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카페 성공신화, 카페베네가 무너진 이유
우리가 아는 카페베네는 사라진 지 오래다. 급성장하던 카페베네는 무엇 때문에 암초에 부딪힌 걸까? 가맹점 상생 실패와 로스팅 변화로 인한 커피 맛 변질, 다각화한 사업들의 잇단 실패 등 여러 이유가 있었다. 모두 영향을 있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
한때 한국 최고의 커피 프랜차이즈로 불린 카페베네는 최단기간 최다 매장 수 기록과 연 매출 1000억 원 돌파 등 업계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2010년 한 해만 335개 매장을 열었으며 2011년에는 무려 800호 점을 개설, 드라마 노출 1위, 소비자가 가장 신뢰하는 커피전문점 선정 등의 쾌거를 이뤄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을 창업 3년 만에 이뤘다는 것이다. 카페베네의 성공사례는 하버드경영대학원에 발표되었으며, NACRA에서 발간하는 미국 최고 권위의 기업 사례 학술지 CRJ에 등재될 만큼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카페베네는 2008년 ‘유럽형 디저트 카페’를 표방하며 론칭했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카페에서 벗어나 유럽 스타일을 지향했다. 당시 팽배하던 ‘스타벅스 따라 하기’에서 탈피한 것이다. 컨셉은 예술적이었다. 심볼은 추상적인 커피 열매 형태를 활용했고 로고타입은 자유분방한 글씨체를 사용해 아티스틱한 이미지로 시각화했다. 컬러는 커피 색상인 브라운을 사용해 전통적이며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유럽 컨셉답게 메뉴에도 젤라또나 와플류의 디저트를 중시했다. 초기 슬로건인 ‘gelato&waffle’에서 보여주듯 이탈리아의 젤라또 아이스크림, 벨기에의 와플, 스위스의 초콜릿 등을 주요 소구 포인트로 삼았다. 이는 커피 중심 다른 카페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매장도 유럽답게 꾸몄다. 유러피언 앤티크 스타일을 적극 차용하여 특유의 원목 인테리어를 내세웠다. 오래된 고재(古材)와 부식 철재를 사용했으며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빈티지한 인테리어로 고객들이 마치 유럽에 와 있는 듯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연출했다. 이 유럽식 메뉴와 인테리어 컨셉은 시장에 제대로 먹혔다.
하지만 관리가 문제였다. 컨셉의 일관성이 없어지면서 언젠가부터 흔한 카페가 되어버렸다. 유럽과 관련 없는 홍삼 라테나 미숫가루 같은 음료가 등장하더니, 생뚱맞게 트로피컬 빙수와 그린티 빙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단팥죽 메뉴도 선보였다. 메뉴 집중에 실패한 것이다. 소비자의 다양한 입맛을 사로잡고자 하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했다. 유러피안 커피전문점인지,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인지 혼란스럽게 만들 정도였다. 여기에 수많은 신메뉴 포스터들을 출입문에 덕지덕지 크게 붙여 매장의 분위기도 조잡스러워지고 말았다. 수익만 좇아 테이블도 다닥다닥 붙이다 보니 더욱 시장 바닥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엉뚱하게도 신메뉴 송 뮤직비디오에는 유럽과 전혀 관련 없는 크레용팝이 발탁되었다.
결국 카페베네 특유의 ‘유럽스러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여느 휴게음식점과 비슷해졌다. ‘아이스크림’ 하면 ‘배스킨라빈스’, ‘도넛’ 하면 ‘던킨’과 같이 머릿속에 딱 떠올라야 하는데 그런 연상이 어려웠다. 이제 카페베네는 컨셉의 뿌리 자체를 바꿔버리고 만다. 고급스러움은 모두 버리고, 산뜻한 스카이 블루로 브랜드 컬러를 180도 바꾼 것이다.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더 변화한다. 두 번째 리브랜딩은 고품격 모던한 다크 브라운 컬러로, 세 번째 리브랜딩은 에메랄드 컬러의 느긋한 고양이 캐릭터다.
카페베네는 포지셔닝 구축에 실패했다. 하버드대학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경쟁우위 전략에서 경쟁자보다 부가가치를 올리는 것을 ‘차별화 전략’으로, 경쟁자보다 가격을 싸게 만드는 것을 ‘비용우위 전략’으로 설명했다. 카페베네는 어떤 전략이던 어중간했다. 첫 컨셉에서는 차별화에 성공했지만 점차 다른 카페와 유사해졌고, 잦은 리브랜딩으로 소비자 기억 속에서 미끄러졌다. 본질적 경쟁요소인 커피 맛과 가격도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인터넷에는 카페베네가 저품질 원두를 사용하는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가격은 스타벅스와 비슷하게 비싸지만 맛은 이에 못 미친다는 평가였다.
반면 스타벅스는 고급 컨셉을 일관되게 전달해 차별화 전략에 성공했다. 첫 개점인 1971년 이후 창업자 하워드슐츠의 커피를 향한 열정과 프리미엄 코드, 미국적인 스타일을 일관되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타벅스는 지난 50년 동안 ‘단순한 커피가 아닌 문화를 파는 프리미엄 카페’라는 아이덴티티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고 지금의 브랜드가 되었다. 빽다방은 저가 시장을 공략해 특별한 포지셔닝을 구축했고 비용 전략에서 우위를 점했다. 지겹도록 외친 ‘Take it reasonable!’ 그리고 ‘싸다! 크다! 맛있다!’ 슬로건과 강한 블루&옐로 컬러 디자인은 주효했다. 백종원 대표의 친근한 얼굴 로고, ‘백'씨 성을 사용한 ‘빽' 네임의 지속적인 노출은 고객의 뇌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브랜드는 ‘신경 네트워크(Nerves Network)’다. 제품 특성과 브랜드 감정이 결합된 뇌 속 ‘신경들의 세계’인 것이다. 강력한 브랜드는 신경 네트워크가 우리 머릿속에 촘촘하게 구축되어 있다. 브랜드가 주는 다양한 정보들의 연결 과정은 뇌의 해마가 주로 담당한다. 그리고 편도체가 감정 평가 작업에 동원된다. 해마는 (신피질 내에서 동시 활성화된 수천 개의 신경세포를 통하여) 여러 브랜드의 정보를 통합해 만든 전체적인 브랜드 상을 신경 네트워크에 저장한다. 이런 류의 브랜드 신경브랜드 망은 신피질 영역으로 광범위하게 뻗어나간다. 브랜드의 시각적인 요소는 대뇌피질 후방(후두엽, 두정엽)으로, 청각적 요소는 측두엽으로 저장된다. 감정적인 요소는 완와전두피질과 편도체로 저장된다. 이렇게 신경브랜드 네트워크는 머리 안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는 약간의 자극(브랜드, 디자인 등)만 주어도 반짝반짝 활성화되며 더욱 탄탄해진다. 그리고 무의식적인 영향도 커진다. 따라서 특정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는 신경 네트워크가 확고하고 넓을수록, 브랜드 혹은 디자인 자극이 구매 판단에 빠르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신경 네트워크는 자극의 빈도가 잦을수록 강력해진다. 신경세포 사이의 결합이 더 단단해지고 신호에 빠르게 반응하는 것인데 이런 메커니즘을 전문용어로 장기강화(Langzeit Potenzierung)라고 일컫는다. 뇌에 지정석을 확실히 마련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강력한 신경브랜드 네트워크는 ‘반복’을 통해 구축된다는 점이다. 일회성 브랜드 메세지로는 효과가 없다. 이렇게 반복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 뇌가 ‘인지구두쇠’로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 뇌는 매일 약 수 천 건의 자극을 받는데, 진화 법칙인 에너지 절약을 위해 뇌는 최대한 새로운 자극을 무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편 인간의 구매 결정은 뇌가 주도하는 감정적인 효용성 계산에 따라 좌우된다. 다시 말해, 이성(기능)보다는 감정(브랜드)에 따라 구매하게 된다. 그래서 감정 자극은 중요하다. 광고에서 매번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는 ‘이야기’를 함께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감정을 통해 뇌에 다양한 자극을 전달한 기업만이 신경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겨우 기초 공사일뿐이다.
동일한 시청각, 감정, 경험 등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전달해야 강한 브랜드 신경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만일 브랜드 형태와 감정 영역을 자꾸 바꾸게 되면 계속해서 공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 기초 공사를 힘들게 끝내자마자 다시 돈을 들여 새 구덩이를 파야 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컨셉이 한 번 정해졌다면 밀어붙여야 한다. 조금 시원찮은 컨셉이라도 우왕좌왕하기보다 끈기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스콧 맥닐리(Scott McNealy) 대표는 “잘못된 전략이라도 제대로 밀고 나가면 성공한다. 하지만 탁월한 전략이라도 꾸준하지 못하면 실패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지간한 뚝심이 아니고서 꾸준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단기적으로는 잃는 것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경쟁 브랜드가 단팥죽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면 뚝심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카페베네는 유럽스럽다’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신제품을 개발했어야 했다. 예를 들면 크레용팝이 홍보한 ‘단팥죽’도 ‘프렌치 팥 수프’와 같은 제품 컨셉으로 유럽인 모델, 예를 들면 유튜버 ‘영국남자’가 홍보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 컨셉 전략을 유지하면서, 겉 장식만 조금씩 바꾸자는 것이다. 소비자가 지루하지 않도록 적절히 표현을 다양하게 하면 된다. 페이스리프팅처럼 약간의 주름만 펴주면 된다. 에르메스(Hermes)의 모토는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이다. 근본을 지키려는 정신이 지금의 에르메스를 만든 것이다. 앱솔루트(Absolut) 보드카의 슬로건 ‘절대 달라지지 않지만 늘 변화한다’는 슬로건, 포르쉐(Porsche)의 ‘바꿔라, 그러나 바꾸지 마라'라는 철학도 마찬가지다. 세태에 맞는 변화는 하되, 뿌리는 굳건히 지켜야 한다. 좋고 나쁘고는 둘째 문제다.
컨셉은 비즈니스의 뿌리다. 컨셉이 없다면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 마케팅 학계의 거장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교수도 마케팅 과잉 시대에 ‘단순히 감성에 다가가는 수준이 아니라 ‘영혼’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랜드를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영혼을 관리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카페베네의 사례는 경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의 컨셉에 충실하지 않고 성급하게 분산하는 행태를 보이는 순간 그 브랜드는 이미 실패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초심을 잃지 말고 끊임없이 컨셉 리마인드를 하면서 본질에 포커스 해야 항구(恒久)하는 비즈니스를 키워갈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카페베네를 타산지석 삼아 배워야 할 것이다. [위디딧 명재영 대표]
네이버 칼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4592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