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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Jul 11. 2021

슈피츠_호수 보며쉬고 싶다면

베른 칸톤의 튠 호수 주변의 슈피츠에서 2박 3일 동안 푹 쉬었다. 

사실 튠 호수에는 역시나 튠과 인터라켄이 가장 유명한데, 슈피츠는 나름 교통의 요지여서 이탈리아나 발레 칸톤에서 넘어오는 기차들이 다 슈피츠에 정차를 한다. 위치는 튠과 인터라켄 중간 어디쯤이고, 호수에 포도밭도 있어서 레만 호수와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바다 같은 레만 호수보다는 나름의 고즈넉한 맛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튠을 좋아하지만 - 나에게 일이나 언어와 상관없이 스위스에서 살 수 있는 도시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튠을 선택하고 싶다. 호수와 강, 산 모두 있고 도시는 적당히 규모가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의외로 다양한 세대가 모여 살아서 활력도 있고 말이다- 튠에서 머물고 싶었던 호텔에 방이 없었다. 오롯이 쉬는 게 목적이어서 스파와 부대시설이 있으면서 방이 깨끗하고 전망도 있는 호텔을 찾으려다 보니 슈피츠에 있는 벨베데르 호텔이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미리 예약해 버렸다. (이 호텔은 직접 호텔 웹사이트에서 예약하는 게 가장 저렴한 것 같다. 무료 취소변경도 1주일전까지 가능하고 말이다) 


예약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슈피츠는 스위스 노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에 하나라고 했다. 휴양에 최적화된 곳이리라 생각했다. 호수를 끼고 있는 다른 도시들처럼 이곳도 기차역이 언덕에 있고 마을과 호수는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호텔은 가격 대비 매우 만족스러웠다- 물론 스위스 기준에서다-. 주변에 집들이 좀 보이긴 해도 호수를 볼 수 있고, 호텔 직원들은 매우 친절했다. 리셉션의 직원은 아주 간단한 한국말을 구사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스파와 사우나 역시 좀 작긴 했지만, 만족스러웠다. 다만 사우나가 누드로 들어가는 거라 좀 불편하긴 했다. 스위스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겨울 베른 강가 사우나에서 알몸으로 뛰쳐나오던 한 무리의 남자들을 만났을 때의 당혹감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5월의 평일에 코로나 시국, 이렇게 작은 도시까지 오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호텔은 풀 부킹이라고 했다. 베른 주변의 칸톤에 공휴일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호텔 어디에도 코로나로 인한 한적함은 없었다.  

도시 자체는 작고 호수와 포도밭을 걷고 호수에서 수영하고 보트 타는 것 외에는 할 거리는 많지 않은 곳이다. 5월에만 해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호숫가에 있는 많은 레스토랑들이 거의 문을 닫아서 활기가 넘치지는 않았다. 포도밭 역시 아기자기하게 귀여운 수준이었다- 사실 베른 칸톤에서 와인을 재배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햇살이 짱짱한 어느 오후 슈피츠 시내에서부터 옆동네인 파울렌지까지 에메랄드 빛 호수를 따라 사부작사부작 걷거나, 반대로 슈피츠 성 쪽에서 낮은 언덕의 포도밭 사이를 걸어도 좋았다. 그것도 아니면 호텔 테라스 파라솔 밑에서 책을 읽어도 좋고 말이다- 단 날씨가 좋을 때만 가능하다. 둘째 날 오후부터 비가 왔는데 파라솔 밑에 있다가 파라솔이 날아가고 선베드가 뒤집어질 만큼 강풍이 불었다-.


하지만 조금 더 활동적인 걸 하고 싶다면 튠이나 인터라켄으로 가야 하니, 왜 은퇴자들이 좋아하는 도시인지 알 것도 같다. 실제로 호수를 향하고 있는 별장처럼 보이는 집에는 여유로워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계셨다. 뭐 두 도시 다 기차로 10분 거리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서 놀다가 다시 오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음식은... 호텔에서 야심하게 선보이는 4코스 저녁식사를 예약해서 먹어보았다(1인당 65프랑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모신다고 굉장히 강조했다. 스위스에선 단품 요리를 먹어도 40프랑은 줘야 하니 애피타이저+수프+메인+디저트에 65프랑이면 좋은 구성이긴 하다). 슈피츠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레스토랑이라고 하고, 큰 홀이 가득 찰 만큼 식사하는 사람도 많고, 정찬답게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음식 자체는 역시나 스위스 음식이고- 스위스 음식은 뭘 먹어도 딱히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스위스인에 비해 배가 작은 편인 나에게 양은 너무 많아서 먹고 나서도 뭔가 아쉽기만 했다. 슈피츠 와이너리에서 나오는 와인도 마셔보았는데, 와인을 모르는 나지만 발레 칸톤이나 보 칸톤의 라보 지구 와인보다 밍밍해서 별로였다. 스위스에서 미식 여행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특별한 계획 없이 소소하게 쉬고 싶다면 슈피츠도 괜찮은 선택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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