이 아니 내 인생에 두 번째로 찾아온 생리는 역시 불청객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월경을 걱정하며 병원을 권유하고 있던 때였다.

 묵직한 아랫배의 느낌과 함께 팬티에 묻은 혈흔을 보았을 땐 솔직히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사실 하혈이나 부정출혈을 먼저 의심했다.) 사람들 앞에선 나 역시 무월경을 걱정하는 척해왔지만 사실 무월경은 너무나도 편하고 또 편하고 편했다. 그뿐이랴 비싼 생리대 값도 나가지 않고 진통제 값도 굳었으며 진통제 부작용도 격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생리 내내 겪는 그 모든 수고를 겪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 못해 무월경이라  또한 행복해~라고 말할 지경이었다. 무월경. 그것은 곧 나의 날씬함의 척도였기에 건강해짐 이란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생리의 재 시작이 내게는 지옥문의 열림이었다.


 나는 매달 생리대 후원을 하고 있는데 어려서 가난하게 살았던 터라 생리대에 대한 슬픈 기억이 너무도 많아서였다. 나 역시 난 아직도 내 어릴 적 생리대에 대한 추억이 가슴에서 다 아물지 않았다. 그렇게 몸만 어른이 돼버렸는데 그걸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후원나부랭이를 하는 듯했다.

 그러니 이 생리의 재시작이 좋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전부 잊어먹고 있었다. 생리를 처음 시작한다 해도 믿을 만큼 당연한 지식에서 사소한 팁들까지 전부 초등학생 어린애마냥 행동했다. 생리대를 몇 시간마다 갈아야 하는지 어떤 요령으로 씻고 뒤처리를 해야 하는지 어느 타이밍에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생리를 다시 시작하고 두세 달 까지는 완전 전쟁이었다. 

 또! 피가 묻은 수건을 보며 울기까지 했다.

 더구나 나는 대학생 때부터 생리대가 아닌 탐폰을 써왔는데 탐폰은 생리대보다 더 비쌌고 나는 대학생이 되어 처음 탐폰을 사용하는 아이처럼 여러 번이나 탐폰 착용을 실패해 댔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 돈 세는 소리가 가득했고 무엇보다 얼마나 살이 쪄서 대체 얼마나 내가 건강해져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문이 메아리쳤다.


 사람들 앞에서는 "나 이제 생리해"라고 말하며 노력으로 건강해진 척 웃었지만 속으로는 절망감이 가득한 몇 개월을 보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이 문제 역시 나는 능숙하게 다뤄낼 수 있는 한 명의 어른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생리하는 내가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생리하는 건강함이 너무 싫다는 이 비합리적 사고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아주 다행히도 말이다.


 무엇보다 내가 생리를 시작한 개월 수와 정수리에서 자라나고 있는 머리의 센티가 아주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욱 감사하고 숭고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지금 다시 살 빼지 않는 이유는 살이 빠지는 부위가 어릴 때와 다르기에 정말 못나게 빠진다는 점이 있다. 이제와 정말 굳이 왜 살을 빼야 하는지,  구토 없이 먹고사는 지금 일상이 훨씬 더 좋다 하지 않았냐고 되새기고 구토든 그저 거식이든 두 개다 내 몸을 망가트린다는 걸 이리도 절실히 깨닫지 않았냐고 현실을 마주한다. 그렇게 살찐 현재를 더 누리고 싶다는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요즘이다. 작년 4월에 볼살이 하나도 없어 20년은 더 늙어 보이고 탈모로 골룸이 됐을 땐 처음 30킬로대의 몸무게가 됐을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거울 속의 내게 물었다.

"너 정말 이런 내가 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먹지 않는 거야?"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빠르고 짧다는 생각. 이 들었다.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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