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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May 09. 2023

3일 연휴 잔혹사

연달은 연휴는 나를 너무 지치게 했다

언젠가부터 금요일 밤이 싫고, 일요일 밤이 좋아졌다.


금요일 오후 3시부터 가슴이 팡팡 두근대고, "이번주는 애들이랑 뭘 해야하나?", "주말에 밥이랑 간식은 뭘 먹이나"로 머리는 복잡해진다. 다행히 본가가 가깝고,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해서 그걸 핑계로 2-3주에 한번은 주말에 시간을 보내고 오는데, 그렇지 않은 주말은 정말 아비규환이다.


날씨라도 괜찮으면 동네 놀이터를 돌고오거나 드라이브를 다녀오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집콕하면서 "뛰지마", "싸우지마", "때리지마" 소리만 오만번은 하게 된다. 특히 '뛰지마'는 정말 힘들다. 집에 매트도 깔아뒀고, 정 뛰고 싶으면 침대나 쇼파에서 뛰라고 해도 둘이 돌아다니면서 우다다다 뛰는 통에 혼을 내고, 회유도 해보고, 협박도 해가면서 두번뛸것을 한번만 뛰게하는 식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아랫집 분들이 너무 좋으셔서 이제껏 한번도 올라온적이없다. 올라오긴 커녕 이따금 만나면 '괜찮다'고 해주신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둘째가 5시 30분에서 6시쯤 일어나면 제 언니를 깨운다. 그럼 언니는 비몽사몽 일어나서 둘이 껴안고 논다. tv도 보고, 휴대전화에 있는 모모플레이를 하며 사부작 대다가 가볍게 아침을 먹고나면 "엄마 입이 심심해. 간식을 줘."라고 짹짹거린다. 과자와 젤리, 아이스크림을 주면서 영화 한 편 보면 점심. 밥 한그릇씩 먹고 낮잠을 재울라치면 첫째가 "잠 안와!"라면서 스티커를 모은 통을 꺼내 이곳저곳에 붙인다. 둘째는 그걸 보고 졸다가 "나도 줘"하면서 돌진한다. 그렇게 둘이 낮잠도 안자고 간식-놀이-tv-뜀박질-그림그리기 같은걸 하다 보면 저녁시간. 반쯤 꾸벅 졸면서 밥 한그릇을 또 비우고 나면 오후 6시쯤된다.


그때부터 마의 시간이다. 나는 적어도 7시는 넘어서 재우려 하고, 아이들은 잠이 온다고 칭얼댄다. 한시간 동안 같이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고, 물놀이를 빙자한 목욕을 끝내면 7시가 넘는다. 둘다 쓰러지듯 잠이 드나 싶다가도, 침대에 눕히면 또 쌩쌩하다. 그렇게 8시쯤 되어야 아이들이 잠에 든다.


이렇게 주말을 보내니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난 일요일 밤이 너무 좋다. 물론 애들 재우고 나오면 널부러진 장난감과 종이, 크레용, 덕지덕지 붙여둔 스티커들이 날 쉴 수 없게 한다. 후다닥 치우고 뜨끈한 차 한잔과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과자를 들고 쇼파에 앉는다. 피로가 밀려오지만, 잠을 자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 책 한권 읽거나 밀린 예능 한 편을 꼭 보고 잔다.


주 7일 중 이틀도 버거운데 지난주엔 무려 연휴가 두 번이나 있었다. 예전에는 '화수목 3일만 일하면 되잖아? 꺅!'하고 춤을 췄을건데, 난 정말 울고 싶었다.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연휴는 괜찮았다. 본가에 하루, 시어른댁에 하루, 나머지 하루는 병원을 다녀오고 오후엔 애들이 낮잠을 자서 수월했다.


하지만 5월 5일부터 7일까지 연휴는 첫날부터 쉽지 않았다. 우선 3일 내내 비가 왔고, 아이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났고, 쉼 없이 날 따라다니면서 간식을 달라, 놀아달라고 보챘다. 애들이 지나간 자리는 부스러기와 먼지, 장난감, 얼룩으로 가득했고 그걸 쫒아다니면서 치웠다.


거기다 난 사흘 전부터 몸살감기로 몸이 좋지 않았다. 열만 없는 코로나 증상으로 두 번이나 검사를 받았을 정도였다. 몸은 축나지, 애들은 엄마만 찾지, 애들식사, 어른식사 만들고 치워야하지...


애들은 둘이 뭐가 신나는지 춤을 췄다가, 노래를 불렀다가, 그러다 투닥거리고 싸우길 반복했다. 날도 흐리니 밥 먹고 낮잠을 자자고 불도끄고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오히려 "우와 캠핑이다"하면서 집에 있는 스탠드 불을 다 끌고와서 그걸 켜고 책상밑에 숨어서 낄낄 거렸다.


반쯤 정신이 나갔던것 같다. 둘은 밥도 잘 먹었다. 저녁은 두 그릇씩 먹었다. 밥먹고 씻겨 재우면 되겠다고 설거지를 하는데 애들아빠가 나를 불렀다. 가보니 밥을 다 먹고 식판에 무김치를 과자처럼 씹어먹던 둘째가 무를 문 채로 잠들어있었다. 곧 깨겠거니 싶었는데 중간에 두어번 깬 것 말곤 다음날 아침까지 잤다. 첫째도 피곤하다고 해서 대충 씻기고 눕혔더니 불을 끄고 속닥대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둘을 재우고 나서 만보기를 보니 9천 7백걸음을 걸었다고 나왔다. 집에만 있었는데 1만보 가까이 걷다니! 뒷정리를 하고 자리에 앉으니 그제야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것이 생각났다. 입이 너무 써서 뭘 먹지도 못했고, 먹을 기력도 없었다. 뒤늦게 밀려오는 허기와 니글거리는 속이 진정되지 않았다. 떡볶이 1인분을 시켰는데 막상 먹으니 반도 먹지 못하고 남겼다.


다행히 다음날은 시어른께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셔서 데려가셨다. 어버이날을 맞아 본가 어른들과 오랜만에 주말 외식을 하고, 집에와서 낮잠도 실컷 잤다. 자고 나선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 이야기도 하고, 저녁도 초밥을 사먹었다. 저녁에 집에 온 아이들은 생기가 넘쳤다. 원래라면 벌써 잘 시간인데 낮잠을 자고 온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내일은 모처럼 교회에 가고싶다는 말에 알겠다고 했다.


연휴 마지막날엔 시어른께서 가는 교회에 가서(나는 무교)좋은 말씀도 듣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이방에서 뛰어다니고 놀았다. 오후에 집에 가려는데 남편이 전화가 와서 가족탕에 가잔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놀고와서 집에 오니 6시. 저녁은 대충 짜파게티로 때우고 애들은 애들대로 놀고, 나는 또 뒷정리를 한다고 저녁시간을 다 보냈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늦게 잠들었고, 10시가 넘어야 육아 퇴근을 했다. 바로 자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니 밀린 빨래와 설거지, 내일 등원준비를 해야했다. 결국 3일 연휴 마지막까지 아주 알차게 "노동"을 하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월요일 아침. 병원에 가니 내 목은 여전히 호전될 기미가 없단다. 더 심해졌단다. "연휴 동안 안 쉬고 뭐하셨어요?"라는 소릴 들었다. 그러게요 선생님, 저는 뭘 했을까요?


다시는 이런 연휴가 없으면 좋겠다고 달력을 후딱후딱 넘겼다.

그런데 방금 뉴스기사를 보고 맥이 풀렸다. <부처님 오신날 대체공휴일 확정>. 이번 연휴엔 또 뭘 해야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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