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시간을 선사하는 작품, 연극 ‘빅 마더’

영화 같은 연출로 몰입도를 높이는 연극

by 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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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극단의 2026년 첫 작품으로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의 화제작 <빅 마더>를 선보인다. <빅 마더>는 정치, 미디어, 빅 데이터가 결탁한 현대 사회의 구조를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낸다.




1. 희망보다는 억압이 앞서는 현실


생각만으로 피자가 배달되는 세상

극 중 하워드 머서가 제시한 미래상이다. 단편적으로는 굉장히 편리한 삶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생활 침해를 수반한다면? 그것을 더는 ‘편리하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로즈는 이에 대해 “머릿속까지 감시당하며 사느니 자유로운 삶이 낫다.”라고 말한다. 머릿속 칩이 내 생각을 모두 데이터로 수집한다면 로즈의 말처럼 감시가 될 것이며 사생활은 사라진 채 자유를 잃은 삶이 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초래할 수 있는 미래다. <빅 마더>가 던지는 질문 중 하나다. 기술이 발전하고 그것을 누군가 사유화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새에 자유를 잃을지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빅 마더>가 논하는 주요 문제는 ‘정보’에 관한 사안이다. 현직 대통령의 성추문 영상 공개를 시작으로 딥페이크, 여론 조작 등 오웬을 비롯한 뉴욕 탐사 기자들은 여러 문제를 대면하고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결국 중요한 진실을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바로 국가가 하워드 머서에게 대국민 감시 프로그램 ‘빅 마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얽힌 만큼 진실이 밝혀지기 어렵다는 것, 본인의 안위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면서도 기자들은 기사를 발행하기로 한다.


“딱 한 번만 기자가 되자고요.”

쿡이 던진 말이다. 진실을 전하는 자로서 기자인 그들의 사명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빅 마더>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명감이 있는 기자들의 고군분투 끝에는 희망이 있는 내일이 아닌 억압이 존재했다.


기자를 죽여도 우리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웬과 쿡, 줄리아, 케이트는 취재 중 사망한 기자가 좇던 진실에 집중하고 추적하는 ‘포비든 스토리’와 접촉한다. 그들에게 정보를 송신함과 동시에 그들의 은거지가 발각된다. 끝내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하워드 머서의 당선을 끝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포비든 스토리에서 일한다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살해되었는지 어딘가에 구금되었는지 모르지만, 기자를 죽여도 우리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누군가를 죽여서 진실을 은폐하려고 해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가 현대 사회를 빼닮았다. 대중이,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이 감춰지고 겨우 수면 위로 올라온 진실의 일각은 또 다른 이슈로 덮인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에 이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 뉴스 보도가 편향되었을지 모르고 우리가 아는 정보는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모든 것을 느끼게 하고 곱씹게 하며 사색하게 만든다.



2. 영화 같은 요소를 통한 깊은 몰입감


영화와 연극 요소를 결합한 공연이라는 문장이 의아했다.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영화 같은 연출을 펼칠 수 있는 것일까?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연극 본연의 매력과 잘 어우러질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무의미했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연출을 마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초반의 인물 소개에서 전율이 일었다. 연극에서 인물 소개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소개된다면 대부분은 ‘말’을 통해 전달될 것이다. 하지만 <빅 마더>는 스크린을 사용했다. 무대 상부에 설치된 스크린에 영상이 재생되며 이름이 나타난다. 그에 맞춰 해당 인물이 한 명씩 걸어 나오며 소개가 이루어진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인트로와 같다. 연극 속 인물을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감상과 동시에 마치 영화 속 인물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크린은 극 중 TV 화면이 되어 드라마를 방영하고 뉴스를 보도하며 선거 유세를 중계하는 매체가 된다. 등장인물들이 필요에 따라 스크린을 바라볼 때 객석에 앉은 관객 역시 스크린을 주시하게 된다. 이 과정은 인물, 무대와의 거리를 좁히며 관객이 동일시하거나 몰입할 수 있게끔 만든다.


평면인 스크린과 입체적인 무대, 보완재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융합이 선보이는 다층적 경험을 통해 관객의 몰입도는 한층 더 심화한다.




오웬이 현실과 이상 중 결국 이상을 선택했음에도 현실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사회에 부조리가 만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 많은 이가 공감하고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하기를 반복하게 되는 작품, 연극 <빅 마더>를 통해 함께 생각하고 판단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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