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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May 02. 2021

제네바 세입자로 사는 것..2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오고 글을 써 본다. 


블라인드 핸들이 떨어진 게 1월 초였는데 지금이 5월이 되었으니 말이다. 창 밖으로 보이던 눈 덮인 나뭇가지는 벌써 초록잎이 무성하게 바뀌었다. 날씨는 여전히 변덕스럽지만 그래도 봄이 오는 게 느껴진다.


블라인드 핸들이 떨어져서 걱정하던 나는 이틀 뒤 부동산에서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장정 2명이 와서 블라인드 핸들을 교체해 주었다. 집이 오래돼서 그런지 천장의 고정하는 못이 약간 덜렁인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자기네들이 설치를 한 다음에 나에게 잘 작동이 되는지 확인을 해보라고 했다. 

그 참에 내가 물었다. 블라인드를 내리는 건 참 쉬운데 올리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거냐고.

그 기술자 왈... 그건 네가 몸집이 작아서 힘이 없어서 그런 거란다. 나는 하나도 힘이 안 들거든...


그렇구나. 여하튼 블라인드 핸들은 부동산의 비용으로 고쳤다. 또 한숨을 넘겼다.



그리고 2월에 갑자기 한국에 들어가야 했다. 1달 내내 집을 비우고 돌아왔더니 부동산 보증금을 내주는 회사에서 우편이 와 있었다. 

"매 해마다 내는 보증금을 네가 안 냈으니 빨리 내도록 해. 30 프랑은 늦은 연체료야"

그리고 2주가 지나고

" 돈 안 냈으니 빨리 내. 거기에 100프랑은 너의 지연으로 인한 행정비용으로 가산이 되는 거야."


나는 스위스 처음 와서 보증금- 보통 월세의 3배 정도를 은행에 예치한다-을 대신해 일정 금액을 내주면 그 보증금을 대신하는 서비스(swisscaution이라는 회사)를 이용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그 서비스는 목돈이 없는 사람을 우롱하는 아주 비열한 것이었다. 나는 1년에 250프랑 정도를 냈는데, 처음에는 이게 보험과 비슷한 개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관을 읽어보면, 만약 보증금에서 비용이 공제가 되면 자신들이 먼저 내고 나에게 그 금액을 청구하는 구조였다. 정말 날강도 같은 서비스인데,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가입해서 이용했고 또 추천해주었다. 2년이 지나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은행에 보증금을 예치하고 부동산 회사에 서류를 이미 보냈다.


그런데 중간에 배달 사고가 난 건지, 어쩐지 모르지만 swisscaution에서는 내 서류를 내 부동산에서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니까 얼른 돈을 내라고 했다. 부동산 회사에서는 내 서류를 못 찾은 눈치이고, 서류 사본을 보내니 또 감감무소식이다. 아무래도 서류가 크리스마스 연말에 가다 보니 중간에서 사라진 듯하다. 양쪽에 메일을 보내고 기다리고 있지만, 5월 지금까지 아무도 확답을 해주지 않는다.

 


지난 주말 저녁. 차를 마시려고 전기주전자를 켜는 순간 부엌과 욕실 쪽 전기가 다 나가버렸다. 우리 집의 전기는 한국에서 보는 두꺼비집이 아니라 아주 클래식한 퓨즈로 통제가 된다. 퓨즈가 나가버린 것 같다. 이런 방식은 1960-70년대에 사용하던 것이라는데, 지금은 이런 식의 전기공사를 하면 건축허가가 안 난다고 한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찾아보니 비슷한 경험을 한 스위스에 사는 외국인 이야기들 그리고 퓨즈를 어떻게 교체하는지 나와 있었다. 퓨즈의 교체는 전구의 교체와 같이 세입자의 의무라고 한다. 또 겁 없이 전기 기술자를 불렀다가 간단한 퓨즈 교체에 200프랑(25만 원) 청구서 폭탄을 맞은 사람 이야기도 읽었다.

퓨즈를 사야 하는데 토요일 저녁이니 일요일은 가게가 문을 열지 않는다. 덕분에 일요일 내내 냉장고가 먹통이었고, 욕실에는 촛불을 켜 놓고 사용했다. 

월요일 아침 슈퍼가 열자마자 퓨즈를 사 와서 교체했다. 나는 소위 똥 손 중에 똥 손이자 기계치이자 공간감각능력이 아주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퓨즈를 교체하고, 비실비실한 라디에이터를 고치고, 부엌 하수구를 뚫고 있다. 필요는 인간을 변하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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