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직후 고유가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10원이라고 싼 주유소를 찾아 나서는 운전자들이 늘고 있다. 이 같은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주유소들은 ‘제 살 깎기’식으로 가격 인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주변 시세보다 유독 싼 가격을 내건 주유소가 등장한 것. 이에 운전자들은 주유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찝찝함이 남기도 하는데, 과연 해당 주요소는 어떻게 주변 주요소보다 싼 가격에 기름을 팔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무자료 기름 빼돌려
섞어 판매한 주유소
13일 KBS는 길목마다 들어선 주유소 중에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단골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이유를 보도했는데, 알고 봤더니 해당 주유소는 몰래 빼돌린 선박용 면세유를 섞어 파는 곳이었던 것. 기름은 유류세와 부가세 등을 합해 가격의 절반 이상이 세금이지만, 선박용 면세유는 농·어업용, 선박용, 군납용 등 특정 용도로 분류돼 세금이 아예 없거나 적게 붙는다.
이 같은 점을 불법적으로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 있던 것이다. 면세유를 섞어 판매한 주유소는 잘 쳐줘야 영업이익률이 3%인 일반 주유소의 비해 5배가 넘는 15%를 더 벌어왔던 셈. 하지만 전국 모든 주유소의 매입과 매출이 주 단위로 한국석유관리원에 보고되기에, 결국 걸리는 건 시간문제다. 실제 매년 전국 70여 곳이 면세유뿐 아니라 품질 미달의 가짜 기름을 팔다가 적발되고 있다.
취약층 꾀어 바지사장 앉혀
처벌 피한 이들
그렇다면 어차피 걸릴 불법적인 행위를 왜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데, 노숙인의 명의를 가져다 이른바 ‘바지 사장’으로 앉혀놔 실제 업주를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광양항과 제철소에 인접한 한 주유소의 경우 1년에 걸쳐 면세유로 불법 영업했음에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취재진이 수소문한 결과 해당 주요소와 200km 떨어진 대전에 살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A씨가 업주로 등록되어 있었던 것. A씨는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일당에게 인감 서류 등을 넘겼더니 자신이 ‘바지 사장’이 돼 있었다고 밝혔는데, 어느 새 검찰의 소환 통보와 2,000만 원 넘는 체납 세금, 4,000만 원대 주유소 채무는 모두 A씨의 몫이 됐다.
한 일당이 관리한 주요소만
전국에 20여 곳
이처럼 명의도용 주유소는 한두곳이 아니다. 단속에 걸리기까지 통상 6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그 기간만 영업할 목적으로 가짜 사장을 물색한 뒤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곤 본인은 잠적하는 수법을 이용하고 있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면세유, 항공유, 선박용 기름 등 무자료로 빼돌려서 하는 사례들이 많다. 형사처벌이 센 편이여서 보통 바지사장을 두고 한다”고 말했다.
2016년에는 천안에서 바지사장 제공 조직이 검거된 일이 있었는데, 자신들이 관리하는 명의도용 주유소만 전국에 20곳이 넘는다고 법정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이에 애꿎은 피해자가 더 발생하기 전 광역 단위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