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번제물이라고 생각했다.
번제물은 완전히 불타 사라지는 제물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헌신.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신학교를 나왔다. 제단에서 내려왔다.
번제물로서 실패한 것이다.
나는 카인 같았다. 하느님이 받지 않은 제물. 그래서 나는 속죄하듯 움직였다. 살아남기 위해.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하느님께 기도할 수 없었다.
욥기를 읽으며 울었었다. 욥은 하느님께 따졌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욥의 항변은 정당했다. 그는 의로웠으니까.
나는 의롭지 않았다. 신학교를 떠난 것도, 서원에서 도망친 것도, 제단에서 스스로 내려온 것도, 모두 내 선택이었다.
욥은 억울했지만, 나는 억울하지 않았다. 나는 번제물로서도 실패했다.
그래서 나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느님께 기도할 수 없었다. 징징대는 것 같아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실패한 제물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생존에 대한 시험. 여기서 살아남아야, 내가 도구로서 쓸모가 있다.
도구는 불평하지 않는다. 도구는 주어진 쓰임을 감당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하느님도 침묵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듣지 않았다. 들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시간은 길었다. 텅 빈 성전 같았다.
제단은 비어 있었고, 제물은 타오르지 못했고, 나는 그 안에 혼자 서 있었다.
번제물로 타오르지 못한 자. 온전히 바쳐지지 못한 자. 카인처럼 떠도는 자.
하지만 나는 그 안에 서 있었다. 서원의 무게를 짊어진 채로.
욥은 끝내 하느님과 대면했다. 하느님은 욥에게 답했다.
나는 대면하지 못했다. 아니, 대면할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침묵 자체가 나의 응답이었을지 모른다.
욥만도 못한 자의 신앙.
번제물로서 실패한 자의 기도.
카인처럼 표를 받은 자의 침묵.
그것은 침묵으로 견디는 것이었다.
말할 자격 없는 자가,
그럼에도 서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