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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OME NIGHTS

모하비 사막을 지나며

Hello, America

by 알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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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부시시 일어나 대지를 덮고 달을 켠다. 하루간의 고단한 몸을 누이러 드는 태양은 붉은 자락을 걷고 뒤돌아 걷는다. 어두운 산 그림자를 비추며 고개를 드는 달은, 각양각색으로 제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을 알고나 있을지. 고개를 돌려 달의 등장에 감탄하다 보면, 붉은 노을을 끌고 가는 해의 퇴장을 만난다. 검은 산 위로 검음을 누르고 오르는 허연 달이 크다. 아침부터 시작해, 어둠이 사방에 내릴 때까지 달렸다. 끝없이 길을 내어주는 도로는 어디로 이어져 있을지 가늠할 수 없고 가도 가도 초록은 구경할 수 없다. 황톳빛 대지가 펼쳐져 있을 뿐, 무릎을 넘기지 않을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땅과 가까운 이 곳은 모하비 사막이다. 사막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에 갇혀있던 나를 멋지게 깨부순 멋진 곳. 넓디넓은 땅이 감탄스러웠으나,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사막에서도 생물들을 키원낸다니 더 부러울 뿐이다.

서부여행을 떠나리라 마음 먹었을 땐 집을 떠나 시애틀에 머무른지 한 참 되었을 때였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쉬 잊고 현재에 익숙해지는 여행하기에 좋은 습관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 버스를 타고 종일 달려가면, 내 몸을 누일 곳이 있다는 사실이 안심되고 그럼으로써 행복하다. 비록 돈으로 산 공간이라고는 하나, 허락된 시간만큼은 내가 주인일 수 있는 곳. 그런 장소가 늘어가면 안심도 되고 그리움도 진해진다. 여행 중 종종 느끼는 마음이다.

여행을 돌이켜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집을 떠나 있는 기간이 길수록 내가 혹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사는지 알게 된다.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로 가득한 집을 생각해본다. 곳곳에 숨겨둔 쓰지 않은 물건들과 경우에 따라 달리 입는 옷장 그득한 옷들. 그중 많은 것들이 불필요해 보인다. 이 번 여행을 생각해보아도 내가 의지하고 있는 물건은 사실 몇 되지 않았다. 그저 와이파이가 되는 휴대폰과 노트북 그리고 욕심내어 카메라가 있으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최소한의 옷가지만 있으면 별로 아쉬움이 없을 듯하다. 바지 하나와 따뜻한 재킷, 쪼리 샌들이면 겉옷은 문제없다. 하긴 누구나 취향이란 것이 있고 순전히 이건 내 경우이지만 말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물건들과 여러 가지를 대거 정리했다. 비록 이사를 위해 했던 행동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아까워했던 것들을 쓸만한 사람들을 불러 모두 다 실어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조금 더 간소하지만 조금 더 풍부하게 살아보려 애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어깨를 내어주고 더 많은 시간을 허락하고 그들로 인한 어수선함을 감내해 보려한다. 불편한 순간쯤은 내게 이제 아무렇지도 않고, 그 어떤 순간도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얼마 전에 다시 보게 된 '와일드'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주인공이 쓴 책을 영화화한 것이다.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눈부셨던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 주인공이 택했던 것이 이 곳 모하비 사막이 포함된 PCT(PACIFIC CREST TRAIL: a wild and scenic pathway from Mexico to Canada) 코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에서 황량한 사막길을 보자 한 번 지나쳐 갔던 곳이라 반갑고 가슴이 뛰었다. 영화 속 가녀린 여주인공은 홀로 40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내고 목적하는 곳에 이르렀다. 약 90일간의 행군이라, 홀로....... 그 끝도 없는 사막에 가끔씩 등장하던 작은 오솔길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막 한 가운데도 집 한 채가 있기도 하고, 큰길에는 이따금씩 스쿨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던 풍광이었는데, 영화는 내 상상 그 너머를 이해시켜 주었다. 나였다면 단 하루 아니 한 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도망쳤겠지만, 반가운 모하비 사막의 풍광을 보자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나도 언젠가 그 속에 녹아들고 싶다는 대책 없는 꿈을 꿔보기도 했다.

자신이 속해있던 불행한 과거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나는 이들이 위대하게 여겨진다. 어렸을 적 불행한 가족의 역사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알코올 중독과 도박에, 폭력을 일삼으며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은 아버지, 험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들을 두고 가출한 어머니, 방임되거나 혹은 남의 손에서 자라난 사람들, 또는 그 부모를 보면서 커 온 사람들을 더러 안다. 그러나 그 가혹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애벌레가 껍질을 벗듯 자신을 칭칭 감고있는 굴레에서 벗어나 나비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나는 안다. 그런 사람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한 사람들로 살아가는 이들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그 사람들의 영혼은 강인하고 위대한데, 그들은 자기가 처해졌던 운명과 겪은 불행에 대한 통찰을 통해 참담한 자신의 굴레를 벗어나려 운명에 맞서 온 사람들이다. 자신의 힘으로 그 가혹한 환경과 운명의 고리를 끊어낸 사람들이다. 적어도 지난 시간에 살고 있던 부모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고, 가난과 역경의 어둠 속에서 살았으면서도 그에 잠식당하지 않고 햇빛과 물의 소중함을 알며, 이 것들이 인간다움을 가능케 하고 육성시킨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쉽지 않은 경지이다. 아무나 이를 수 없는 드높은 정신적 상태라고 본다. 자신이 지고 걸었던 그 불행한 역사를 자기 손으로 끊기 위해 지치지 않고 도전했고, 좌절했고, 아파하면서 울었고, 끝끝내 벗어나지 못하리란 두려움에 시달리고 슬퍼하면서 분노 또한 했지만, 결국은 굵은 운명의 심지를 끊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타인에게까지 전가하지 않는다. 나는 흔히 말하는 돈 많고 한 끗발 날리는 사람들보다는 이들에게 더 고개 숙여지고 존경심과 대단함을 느낀다. 그리고 배우고 싶다.

말은 쉽지만 그런 일이 쉬운 일인가, 저 길고 긴 혼자만의 시간을 걷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고독하고 힘든 혼자만의 90여 일을 내가 견딜 수 있는겠는가. 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한 역경을 건너는 것도 내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 앞에 있는 몇 년간의 이 지루한 과정 하나를 견디는데 이토록 괴로운 것을 보면서 나는 유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거늘. 그러나 그 일을 가능케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들의 힘에 대해 눈부신 기쁨을 선사한다. 험한 시어머니 밑에서 지옥 같은 시집살이를 살아내고도 그런 시어머니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는 사람들, 영화 '조이'에서 처럼 가난으로 전전하던 시절을 알기 때문에 문턱을 넘은 사람들에게 따스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 알고 보면, 아니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절망에 뿌리를 박고 오히려 꽃을 키워낸 사람들을 종종 찾을 수 있다.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약한 인간이고 보면, 보통을 뛰어넘는 비범한 사람들을 보면서 경외심을 가지는 게 일면 당연한 듯도 싶다.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던 길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그 외롭던 길과 창 너머로 보이는 달 띄우는 광경은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물 없고 뜨거워도 그 안에 많은 생물을 품고 사는 사막에 숙연해졌었다. 마른땅에 깃들어 사는 선인장이며 새들과 작은 동물들을 느끼며 지났다. 땅을 뒤덮은 노란색 꽃들은 종일 달리는 차를 따라 달려왔다. 사막에 속한 그들의 굳건한 의지와 생명력에 감탄한 마음인지 어둑어둑해 질 때가 되자 눈물이 핑 돌았다. 모하비 사막처럼 감동을 주는 곳을 지나게 된 건 신의 선물이었다. 다른 사막과 달리 진흙 사막이라 했다. 그러니 키 낮은 식물이 살아나고 그 식물을 좋아할 다른 생물들도 함께 살겠지. 드문드문 조슈아 나무가 나타나 이국적이면서도 과연 사막다운 그림을 완성시켜 준다.

돌아가시기 두어 계절 전에 구본형 스승님을 만났었다. "집을 정리하고 여행을 떠나려 한다. " 누구보다 멋진 풍광을 가진 위치에 집을 가지고 계시던 분이시라 좀 의아했지만, 돌이켜보면 스승님은 당신에게 곧 닥쳐올 운명을 감지하신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정리하시고 멀리 가시고 싶으셨던 것인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스승님의 죽음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나는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을 퇴직했고, 두 개의 시간을 살던 나를 떠나 더 나다운 삶을 살자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제법 흘렀다. 나는 지금 그 길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과연 내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 속에서 비집고 나올 뜻하지 않은 어려움과도 마주할 것이다. 어쩌면 불확실한 많은 것들과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우리 삶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확실할 것은 없고, 우린 언제든 변하는 상황에 있게 되고, 또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이므로.

이 모든 것이 인생이다. 계획하지 않아도 맞이하게 되는 운명이 있고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찬란한 기쁨도 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마주하게 된 사막의 달뜨고 해지는 모습, 이 모든 것이 살아있음을 경험하게 하는 황홀한 순간이며 깨어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되는 찰나이다. 검은 산 위로 허옇게 비집고 오르던 달뜨는 모습은, 도대체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몰랐다. 더구나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내게도 터질듯한 마음을 표현할 말이 허락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시인들은 저런 광경을 보면 분명 멋진 시구절을 자아내었을 것이다. 내 가난한 언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는 차창으로 펼쳐지는 광경을 놓치기 싫어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눌렀다. 그러나 소득은 적었다. 나는 그만 카메라를 내리고 스러지고 차오르는 밤을 지켜보기로 했다. 살아있어서 좋은 순간, 오래 가슴에 남을 순간을 내 눈에 담아두기로 했다. 실은 서부여행 중 찍은 대부분의 원거리 경치는 달리는 차 안에서 촬영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단 몇 개의 사진으로도 고마워하기엔 충분하다고 믿는다. 재밌고 화려하다는 볼거리들에도 불구하고 서부여행에서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모하비 사막을 지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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